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다정한 말 연습 - 화내지 않고 후회하지 않게, 매일 실천하는 부모의 현명한 말 습관
성영은 지음 / 시대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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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짙은 초록 바탕에 크레파스로 문지른 듯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오른쪽 아래에 빨간 지붕 집 한 채와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이 아주 작게 놓여 있어요. 나무 사이로 흰 새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육아 실용서라기에는 그림책 쪽에 가까운 인상이라 처음엔 조금 낯설었습니다. 아래쪽 띠에 적힌 한 줄이 "부모의 다정한 말이 아이의 하루를 지켜 줍니다."인데, 그 문장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 집이 왜 저렇게 작게 앉혀졌는지 짐작이 됩니다. 지켜 준다는 말은 대개 아주 작은 것들 옆에 붙으니까요.


이 도서는 17년 차 현직 초등교사인 성영은 작가가 교실에서 지켜본 아이들과 부모의 언어를 정리한 책입니다. 단단한 아이를 만드는 말, 따뜻한 관계를 맺는 말, 꿈에 날개를 달아 주는 말로 세 파트를 나눴고, 꼭지마다 '다정 한 스푼'이라는 실천 코너가 붙습니다. 판형과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아 며칠에 걸쳐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두께예요.


앞부분에서 저를 오래 붙든 자리는 부모 입에서 쉽게 나오는 문장들을 죽 늘어놓은 대목이었습니다. "지금 숙제 안 하면 게임 시간 없어." "지금 안 오면 밥 못 먹는 거야." 소재만 바뀌고 구조는 똑같은 말들이죠. 저자는 이런 말이 순간적으로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먼저 인정합니다. 그다음에 왜 효과가 짧은지를 설명해요. 아이는 규칙을 스스로 안으로 들이지 못한 채 눈앞의 벌만 피하려 몸을 움직이고, 결국 부모의 눈치를 익힌다는 것. 성장은 순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못 박습니다.


설득력이 붙는 건 그 원인을 아이 쪽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협박성 언어의 뿌리를 부모 내면의 불안과 조급함에 둡니다.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 좋게 말했는데 통하지 않을 때 밀려오는 무력감. "아이를 협박하는 순간, 부모로서 마주하는 나의 진짜 두려움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아야 한다."라는 권유가 있는데, 진심으로 이가 썩을까 걱정인지 당장 말대로 하게 만들고 싶은 통제 욕구인지 구분해 보라는 이야기가 뒤에 붙습니다. 이 챕터의 비유는 '인스턴트 훈육'이에요. 당장의 허기를 채우기엔 빠르고 효과적이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에 협박을 견줍니다.


대안으로는 협박성 표현 열 가지를 '단호하지만 다정한 표현'으로 바꿔 놓은 대조표가 나옵니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는 "긴 시곗바늘이 5에 갈 때까지 준비하자."로 바뀝니다. 실용적이고 그대로 옮겨 써 볼 만합니다. 다만 여기서 가벼운 의문이 하나 남았어요. 저 문장이 입에서 나오려면 말하는 쪽에 얼마간 여유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협박이 튀어나오는 순간은 대개 그 여유가 다 소진된 시점입니다. 뒷부분에서 조언 금지 시간을 정해 두라는 제안이 나오니 저자도 이 간극을 알고 있었던 셈인데, 그 장치가 후반에 가서야 등장하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첫 파트에서부터 손에 쥐어 주었다면 대조표를 읽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것 같아요.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가면 결이 달라집니다. 저자가 몇 해 전 교권 침해로 몇 주 병가를 냈던 시기를 꺼내 놓는데,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두 번의 위로를 적어 두었어요. 사건 당일 찾아간 선배 교사는 종례 시간이었는데도 달려 나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말합니다. "어떻게 그 상태로 수업을 다 마쳤니. 얼마나 힘들었니…" 감정이 타당하다고 인정받은 것만으로 마음의 짐이 내려앉았다는 서술 바로 뒤에, 자신은 누군가에게 이런 위로를 해 준 적이 있었나 하는 반성이 붙습니다. 다른 한 번은 오래된 친구였고, 그 친구는 저자보다 먼저 눈물을 터뜨리며 함께 분노해 주었다고 합니다. 위로란 해결해 주는 일보다 상대의 감정 곁에 머물며 함께 걷는 일에 가깝다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말의 차이를 보여 주는 예문이 명료합니다. "그래도 다음엔 잘 되겠지."는 조언에 가깝고, "그 일은 정말 속상하겠는데? 너 너무 힘들었어."는 위로가 된다는 것. 전자는 머리로 듣는 말이고 후자는 몸으로 느끼는 말이라고 구분해 두었어요. 아이들에게는 "괜찮아."보다 "그럴 수 있지."가 닿는다고 합니다.


