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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쓰기로 했습니다
신은정 지음 / 행복우물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짙은 초록 막대 열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중 하나만 노란색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습니다. 신은정 작가의 <나답게 쓰기로 했습니다>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서가에 꽂힌 책등이 떠올랐어요. 조금 더 보니 줄에서 살짝 빠져나온 한 사람 같기도 하더군요. 제목에서 '나'만 노란 손글씨로 처리하고 괄호로 감싼 걸 보면, 표지 디자인 자체가 이미 책의 주장을 한 번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손에 쥐어 보면 핸드북 판형이라 얇고 가볍습니다. 백육십여 쪽에 다섯 개 장과 부록까지 들어 있으니 밀도는 있는데,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짬짬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 두께예요. 글쓰기 책은 대개 두껍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첫 장 넘기기가 쉽지 않은데, 이 도서는 그 문턱을 판형에서부터 낮춰 놓은 것 같습니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왜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첫 줄이 안 나오는가. 저자는 그 답을 재능에서 찾지 않아요. "위대한 일은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실행할 용기, 첫 줄을 쓸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1장에서 인용한 박혜란 작가의 육아 이야기를 저자가 방관이 아닌 방목으로 읽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를 붙들어 가르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읽고 쓰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챕터는 '엄마'를 청자로 두고 쓰였지만, 물려주는 것이 말이 아니라 태도라는 이야기는 누가 읽어도 자기 자리로 옮겨 오게 되는 것 같아요.

3장에 오면 책의 목소리가 실용서 쪽으로 확 기웁니다. 감정을 종이에 쏟아내기만 하면 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단, 글은 읽히는 순간 완성되니 독자가 있어야 한다는 정리가 나오죠. 그 뒤에 붙은 두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다정한 자리라고 봅니다.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면서 특별해진다."
방법도 구체적입니다. 중심 독자를 한 명 정하고 그 대상을 넓혀 가라는 조언, 관찰에서 기획, 집필, 퇴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독자가 원하는 것을 재미와 효용과 감동 셋으로 압축한 정리까지 군더더기가 없어요. 오감을 다룬 챕터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말을 끌어옵니다. 달이 빛난다고 하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 달라는 그 말이요. 저자는 오감 글쓰기를 독자에게 4D 영화를 보여주는 일에 비유하는데, 슬펐다는 단어는 머리로 이해되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턱끝으로 떨어졌다는 문장은 가슴으로 이해된다는 설명이 쉽게 와닿습니다. 그러면서도 "오감 글쓰기는 대단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저 더 다정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눌러 두는 태도가 좋았어요.

4장은 챗GPT를 다룹니다.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인데, 저자는 도구가 잘하는 일을 자료 조사와 문장 정리와 구조 제안으로 한정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활용해도 깊숙이 숨어 있는 진심은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그 진심에 저자가 붙인 이름이 '내면의 진동'이에요. 자기가 쓴 글을 밤에 혼자 읽을 때 부끄러우면서도 예쁘고,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싶으면서 누군가는 봐줬으면 좋겠는 묘한 마음. 알고리즘이 계산할 수 없는 건 문장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마음이라는 게 저자의 답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에서 잠깐 갸웃했습니다. 앞장에서는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하고, 여기서는 아무도 안 읽었으면 싶은 마음까지 껴안으라고 하니까요. 제목이 내건 '나답게'와 독자 맞춤 사이의 간격은 저자가 마지막에 독자가 원하는 것에 제 경험을 덧붙이라는 공식으로 봉합하는데, 실제로 글을 쓸 때 그 접점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건 책의 흠이라기보다 글쓰기라는 일 자체가 품고 있는 모순에 가깝겠지요.

이 도서가 흔한 글쓰기 안내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뒷부분입니다. 5장 후반부는 잘 안 됐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요. 탈고를 다룬 챕터에서 저자는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는 말을 끌어온 뒤, 제 원고 역시 쓰레기 중 쓰레기였다고 적습니다. 어찌나 재미없고 지루한지 더 못 읽고 노트북을 덮어버렸다는 고백, 고치고 또 고쳐도 수정할 것이 계속 보인다며 "이거 정말 미치는 일이다"라고 내뱉는 대목에서 저는 이 저자를 믿게 됐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가 확연히 다르다는 관찰도 해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고요.
이어지는 챕터에서는 첫 책을 냈을 때의 욕심을 그대로 꺼내 놓습니다. 부끄럽지만 베스트셀러의 꿈을 꿨고, 사전 예약 기간에 책 팔기에만 급급해서 책 한 권을 썼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요. 희망이 욕심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행동과 말투에도 묻어나왔을 거라는 자기 진단까지 나옵니다. 성공담으로 마감하는 실용서가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꽤 드문 마무리예요. 그리고 저자는 그 시간을 통해 이전보다 단단한 글을 담대하게 써 나갈 수 있게 되었다며 "실패는 보물 같은 경험이 되었다."로 정리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합니다. 표지 카피는 모두가 공감하는 나의 이야기가 브랜드가 된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책의 끝자락은 잘될 거라는 환상을 버리자는 쪽으로 착지하거든요. 퍼스널 브랜딩을 내걸어 놓고 성과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으라 하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잠깐 발이 엇갈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쪽이 훨씬 정직한 순서 같기도 해요. 결과를 약속하는 책은 흔하고, 결과가 오지 않아도 계속하라고 말하는 책은 드무니까요.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나면 후자의 말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 한 권을 붙잡고 있을 만한 사람을 떠올려 봤어요. 블로그에 몇 년째 글을 올리면서도 제 이름을 걸어 본 적은 없는 분,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만 접어 둔 채 나이만 먹었다고 여기는 분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챗GPT를 켜 놓고 원하는 글이 안 나와 답답했던 경험이 있다면 4장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고요. 부록에 실린 글감 예시와 활동지는 혼자보다 모임에서 활용도가 높아 보입니다. 다만 탈고와 투고 절차를 아주 상세하게 익히려는 분이라면 이 판형의 분량이 조금 아쉬울 수 있겠습니다. 그 대신 시작을 미루던 사람의 등을 밀어 주는 일에는 확실히 강한 안내서예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소개할 말을 고르는 일에만 익숙해지기 쉬운데, 이번엔 조금 달랐어요. 서평 쓰기 노하우를 다룬 챕터를 읽고 나서 서평이라는 글도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완성된다는 저자의 관점을 빌려 쓰게 됐거든요. 책을 읽고 쓰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제 이야기는 뒤로 미뤄 두었다는 걸 이번에 인정하게 됐습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녁 공기에는 확실히 다른 결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매미 소리가 조금씩 얇아지는 시기죠. 여름 내내 미뤄 둔 일이 있다면 가을이 오기 전에 한 줄쯤 시작해 보기 좋은 때입니다. 저자가 책 안에 남긴 말을 그대로 옮기며 닫습니다. "진심으로 써 보자. 쓰다듬듯 읽어 보자."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첫 줄을 미루고 있을 뿐이라고, 실패담까지 꺼내 보이며 등을 밀어 주는 얇고 단단한 글쓰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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