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상처를 주는 본질적인 공격성과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너그러우면서도 숨김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용기와 자존감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 모습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로 살아간다. - P70

해치지 않음의 기본은 깨어 있는 마음이다.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되, 존중과 자비를 가지고 꾸밈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명상을 할 때는 깨어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항상 그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경험이라도 더 이상 눈을 감거나 귀와 코를 막지 않은 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일이 차츰 쌓여갈 때 우리는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되며,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일생 동안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다. - P70

‘해치지 않는‘ 두 번째 단계는 자제심이다. 깨어있음이 바탕이라면 자제심은 길이다. 그런데 자제심이라는 단어는 왠지 우리를옥죄고 긴장감을 자아낸다. 활기차며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답답한 자제심 따위는 실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든다. 하지만 자제심은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로 다시 태어나기위해 꼭 갖춰야 할 요건이다. 이는 갑갑하고 따분한 순간이 와도다른 기분 전환거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공백이 생길 때 그것을 금세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는 게 수행이기 때문이다. - P71

그때 나를 지도했던 스승은 불편함을 느낄 때 내가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나는 불편한 기분이 들면 가렵지 않은데 코나 머리를 긁었고, 무심코 귀를 잡아당기거나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중간에 자책하는 기분이 들 때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그날 내가 받은 가르침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말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며,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만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애쓴다. 끊임없이 기분 전환거리를 찾는다. 이 상황을 알아차림으로써 우리가 깨닫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세상 모든 게 무상하다는 것이다. 자제심은 우리가 이런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삶의자세다. 그것은 습관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을 멈추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즐겁게 하는 행위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제심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에서 어떻게 탐욕이 발생하며,
그것이 우리를 어떤 행동으로 이끄는지 꿰뚫어보게 된다. 끊임없이 도피하려고 하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가 마음의낌새를 살피지 않고 너무 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바람에 그 이유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무상함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삶의 무상함과 마주치지않기 위해 기를 쓰고 피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적인 삶을 기저에는 우리의 모든 행동이나 말, 생각을 배후에는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삶의 진리가 도사리고 있다. 물거품처럼 위태롭게 부글거린다. 우리는 그것을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경험한다. 또한 무상함은 우리에게서 열정이나 적대감, 무지, 질투, 자만심을 끄집어내는 자극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그 현상만을 경험할 뿐, 그것의 본질꺼지 깊숙이 탐구하지 않는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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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늘 변장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때로는 수치심으로,
때로는 질투심으로, 때로는 자포자기로, 때로는 분노의 가면을쓰고 찾아온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데 천재적이라 우리는 내내 도망치기만 한다. 자기가 쓴 각본에 놀아나고, 문을 닫아 걸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꽃병을 내던지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불편함을 한사코 외면하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을 내면 깊숙이 감춤으로써 고통스러운 기분을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도피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괴물을 피하면 도망치느라 일생을 탕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나보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법도 잊었다.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것에만 급급해 자신에게서 삶의 즐거움을 박탈한 것이다. - P64

"오늘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보았나요?"
"아니요, 못 봤는데요. 실은 해 뜨는 걸 보기에 오늘은 너무 바빴어요."
그러자 린포체는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 자기 삶을 못 살 만큼 바쁜 일도 있나요?"
때로는 사람들이 어둠이나 속도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년만년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원한을 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망과 적개심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한 줄기 희미한 자비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 P65

어떤 일이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거두는 게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추위와 더위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그것들은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영원하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밀물과 썰물은 끊임없이 오가며, 낮과밤은 계속 교차될 것이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고, 낮과 밤이 교차되는 그것이 바로 세상 모든 만물에 깃든 본성이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감사할 줄 알며, 진리를 알아차릴 수있고, 모든 것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핵심이다. - P66

그럼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자아상에집착하는 것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가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야생화가 가득한 들판에 서서 얼굴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것처럼, 또는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로 가득한 숲 한복판에 서서 귀마개를 한 것과 같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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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아상을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를
"작은 마음"이라고 말하는데, 티베트어로는 셈sem에 해당한다. 티베트어에는 마음을 가리키는 단어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셈과 릭파rikpa다. 여기서 셈은 종잡을 수 없이 산만하게 흐르는 마음이다. 그것은 시끄러운 냇물처럼 흐르며,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이미지를 강화하려고 전전긍긍한다. 반대로 릭파는 밝고 지혜로운 마음이다. 모든 계획과 걱정 뒤에, 모든 소망과 욕망 뒤에, 그리고 모든 취사선택 뒤에는 항시 꾸밈없는 지혜의 마음인 릭파가 존재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들뜬 잡담을 멈추면, 릭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 P61

깨달음은 내면에 잠재된 원망이나 두려움 속으로도 파고든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속으로도 파고든다. 나아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가졌던 ‘자아상‘마저 무너뜨릴 기세로 파고든다. 그러다가 어쩌면 실제라고 확신했던 인생 전체가 한낱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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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에 휘둘리면 나도 모르게 그 불만을 실행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괴로운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무자비함에 휘둘리면 그 무자비함을 실행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런 성향이 점점 강해진다.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무슨 일이 생기는 그것을 호기심으로 대하고 무심하게 넘겨버려라. 혼란스러운 에너지와 힘겨루기를 하는 대신, 혼란을 기꺼이맞이하고 예사롭게 다루는 것이다. 그러면 혼란스러운 상황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은 언제나 명료하게 깨어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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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비를 ‘자기 연민이나 ‘자기만족과 혼동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푼다면서 남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랑곳하지 않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자비란 광고에서 유혹적인 목소리로 약속하듯, 보장된 행복을 찾는 방법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맞아, 내가 최고야!" 또는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따위의 격려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비는 이제까지 해온 그런 자기기만을 너그러우면서도 탁월한 솜씨로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자비는 스스로를 만천하에 까발려, 덮어쓸 가면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비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접근법이다. 자비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떨쳐버리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지배하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자기가 가졌던 관념과 이상이 산산조각 나도록 내버려둔다. 그것이 자비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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