챕터 뒤쪽에서 이야기는 어른의 대화로 건너옵니다. 회사에서 종일 시달리다 퇴근한 아내에게 남편이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라고 중립을 지키는 장면이 예로 나오는데, 아이 이야기로 출발한 한 권이 여기서 슬쩍 방향을 틉니다. 마흔 후반쯤 되면 위로라는 이름으로 정리와 결론을 얹어 온 시간이 꽤 쌓여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건넨 말들이 어느 쪽에 가까웠는지 조용히 세어 보게 됐습니다.


세 번째 파트는 MBTI의 T와 F를 끌어와 아이의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판단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게 합니다. 도입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데, 뒤이어 나오는 단서가 무게를 잡아 줍니다. 아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규칙을 어긴 경우까지 지나친 공감으로 감싸는 것은 고장 난 브레이크를 만드는 일이라고 분명히 적어 두었어요. 다정함을 무조건 편들지 않는 이 균형 덕에 책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인간적인 문장은 저자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 지금이야. 아이가 연습 중이잖아." 아이도 연습 중이고 어른도 연습 중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짧게 말해 놓았습니다.


감정이 격해진 아이에게 옳은 말을 건네는 일을 저자는 불난 집 앞에서 설계도를 설명하는 상황에 견줍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건축 도면이 아니라 눈앞의 불을 꺼 줄 다정한 물 한 바가지라고요. 순서만 바꾸라는 이야기여서 오히려 실행 가능하게 들렸습니다. 부모 쪽 사정도 함께 감싸 줍니다. 아이의 울음과 짜증은 어른의 뇌에 위협 신호로 감지되고, 피로한 날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쪽보다 위험을 감지하는 쪽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에 그만 좀 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는 설명이 있어요. 제 안에 다정함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지 않아도 된다고, 그 회로를 쓰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고 적어 둔 문장 앞에서는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공감의 말을 닫혀 있던 문을 다시 열어 주는 신호탄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뒤에 붙은 실천 방법도 소박합니다. 아이가 화가 나 있을 때 3분이나 5분쯤 조언 금지 시간을 정해 두고 듣기만 하는 것, "그랬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속상했구나." 이 세 문장을 냉장고에 붙여 두고 손으로 옮겨 적어 보는 것. 벽에 붙여 두고 하루 한 번 소리 내어 연습하자는 권유까지 이어지는데, 텔레비전 육아 프로그램에서 부모들이 거울을 보며 문장을 읽던 장면도 같은 이유였겠구나 싶었습니다. 공감은 지식이 아니라 근육이라고 저자는 적어 두었어요.


책 끝자락의 에필로그 제목이 '다정함은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다'인데, 근육이라는 표현과 나란히 놓으면 이 한 권의 태도가 분명해집니다. 마음을 굳게 먹는 방식으로는 며칠을 못 가니 적고, 붙이고, 소리 내어 보는 장치를 만들어 두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실제로 '다정 한 스푼'에는 그날 내뱉은 협박성 말과 다정한 대안을 나란히 채우는 빈칸 표가 있고, 부록으로 감정 어휘 판까지 붙어 있습니다. 손에 쥐고 쓰는 성격이 강한 도서예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는 동안 좋았던 책과 다 읽은 뒤에도 쓸모가 남는 책이 갈리는데, 이 한 권은 뒤쪽에 속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시기가 한창인 분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지만, 아이가 이미 자라 대화가 뜸해진 집에서도 늦지 않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많아진 분들이 펼쳐도 남는 것이 있을 겁니다. 말의 온도를 다루는 책이라 대상을 아이로 한정할 필요가 없더군요.


처서를 앞둔 이맘때는 낮 더위가 여전한데도 새벽 공기에는 다른 결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여름의 열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시기라 한 해의 절반을 어떻게 보냈는지 계산이 서기도 하고요. 남은 넉 달 동안 집에서 오가는 말의 온도를 한 칸만 올려 보자는 마음으로 이 표지를 책상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다정한 말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매일 적고 고쳐 쓰며 익히는 습관이라는 것을, 교실에서 건져 올린 장면들로 차분히 설득해 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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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100만 원 버는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
미부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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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에 빨강, 거기에 형광 초록까지. 표지를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꽤 시끄럽다는 것이었어요. 오른쪽으로 치솟는 화살표에 계단처럼 쌓아 올린 막대까지 얹혀 있으니 서점 매대에서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쪽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바닥, 예측하면 물립니다. 표지가 내지르는 소리와 그 아래 한 줄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고, 펼쳐 보니 목소리의 주인은 뒤쪽이었습니다.


