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 - 한국 추리소설 작가 5인이 말하는
김이환 외 지음 / 알파미디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먼저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밤빛 남색 바탕에 이층집 한 채가 서 있고, 창이 다섯 개인데 그 안에 사람이 하나씩 앉아 있어요. 누군가는 책을 펼쳤고, 누군가는 턱을 짚은 채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현관 위에 작은 등이 켜져 있고요. 추리소설을 다루는 책이면 서늘한 그림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집은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쪽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밤에도 불을 끄지 않은 집이라는 인상이었어요. 다 읽고 나서야 그 다섯 개의 창이 다섯 명의 필자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 추리소설 작가 5인이 말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은 김이환, 박상민, 전건우, 정명섭, 조동신 다섯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캐릭터와 주제별로 나눠 읽어낸 책입니다. 판형도 두께도 평범해서 들고 읽기에 부담이 없었고, 비평서라기보다 동료 작가 다섯 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듣는 자리처럼 편안했습니다.


표지 띠에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한이 작가의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미스터리를 정의하는 형식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작가는 없다, 우리가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에 열광하는 이유다. 프롤로그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주는데,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가 풀려도 범인이 특정되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 밝혀져도 동기가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이 세 겹의 질문이 책 전체의 뼈대가 됩니다.




가가 쿄이치로 시리즈를 다룬 장에서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필자는 추리소설의 오래된 문법을 먼저 짚습니다. 형사와 탐정은 범인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고, 독자의 시선은 그들의 시선과 완벽히 겹쳐진다는 것. 홈즈의 관찰력이든 푸아로의 회색 뇌세포든 결국 '어떻게 범인을 잡는가'라는 질문을 향해 달린다는 정리인데, 가가는 처음부터 다른 질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고 씁니다. 이 사건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가. 그 질문은 훨씬 오래 걸리고 소모적이고, 때로는 검거라는 목표와도 어긋납니다. 필자는 그것을 개인적으로 '어긋남'이라 부른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 장을 읽으며 오래 남은 문장은 두 개였습니다. "그는 형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고, 수사관이기 이전에 이웃이었다." 그리고 "'왜 떠났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가장 오래된 수사였고, 그 질문이 형사로서의 그를 완성시켰다." 가가의 어머니는 그가 열 살일 때 집을 떠나 연고 없는 센다이로 갔고, 혼자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가 텅 비어 버렸다는 대목에서, 이 시리즈가 왜 사건보다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보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필자는 범인을 잡는 일이 수사의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적습니다. 목적은 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왜 이 상황에 처했는지를 밝히는 쪽에 있다고요.


솔직히 갸웃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가의 내면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하는 대목은 다소 도식적으로 읽혔어요. 한 인물의 평생을 어머니의 부재 하나로 정리해도 되는지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자 스스로도 우연히 완성된 설정일 수도 있고 정교하게 짜여진 것일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서 두었고,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신뢰를 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을 짧게 꺼내놓은 대목도 그렇습니다. 비평서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위험한데, 그 한 문단이 있어서 캐릭터의 개연성을 따지는 뒤의 논지가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다룬 장은 결이 가장 단단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을 붙잡고 한 절을 통째로 씁니다. 소년범죄와 소년법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낡지 않는 주제라는 전제로 시작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책임까지 가벼워져도 되는지, 가해자의 미래를 보호하는 동안 피해자와 유족의 삶은 누가 책임지는지를 나란히 놓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자기 자리를 감추지 않습니다. 교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원칙이 유족에게는 또 다른 형벌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머리로는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감정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간극이 늘 남았다고 적습니다. 저도 뉴스를 보며 비슷한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독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대목이 이어집니다. <소년심판>이나 <더 글로리> 같은 작품이 왜 반복해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를 짚으면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법이 악인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누군가 대신 심판해주기를 바란다고 진단합니다. 사적 제재물이 그 위험한 욕망을 건드린다는 것. 그런데 <방황하는 칼날>에는 그런 안전한 쾌감이 없다고 못 박습니다. 소설은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가해 소년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결론 내리지 않고, 사적 제재를 정의의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않으며, 법이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을 때 한 인간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그려낼 뿐이라고요.


