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보리심을 찾는 과정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여정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산이 아니라 지구 중심으로 솟아오른 산의 정상을 향해 간다. - P174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우리는 청정한 물, 보리심이라는 치유의 물을 발견하게 된다. 온갖 만물들이 켜켜이 쌓인 그 밑바닥까지 헤집고 내려가 비로소 우리는 영원히다하지 않는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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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과 자애의 숨을 내쉴 때도 우리를 에워싼 높다란 장벽은무너져 내린다. 날숨은 우리 존재를 세상을 향해 송두리째 여는것을 상징한다. 뭔가 귀중한 것을 가졌다면 꽉 움켜쥐고 집착하지 말고 손을 활짝 펴서 남들과 나누라. 모두 줘버릴 수 있어야한다. 그 자체로 우리는 신비로운 인간 체험의 보고이며, 그것을남들과 나누어야 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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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외부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그런 행위가 습관으로 굳어지며, 결과적으로 더욱 소외될 뿐이다. 전체로부터 떨어져 홀로 남게 된다. 이는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그 감옥은 우리의 개인적인 희망과 두려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갇힌 그런 곳이다.

우리가 고통이나 불쾌감을 피해 보호막을 칠수록 역설적으로자신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가게 된다. 반면, 무엇이든 마음을 닫지 않고 상처를 받아도 상관없어‘라고 내버려두면, 오히려 만물이 하나이며 어떤 두려움도 없음을 차츰 알아차린다.

달라이 라마는 이기적인 사람을 지혜롭지 못하게 이기적인 사람‘과 ‘지혜롭게 이기적인 사람‘두 부류로 나누었다. 전자는 자기만 위하려고 하다가 혼란과 고통에 빠진다. 후자는 스스로를 위하는 최선의 행위가 남 옆에 머무르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그렇게행동하고 기뻐한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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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완벽한 원하지만 스스로에게서 계속 불완전함을 발견한다. 여기서 달아날 여지나 탈출구, 피난처는 없다. 하지만 그때야말로 화살이 꽃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내가 보는 것에서 달아나지 말고,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낄 때 거기서 마음 깊이 자리한 근원적인 지혜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마구니들을 흔히 인생을 훼방꾼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을 방해가 없었다면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들을 통해 부처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즉 마음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숨을 쉴 때마다 온전히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온전히 깨어서 사는 법이다. 그때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고, 고통을 피하지도 않으며, 삶이 무너질 때 자신을 다시 꾸미지 않으면서 충만하게 살 것이다. 감정이 일어날때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차가우면 또 그렇게 느끼도록 내버려둘 뿐, 그것을 애써 차단하려고 자신을 장님이나 귀머거리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또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충만하게 경험할 것이다.

도피는 인간으로서 온전하게 사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삶의무한한 가능성과 생명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삶보다 죽음을 원하는 자세다.

우리에게 화살이나 칼이 날아오거든 그것들의 본질을 열린 마음으로 살펴라. 아울러 자신이 그것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라. 그러면 우리는 근원적인 지혜의 마음으로 언제든지 되돌아온다. 뭔가를 차단하고 통제하지 마라. 외부적인 뭔가가 우리를 공격한다는 이원적인 세계관도 버려라. 대신 우리가 지쳐 힘들 때어떻게 마음을 닫는지, 그것을 알아차릴 기회로 삼아라. 그것이바로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는 비결이다. 우리 지성을 일깨우고,
부처의 본성을 만나는 비결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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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우리가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을 가질 때 에고의 고통이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줄어든다. 순수한 호기심은 우리를선입견에서 빠져나오게 함으로써 상황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 의식 상태는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에치우칠 때가 많다. 극단적인 양쪽을 오가며 자기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이리저리 춤만 추는 꼴이다. 그러니팔세간법의 사슬에 얽매어 쳇바퀴처럼 돌 수밖에 없다. 자신이맞닥뜨린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전에 우리는 제멋에 겨워 시나리오 한 편을 뚝딱 만들어낸다. 내가 왜 옳은지, 그가 왜 그른지 혹은 내가 왜 그걸 얻어야 하는지 밑도 끝도 없는 근거를 들어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하지만 내면에 일어나는 이런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면 모든 게 달라진다. 쳇바퀴를 맴돌던 인생이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차츰 유연해지며, 뭔가 갑갑했던 기분을떨치고 자유로우며 홀가분해진다. - P102

우리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와 같다. 예쁜 조개껍데기와 파도에 실려 떠내려온 나무 조각, 형영 색색의 깨진 유리 조각으로 우리는 상을 멋지게 단장한다. 그 성의 주인은 오직 나다. 다른 사람은 절대 출입할 수 없다. 누군가 성에 흠집을 내겠다고 위협하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싸울 태세를 갖춘다. 하지만그런 애착과 상관없이 언젠가 밀물이 들어와 공든 모래성을 휩쓴다. 우리도 그것을 안다. 따라서 그 모래성 놀이를 한껏 즐기되,
결코 집착하지 말며, 때가 되면 바닷물에 휩쓸리도록 두는 게 삶을 사는 지혜다.

이를 ‘무착 (Nonattachment)‘이라고 부른다. 모든 걸 제 갈 길로가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다. 이 단어에서 차갑고 냉정한 거리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무착은 훨씬 사랑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가진 낱말이다. 마치 끝도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다섯 살배기 꼬마와 같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완전히 앎으로써 끝없는 도피를멈추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점점 커지고, 내면의 호기심도 맞춰 자란다. 도대체 상실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의 삶이 산산이 무너질 때 그들을진정으로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반대로 이익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워하며 우쭐댈 때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103

자신이 어떻게 팔세간법의 낚시질에 걸려드는지 또 어떻게 희망과 두려움의 틀에 중독되는지 더 자비롭고 지혜로운 눈으로알아차려라. 그러면 모든 존재들을 향한 연민도 충만하게 자란다. 자신이 겪는 혼란의 실체를 알기에 남이 겪는 혼란은 이에 하고 즉시 도우려는 마음은 낼 수 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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