<퇴근 후 100만 원 버는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은 유튜브에서 미국 주식 이야기를 해온 미부기 저자의 첫 책입니다. 140x210 판형에 280쪽이라 손에 쥐는 감이 편했고, 챕터 표제지마다 초록색 캐릭터가 한 마리씩 앉아 있어서 표지에서 받은 긴장이 조금 풀렸어요. 투자서를 여러 권 들춰본 사람 입장에서, 이런 사소한 배려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책은 확정매매라는 원칙을 축으로 삼습니다. 확인된 조건에서만 행동하고, 확인되지 않으면 정지한다. 문장으로 옮기면 여덟 글자면 끝나는데, 이 책은 앞의 절반을 여기에 씁니다.


1부에서 눈길이 오래 간 곳은 FOMO를 다룬 장이었습니다. 놓칠까 봐 두려운 심리를 저자는 개인의 나약함으로 두지 않아요. 무리에서 소외되면 살아남지 못했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뇌에 새겨진 본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투자하면서 이 감정을 느낀다고 먼저 털어놓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구분이 이 장의 핵심이었어요.


"FOMO를 느끼는 것과 FOMO에 끌려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읽는 사람을 몰아세우지 않으면서 할 말은 하는 방식입니다. 손실 때문에 불안한 건 어쨌든 자기가 선택한 종목에 대한 감정인데, FOMO는 분석해보지도 않은 종목을 남들이 산다는 이유로 따라가게 만든다는 지적도 뼈가 있었습니다. 특히 SNS와 숏폼이 하루 종일 수익 인증을 쏟아내는 환경을 짚는 대목은 한국 개인투자자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이야기라 넘기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 장에는 FOMO 진행 5단계 도표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계좌가 무너지는 마지막 단계보다 두 번째와 네 번째를 경계하라고 합니다. 손실을 본 뒤 왜 더 빨리 사지 않았을까를 떠올리는 순간이 잘못된 학습의 출발이라는 것, 그리고 만회하려는 마음으로 평소의 두세 배를 넣는 순간 게임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열 개 항목짜리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도 함께 있는데, 솔직히 웬만한 투자자라면 세 개는 무난하게 걸릴 만한 문항들입니다. 정밀한 진단표라기보다 한 번 멈춰 세우려는 장치로 읽혔고, 그 정도 목적이라면 제 몫은 하는 셈이겠지요.


극복법의 첫 단추가 인정하기라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감정을 없애라고 하지 않고, 느낄 때마다 이건 FOMO다라고 이름을 붙여보라고 권해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는 설명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 명명과 같은 접근인데, 투자서의 첫 번째 해법으로 이걸 꺼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비교 대상을 지난달의 자신으로 옮기라는 조언도 함께 놓여 있고요. 지난달보다 기준을 더 잘 지켰는지, 감정적 매매를 줄였는지를 성과로 세는 방식입니다.


4장은 톤이 한층 단단해집니다. 정지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뇌의 작동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사지 않은 종목이 오르면 계좌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도 돈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진단이 특히 정확했어요. 머릿속에서만 가상의 수익을 만들고, 그걸 놓쳤다고 해석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 대목에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정지를 인증하는 사람은 없어요."


시장에서는 매매한 사람만 보이고 기다린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모두가 뭔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관망하는 걸 게으름이나 무능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저자는 실제로 자신이 투자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정지라고 밝힙니다. 지수가 중요한 구간에 왔는지, 섹터 흐름이 바뀌는지, 세워둔 시나리오가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요.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은 쉬는 게 아니라 관찰이라는 겁니다.


복리를 엔진에 비유한 문단도 좋았습니다. 엔진이 돌아가려면 계좌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큰 손실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린다는 이야기. 손실률별 복구 수익률 표가 이 논리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데, 절반을 잃으면 원금으로 돌아가는 데 백 퍼센트가 필요하다는 한 줄만 봐도 충분히 서늘합니다.


다만 그 앞 페이지의 복리 시뮬레이션은 조금 다르게 읽혔어요. 원금 천만 원에 월 십 퍼센트를 열두 달 유지하면 이렇게 된다는 표인데, 개인투자자에게 그 조건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뒤쪽에서 같은 금액을 벌기까지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몇 분이 걸릴 수도 있다며 과장이 아니라고 덧붙이는 부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측과 과열을 경계하라고 일관되게 말해온 책의 온도와 견주면 이 대목들은 살짝 뜨겁습니다. 물론 저자는 곧바로 돈이 들어오는 속도와 나가는 속도가 같다고 균형을 잡고, 구조 없이 속도만 빨라지면 그 속도는 반대 방향을 향한다고 못박습니다. 그래도 표지의 숫자와 겹쳐 읽히는 자리인 만큼, 이 부분은 한 번 걸러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후반의 15장은 제목의 숫자를 저자가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여줍니다. 처음에 백만 원은 목표지만 구조가 자리 잡으면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 한 번의 운으로 버는 것과 일정 주기마다 반복해서 버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정리합니다.