제목 해석이 이 장의 정점이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아버지가 든 총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처벌하면서도 보호해야 하는 법, 그 법을 집행하면서도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경찰, 복수를 잘못이라 여기면서도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독자까지 모두 방향을 잃은 칼날이라는 것. 법은 존재하지만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정의를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정하지 못한다는 문장에서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소설이 봉합해주지 않는 불편함을 그대로 두는 편이 주제에 더 어울린다는 필자의 판단에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영화판들이 총에 실탄을 비워둔 선택은 관객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겠지만, 원작의 결말이 남기는 참담함 쪽이 이 이야기의 몫이라는 이야기였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해부하는 장은 온도가 또 다릅니다. 여기서는 감상보다 설계도를 읽습니다. 옴니버스처럼 보이지만 실은 장편의 구조적 완성도에 무게를 둔 작품이라며, 세 번째 에피소드가 기와 승에서 전과 결로 넘어가는 포석을 어떻게 놓았는지 따라갑니다. 편지가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 왜 쓰기 어려운지, 편지에 대사를 넣으면 읽는 감흥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같은 이야기는 창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관찰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좀비 영화의 설명량이 줄어든 과정이나 웹소설의 회빙환 관행을 끌어와 장르가 발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목도 체감이 잘 됐습니다. 힐링 소설을 두고 그냥 쉽게 읽히는 글 아니냐는 평을 반박하면서, 쉽게 읽힌다고 쓰기도 쉬운 건 아니라고 적은 문장은 위로처럼 읽혔어요. 예술 작품이면서 상품이기도 한 것의 숙명이라는 말로 스스로 균형을 잡는 태도도 좋았습니다.



그 장에서 가장 마음이 놓인 대목은 태어났기 때문에 삶은 가치 있다는 잡화점 주인의 대답이었습니다.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도 행복할 수 있을지를 묻는 편지 앞에서,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도 마침내 동의하는데, 필자는 그가 그냥 아버지 말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변했기 때문에 기적이 가능했다고 짚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먹고 오래 고민하면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문장이, 이 책에서 제가 접어둔 자리 중 하나입니다.


아쉬움도 적어둡니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난 뒤 빠르게 묶인 헌사의 성격이 강해서, 작품별 완성도의 높낮이를 따지는 냉정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100권이 넘는 다작 가운데 실패한 시도나 반복된 패턴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진 느낌이었어요. 다섯 사람의 온도 차가 큰 것도 처음에는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읽어갈수록 그게 장점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은 상처에서 사람을 읽고, 한 사람은 제도와 감정의 간극에서 윤리를 읽고, 한 사람은 설계도에서 기술을 읽습니다. 같은 작가를 두고 다섯 개의 창이 각각 다른 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어왔지만, 읽은 적 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든 책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그 직후에 나왔습니다. 추리소설 입문자에게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이 되겠고, 이미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어온 사람에게는 자기 감상을 언어로 정리해주는 거울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을 써보려는 사람이라면 다섯 작가가 흘리듯 적어놓은 실무의 고민들을 놓치지 않으실 듯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자리입니다. 낮은 아직 여름 끝을 붙잡고 있는데 해가 지고 나면 공기가 먼저 달라지는 시기죠. 표지의 집처럼 창마다 불이 켜지는 저녁이 길어지는 계절에,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보는 책 한 권이 옆에 있으면 그 저녁이 조금 덜 서늘해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다시 읽을 구실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그 구실을 충분히 해줄 거예요.


트릭을 파헤치는 책이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끝까지 사람의 사정을 놓지 않았는지를 동료 작가 다섯 명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책.


#히가시노게이고 #히가시노게이고추리의기술 #추리의기술 #알파미디어 #서평단 #북유럽카페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장르소설 #가가쿄이치로 #방황하는칼날 #나미야잡화점의기적 #용의자X의헌신 #백야행 #사회파미스터리 #한국추리작가협회 #소년법 #책추천 #신간도서 #독서기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