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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氏의 가방 ㅣ 문학동네 시인선 13
천서봉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황화일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보관해왔다. 추억이 가득한 사람의 어깨가 그러하듯 내 귀퉁이도 조금씩 허물어져 왔다.
땀의 중심에 감히 나는 있었다. 나의 살갗은 땀의 격렬함을 닮은 것이므로. 사장들은 폭신한 감색 비닐 커버를 선호했지만.
대일밴드 갈아 붙이듯 숱하게 이름 바꾸며 건너온 상처들, 손에서 손으로 책상에서 책상으로 통성명하는 동안 내 안의 사랑도 수없이 이름 바꾸며 너덜너덜해지고 찢겨졌다. 고백하건대 한때 누군가의 머리를 내리치던 흉기가 된 적도 있다.
너무 많은 미련을 나는 보관해왔다. 선명하던 활자들은 바람에도 쉽게 흩어진다. 지나치게 뚱뚱해졌지만 나를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에게 추억이란 가끔씩 들춰보는 날씬한 왕년(往年) 같은 것이므로.
>사람에게 추억이란 가끔씩 들춰보는 날씬한 왕년 같은 것... :)
문학동네 시인선이 모아질 때마다 묘한 쾌감이 생긴다. 나란히 꽂아놨을 때 예쁜 건 둘째하고,
언제고 손가락을 툭, 찔러 아무 페이지, 아무 시나 읽어도, '아...!' 이 탄성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