같은 장에서 직장인 투자자의 강점을 짚는 대목은,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고맙게 읽은 부분이었습니다. 월급이 있으니 이번 달 매매를 전부 쉬어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고, 그 안전망 덕분에 오히려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 그리고 퇴근 후에만 시장을 볼 수 있다는 제약이 역설적으로 최고의 필터가 된다는 이야기. 장 중에 충동적으로 들어가는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지니까요. 종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다음 날 계획을 세우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투자에 불리하다고 여겨온 사람이라면 이 몇 페이지에서 생각이 한 번 뒤집힐 겁니다. 시장을 오래 보다 보면 돈을 잃는 이유가 기회를 놓쳐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보고 너무 자주 반응해서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문장 앞에서는, 저 역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종목을 알려주는 안내서로 읽기에는 아깝습니다. 차트를 읽는 기술은 2부에 지지와 저항, 추세, 이동평균선, 거래량, 캔들 순으로 정직하게 정리돼 있고, 초보자가 따라가기에 무리 없는 밀도예요. 다만 이 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절에 있습니다. 확정매매가 삶의 태도가 될 때. 삶에서도 우리는 자주 확인되지 않은 것에 베팅하고, 방향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는 지적은 계좌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틀린 시나리오는 틀린 시나리오라는 담담한 한 줄이 오래 남았어요.


책의 끝자락에서 저자는 기다림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다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투자 경험이 적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에게도, 몇 년째 계좌가 제자리인 이유를 기술 부족으로만 여겨온 분에게도 이 문장은 다르게 읽힐 것 같습니다. 반대로 빠른 수익 공식을 기대하고 집어 들면 1부에서 답답해질 수도 있겠어요. 이 책은 절반 가까이를 멈추는 법에 쓰는 책이니까요.


여러 분야의 책을 읽어오면서 경제경영서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쪽이었는데, 이번에는 기법을 배웠다기보다 태도 하나를 정리한 기분입니다.


늦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아침저녁 공기는 조금씩 결이 달라지는 시기입니다. 여름 내내 조급했던 마음을 한 템포 늦추기에 나쁘지 않은 계절이고요. 이 책에서 얻은 건 오늘 무엇을 사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으면 그냥 지켜봐도 괜찮다는 허락이었습니다. 그 허락이 계좌 바깥에서도 꽤 쓸모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닥을 맞히는 기술 대신, 멈춰 설 줄 아는 기준을 알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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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기록법 -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조윤제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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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받아 들고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었어요. 한 손에 들어오는 판형에 두께도 얇아서, 가방 어디에 넣어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표지는 미색 한지 질감 위에 붓과 벼루, 연적, 쌓아 올린 책 묶음이 가는 펜선으로 그려져 있고, 그 옆으로 붉은 세로 글씨가 곧게 내려옵니다. 선비의 서안을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구도라,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보는 매끈함과는 결이 다르게 단정했습니다. <다산의 기록법>은 그렇게 조용한 첫인상으로 시작됐습니다.


조윤제 작가는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 중에 500여 권을 남긴 힘을 천재성 쪽에서 찾지 않습니다. 초서, 관찰, 축적, 차록으로 시작해 분류와 편집을 거쳐 증언과 가르침까지, 열여덟 가지 기록법으로 그 힘을 풀어냅니다. 각 장 끝에는 실천 가이드가 붙어 있어서, 옛사람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게 하려는 편집자의 손길도 느껴집니다.


첫 꼭지가 초서인데, 여기서 조금 뜻밖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다산이 말한 초서는 좋은 문장을 베껴 적는 기술이 아니었어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하는 저울이 마음에 먼저 서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나 책 한 권을 읽을 때는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뽑아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보내야 한다."


이 문장을 두고 저는 흘려보낸다는 쪽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장 앱과 스크랩 폴더에 담아 두기만 하고 다시 열어 보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모으는 일보다 버리는 일이 훨씬 어려운 기술이라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다산은 같은 책을 반복해 읽기만 하는 공부를 소를 탄 사람에 빗댔는데, "소를 탄 사람은 자기 소가 제일 빠른 줄 안다"는 한 줄이 유독 서늘하게 읽혔어요.


2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의 무대가 달라집니다. 다산조차 바라보기만 해도 기가 꺾여 여러 번 덮었던 책이 <주역>이었다고 해요. 유배지에서 다른 책을 다 거두고 그 한 부만 책상에 올려 둔 뒤로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읊는 것에서 밥상을 대하고 뒷간에 가고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까지 <주역> 아닌 것이 없었다고 스스로 적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메모와 해설이 나중에 <주역사전>이 되었고요.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다산에게 책이란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이 아니었다고 정리합니다. 이미 써 둔 기록을 다시 엮는 과정이었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 장면 앞에서는 감탄과 거리감이 같이 왔습니다. 18년이라는 유배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밀도이기도 하니까요. 하루의 대부분을 다른 일에 쓰는 사람이 그 몰입을 어떻게 나눠 가질 수 있는지, 책은 그 질문에는 조금 덜 답해 주는 편입니다. 각 장 끝의 가이드가 그 간격을 메우려 하고 있지만, 실천 항목이 서너 단계로 압축되어 있어서 조금 더 촘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어요.


그럼에도 3장에 이르러 마음이 풀렸습니다.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회갑을 맞은 해에, 다산은 살아 있는 동안 자기 묘지명을 직접 씁니다. 남이 죽은 뒤에 써 주는 글을 스스로 앞당겨 쓴 셈이죠. 거기에 실패한 경험도 후회스러운 과거도 남김없이 적어 넣고는 "취하고 버릴 것을 드러내어 일가의 글로서 갖추었다"고 매듭짓습니다. 초서에서 말한 그 저울이 이번에는 자기 생애를 향해 놓인 겁니다.


같은 장에 실린 문답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유배지에서 마당을 쓸고 샘을 파고 꽃을 심는 다산에게, 한 노인이 내일이라도 사면되면 떠날 텐데 왜 평생 살 사람처럼 계획을 세우느냐고 물었어요. 다산은 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사람이 선창 안에 물 한 잔을 붓고 갈댓잎 배를 띄운 뒤, 그 뜬 것을 비웃으며 정작 자기가 큰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어떻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잠시 머무는 자리라고 대충 살지 않았던 사람의 대답입니다. 지금 있는 곳이 임시라고 느껴질 때 꺼내 볼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4장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근과 돌림병으로 길에 시체가 즐비하던 해, 다산은 온 집에 들끓는 파리 떼를 굶어 죽은 백성이 몸을 바꿔 태어난 것이라 여기고 상을 차립니다.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적으면서요. 관리들이 태평성대라 보고하던 시절에, 아무도 적지 않은 진실을 이런 방식으로 남긴 겁니다. 기록이 개인의 자산에서 시대의 증언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여기였습니다.


요즘 노트 쓰기와 메모 정리에 관심 두는 분들이 부쩍 늘었지요. 도구는 계속 좋아지는데 남는 것이 없다는 답답함도 함께 늘어난 것 같고요.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자리를 도구가 아니라 기준에서 찾습니다.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가 추천사에서 다산의 절망 한복판에 놓인 묘지명 장면을 특히 짚은 이유도 그래서일 겁니다. 오래 기록해 왔지만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해 막막한 사람이라면 2장이 먼저 읽힐 테고, 무엇을 남길지부터 막막한 쪽이라면 1장이 오래 붙들 것 같습니다. 고전을 어렵게 여기던 분들에게도 문턱이 낮은 편이에요. 원문 인용마다 해설이 바로 붙고, 판형이 작아서 짬짬이 몇 쪽씩 읽어 나가기 좋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정리해 두지 않으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걸 자주 실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한 권은 읽는 방식 자체를 한 번 점검하게 해 준 도서였습니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나는 고생이 매우 많다. 그러나 너희들이 책을 읽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것을 들으면 이로써 근심이 사라진다"는 대목이 있는데, 방법을 말하는 책의 첫머리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놓여 있다는 점이 이 책을 끝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줬어요.


늦여름 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은 저녁, 창밖 매미 소리가 하루하루 옅어지는 걸 들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자리에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일도 결국 기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을 문턱에 놓고 읽기에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다산의 기록은 많이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기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조용히 일러 주는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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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쓰기로 했습니다
신은정 지음 / 행복우물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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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짙은 초록 막대 열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중 하나만 노란색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습니다. 신은정 작가의 <나답게 쓰기로 했습니다>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서가에 꽂힌 책등이 떠올랐어요. 조금 더 보니 줄에서 살짝 빠져나온 한 사람 같기도 하더군요. 제목에서 '나'만 노란 손글씨로 처리하고 괄호로 감싼 걸 보면, 표지 디자인 자체가 이미 책의 주장을 한 번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손에 쥐어 보면 핸드북 판형이라 얇고 가볍습니다. 백육십여 쪽에 다섯 개 장과 부록까지 들어 있으니 밀도는 있는데,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짬짬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 두께예요. 글쓰기 책은 대개 두껍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첫 장 넘기기가 쉽지 않은데, 이 도서는 그 문턱을 판형에서부터 낮춰 놓은 것 같습니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왜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첫 줄이 안 나오는가. 저자는 그 답을 재능에서 찾지 않아요. "위대한 일은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실행할 용기, 첫 줄을 쓸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1장에서 인용한 박혜란 작가의 육아 이야기를 저자가 방관이 아닌 방목으로 읽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를 붙들어 가르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읽고 쓰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챕터는 '엄마'를 청자로 두고 쓰였지만, 물려주는 것이 말이 아니라 태도라는 이야기는 누가 읽어도 자기 자리로 옮겨 오게 되는 것 같아요.


3장에 오면 책의 목소리가 실용서 쪽으로 확 기웁니다. 감정을 종이에 쏟아내기만 하면 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단, 글은 읽히는 순간 완성되니 독자가 있어야 한다는 정리가 나오죠. 그 뒤에 붙은 두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다정한 자리라고 봅니다.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면서 특별해진다."


방법도 구체적입니다. 중심 독자를 한 명 정하고 그 대상을 넓혀 가라는 조언, 관찰에서 기획, 집필, 퇴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독자가 원하는 것을 재미와 효용과 감동 셋으로 압축한 정리까지 군더더기가 없어요. 오감을 다룬 챕터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말을 끌어옵니다. 달이 빛난다고 하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 달라는 그 말이요. 저자는 오감 글쓰기를 독자에게 4D 영화를 보여주는 일에 비유하는데, 슬펐다는 단어는 머리로 이해되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턱끝으로 떨어졌다는 문장은 가슴으로 이해된다는 설명이 쉽게 와닿습니다. 그러면서도 "오감 글쓰기는 대단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저 더 다정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눌러 두는 태도가 좋았어요.


4장은 챗GPT를 다룹니다.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인데, 저자는 도구가 잘하는 일을 자료 조사와 문장 정리와 구조 제안으로 한정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활용해도 깊숙이 숨어 있는 진심은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그 진심에 저자가 붙인 이름이 '내면의 진동'이에요. 자기가 쓴 글을 밤에 혼자 읽을 때 부끄러우면서도 예쁘고,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싶으면서 누군가는 봐줬으면 좋겠는 묘한 마음. 알고리즘이 계산할 수 없는 건 문장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마음이라는 게 저자의 답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에서 잠깐 갸웃했습니다. 앞장에서는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하고, 여기서는 아무도 안 읽었으면 싶은 마음까지 껴안으라고 하니까요. 제목이 내건 '나답게'와 독자 맞춤 사이의 간격은 저자가 마지막에 독자가 원하는 것에 제 경험을 덧붙이라는 공식으로 봉합하는데, 실제로 글을 쓸 때 그 접점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건 책의 흠이라기보다 글쓰기라는 일 자체가 품고 있는 모순에 가깝겠지요.


이 도서가 흔한 글쓰기 안내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뒷부분입니다. 5장 후반부는 잘 안 됐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요. 탈고를 다룬 챕터에서 저자는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는 말을 끌어온 뒤, 제 원고 역시 쓰레기 중 쓰레기였다고 적습니다. 어찌나 재미없고 지루한지 더 못 읽고 노트북을 덮어버렸다는 고백, 고치고 또 고쳐도 수정할 것이 계속 보인다며 "이거 정말 미치는 일이다"라고 내뱉는 대목에서 저는 이 저자를 믿게 됐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가 확연히 다르다는 관찰도 해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고요.


이어지는 챕터에서는 첫 책을 냈을 때의 욕심을 그대로 꺼내 놓습니다. 부끄럽지만 베스트셀러의 꿈을 꿨고, 사전 예약 기간에 책 팔기에만 급급해서 책 한 권을 썼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요. 희망이 욕심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행동과 말투에도 묻어나왔을 거라는 자기 진단까지 나옵니다. 성공담으로 마감하는 실용서가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꽤 드문 마무리예요. 그리고 저자는 그 시간을 통해 이전보다 단단한 글을 담대하게 써 나갈 수 있게 되었다며 "실패는 보물 같은 경험이 되었다."로 정리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합니다. 표지 카피는 모두가 공감하는 나의 이야기가 브랜드가 된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책의 끝자락은 잘될 거라는 환상을 버리자는 쪽으로 착지하거든요. 퍼스널 브랜딩을 내걸어 놓고 성과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으라 하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잠깐 발이 엇갈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쪽이 훨씬 정직한 순서 같기도 해요. 결과를 약속하는 책은 흔하고, 결과가 오지 않아도 계속하라고 말하는 책은 드무니까요.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나면 후자의 말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 한 권을 붙잡고 있을 만한 사람을 떠올려 봤어요. 블로그에 몇 년째 글을 올리면서도 제 이름을 걸어 본 적은 없는 분,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만 접어 둔 채 나이만 먹었다고 여기는 분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챗GPT를 켜 놓고 원하는 글이 안 나와 답답했던 경험이 있다면 4장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고요. 부록에 실린 글감 예시와 활동지는 혼자보다 모임에서 활용도가 높아 보입니다. 다만 탈고와 투고 절차를 아주 상세하게 익히려는 분이라면 이 판형의 분량이 조금 아쉬울 수 있겠습니다. 그 대신 시작을 미루던 사람의 등을 밀어 주는 일에는 확실히 강한 안내서예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소개할 말을 고르는 일에만 익숙해지기 쉬운데, 이번엔 조금 달랐어요. 서평 쓰기 노하우를 다룬 챕터를 읽고 나서 서평이라는 글도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완성된다는 저자의 관점을 빌려 쓰게 됐거든요. 책을 읽고 쓰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제 이야기는 뒤로 미뤄 두었다는 걸 이번에 인정하게 됐습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녁 공기에는 확실히 다른 결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매미 소리가 조금씩 얇아지는 시기죠. 여름 내내 미뤄 둔 일이 있다면 가을이 오기 전에 한 줄쯤 시작해 보기 좋은 때입니다. 저자가 책 안에 남긴 말을 그대로 옮기며 닫습니다. "진심으로 써 보자. 쓰다듬듯 읽어 보자."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첫 줄을 미루고 있을 뿐이라고, 실패담까지 꺼내 보이며 등을 밀어 주는 얇고 단단한 글쓰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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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를 위한 부자 습관, 부자 마인드 - 십 대의 사고방식이 평생의 부를 결정한다
한지우 지음 / 다빈치페이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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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절약이라는 말에는 오래전부터 인색하다는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십 대를 위한 부자 습관, 부자 마인드>는 그 단어의 뿌리부터 파헤치며 시작하는데, 영어 'Thrift'가 '번영하다'라는 뜻의 'Thrive'에서 나왔다는 대목에서 생각이 한 번 멈춥니다. 아껴 쓴다는 행위가 본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서 번성시킨다는 의미였다는 것.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궁색함의 증거처럼 취급받아 온 시간을 떠올리면, 어원 하나가 꽤 큰 정정을 해 주는 셈입니다.


한지우 작가가 쓰고 다빈치페이지에서 펴낸 이 책은 청소년을 향해 쓰였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화살이 어른 쪽으로도 자주 날아옵니다. 저자가 내세우는 개념은 '해피리치'예요. 많이 버는 사람보다 잘 다루는 사람이 오래간다는 전제 위에서,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뇌과학과 행복학을 넘나들며 돈을 대하는 태도를 여섯 개 장에 걸쳐 정리합니다. 판형과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아 며칠에 나눠 읽기 좋고, 문장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순하게 풀려 있습니다.


가장 오래 붙들었던 대목은 부자들의 생활 습관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이웃집 백만장자>의 추적 결과를 인용하면서,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평범한 동네에서 검소하게 살고 차를 십 년 이상 타며 자녀에게 집안 사정을 알리지 않기도 한다고 전합니다. 이유가 인상적이더군요. 소비의 유혹에 아예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램지솔루션의 2022년 리포트도 비슷한 그림을 보여 주는데, 돈을 과시하기보다 돈이 주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박한 집에 살더라는 특징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스스로 김을 뺍니다. 절약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문장을 먼저 꺼내 놓거든요. 독자가 지을 시큰둥한 표정을 저자가 알고 있다는 뜻이라, 이후 설명이 설교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답도 정직합니다. 쉬워 보이는 그 습관이 지금 사회에서는 몹시 어려워졌다는 것. 마케팅은 24시간 작동하고, SNS를 켜면 팔로워들의 신상 자랑이 팝콘처럼 튀어나오고, 우리는 서로의 소유물로 위치를 잰다고 짚습니다. "단단한 부의 철학과 습관이 없다면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책 전체의 방향을 쥐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절약의 목적을 규정하는 방식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자는 모은 돈이 결국 하기 싫은 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을 쥐여 준다고 말합니다. 통장 잔고를 늘리는 일이 자유의 크기를 늘리는 일과 이어진다는 관점인데, 사십 대 후반의 자리에서 읽으니 이 문장이 저축의 이유를 다시 정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을 소유 나누기 욕망으로 설명하는 폴 사무엘슨의 공식도 나옵니다. 분자가 커지면 분모도 함께 커져 결국 제자리에 머문다는 진단 끝에 저자는 이렇게 권합니다. "소유를 늘리는 데는 일종의 한계도 있고 돈도 많이 들어가니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을 택해 봅시다." 어른에게는 수긍이 가는 말인데, 십 대 독자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릴 여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나이에 욕망을 줄이라는 조언이 먼저 도착하면, 꿈의 크기를 낮추라는 말로 오해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뒤로 갈수록 균형이 잡히긴 합니다. 상대적 욕망과 절대적 욕망을 갈라 놓고, 남과 견주는 쪽의 욕망만 문제 삼거든요.


일과 몰입을 다룬 자리에서는 스시 장인 오노 지로가 등장합니다. "돈은 더 이상 큰 의미가 되지 않아요. 그저 더 나은 기술을 얻는다는 것, 더 나은 스시를 만든다는 것, 그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현장을 지키는 이유를 묻는 흔한 질문에 대한 답이지요.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해피리치에게 은퇴는 없다고 정리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 여가만 남은 삶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우리 사회에도 던져볼 만한 물음입니다. 다만 이 결론에는 몰입할 만한 천직을 이미 찾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 일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순서를 권할지, 책이 조금 더 말을 보태 주었으면 싶었어요.


중반부로 넘어가면 결이 달라집니다. 돈을 다룬 장의 문패에 놓인 탈무드 문장이 셉니다. "어린 자녀에게 돈 버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녀를 도둑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이진이 불려 나옵니다. IMF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던 아이가 절대 행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요. 저자는 이것을 우리 사회의 집단적 상처라 부르면서, 부모의 경제적 위기가 다음 세대의 인성까지 바꿔 놓는 과정을 짚습니다. 돈이 개인과 가정의 존엄을 지키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는 서술도 여기 붙어 있는데, 그 시절을 통과한 세대라면 담담하게 읽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이 장에서 가장 설득력 있었던 근거는 따로 있습니다. 한 사람의 경제 성향이 주로 청년기에 형성되어 평생 잘 변하지 않고, 그 시기 대부분을 부모의 보호 아래 보내기 때문에 돈에 대한 태도가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연구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책이라는 표지의 문구가 왜 붙었는지, 이 문단 하나로 설명이 됩니다.


심리학 용어 '스키마'를 끌어와 부에 대한 인식의 틀을 점검하자고 제안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이미 굳은 인지적 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상식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비상식일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뒤이어 부자는 태생부터 다르다거나 똑똑한 사람만 부자가 된다는 통념을 하나씩 해체합니다. 다만 이 흐름에서 나폴레온 힐이나 로버트 기요사키 같은 성공학 계열의 목소리가 나란히 호명되는 건 조금 조심스러웠습니다. 저자도 '다소 과격하게'라는 단서를 달아 거리를 두긴 했지만, 앞장에서 절약과 몰입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던 결과는 온도가 달라 보였어요.


마지막 장은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애플 하면 잡스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자는 동업자 워즈니악 쪽을 해피리치의 전형으로 세웁니다. 회사가 커진 뒤에도 경영을 원하지 않았고, 즐겁지 않은 일이라면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말했고, 그런 뜻에서 애플사가 자기 인생의 독사과 같다고 표현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성공 비결을 묻는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두 가지 목표도 오래 남았습니다. 세상을 바꿀 물건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기준대로 인생을 사는 것. 아내와 웃고 있는 그를 지켜보던 인터뷰어가 잡스가 더 성공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고 속으로 되뇌는 장면에서, 성공이라는 단어의 눈금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용히 증명됩니다.


존 템플턴 편은 조금 복잡한 감정을 남겼습니다.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투자한다는 그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1997년 12월 한국 주식시장에 들어가 큰 수익을 냈다는 사례가 나오거든요. 앞에서 IMF를 우리의 집단적 상처로 꺼내 놓았던 바로 그 책에서요. 투자 원리로만 보면 교과서 같은 사례지만,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시점이 누군가에게는 진입 시점이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지나갑니다. 두 장면 사이의 온도차를 저자가 한 줄이라도 짚어 주었다면, 십 대 독자에게 돈의 얼굴을 더 정직하게 보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템플턴이라는 인물 자체는 자녀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고 전 재산을 재단에 기증한 사람이고, 행복은 무지개처럼 좇아가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중에 얻어지는 부산물이라고 정리한 그의 관점은 이 책의 주장과 잘 맞물립니다.


각 꼭지 끝에 놓인 '생각 더하기' 코너도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일이 금지된 나라를 상상해 보게 하거나, 우리가 아는 돈과 부자와 부유함의 상식 중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식이에요. 답을 주지 않고 질문만 남기는 구성이라, 아이 혼자 읽고 덮기보다 어른이 옆에서 같이 답을 만들어 볼 때 훨씬 값이 나올 겁니다.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어떤 도서는 서평을 쓰고 나면 손을 떠나고, 어떤 도서는 책장 한쪽에 그대로 남습니다. 이 한 권은 후자에 속할 것 같아요. 돈 이야기를 꺼내는 일을 어딘가 부끄럽게 여겨 온 문화 속에서, 그 대화를 여는 마중물로 삼기에 알맞은 안내서라고 봅니다. 경제 지식이 급한 아이보다는 돈을 대하는 기준부터 세워야 할 아이에게 먼저 쥐여 주고 싶고, 사실 그 기준이 흔들리는 건 어른 쪽도 마찬가지지요.


매미 소리가 옅어지고 아침 공기에 서늘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여름 내내 미뤄 둔 이야기들을 꺼내기에 나쁘지 않은 계절이고, 용돈이나 통장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화제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이 책은 그 대화의 첫 문장을 대신 써 주는 정도의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를 묻기 전에 돈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먼저 정리해 주는, 부모와 십 대가 나란히 읽기 좋은 경제 인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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