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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책을 덮는데, 가만...내가 그 조용한 수목원 한 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저기 저 기운 없는 말이 '좆내논' 일까? '얘, 너 자니? 내 말 듣고 있니?' 하는 엄마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불쌍해서 어쩌나' 흐느끼는 엄마의 눈물도 미처 닦아주지 못한 내 손끝에 닿는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칠 개월여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은 편안하게 계실까, 이제 더 미안해하지 마세요...
엄마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신우와 수목원에 홀로 남아 또 점심을 먹어야 하는 안요한 실장, 그리고 지금쯤은 시화강 하구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까, 조연주는 김중위를 찾으러 시화강 하구 마을을 찾게 될까? 김중위는 그런 조연주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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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을 지난 11월 거문도 여행 때 함께했다. 김훈 작가님 책에 여성 화자를 만날 수 있기란 흔치 않기에 주인공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운 반, 반가움 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자가 주인공이었던 소설은 단편 '언니의 폐경'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밑줄 본능'을 잠재울 수 없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이 책에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꼭꼭 씹어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읽어내려왔다. 수목원의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었고, '조연주'의 (결국 말하진 않지만) 심정의 변화도 들여다 보고 싶었다. 나무와 꽃과 숲, 뼈 그리고 가족을 통해 김훈 작가님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훈 작가님은 작가의 말을 통해'사랑'이나 '희망'을 써 본 적 없다고 하셨으나 <내 젊은 날의 숲>을 통해 그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계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슬몃슬몃 해보게 된다.
지속적인 관심 내 블로그 http://blog.naver.com/0olina0/70098289785
저물 때, 숲은 낯설고, 먼 숲의 어둠은 해독되지 않는 시간으로 두렵다. 저물 때, 모든 나무들은 개별성을 버리고 어둠에 녹아들어서, 어둠은 숲을 덮고 이파리들 사이에 가득 찬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빛이 사윈 자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초저녁에 가루처럼 내려앉던 어둠은 이윽고 완강하고 적대적인 암흑으로 숲을 장악했다. 어둠 속에서 나무들은 깊고 젖은 밤의 숨을 토해냈고 오래전에 말라버린 낙엽과 짐승들의 똥오줌도 밤에는 냄새로 살아났다. 숲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는 이나모의 말은 저무는 숲에서 증명되는 것인데, 어두워지는 숲은 그 숲을 바라보는 인간을 제외시키는 것이어서, 어두워지는 숲에서는 돌아서서 나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_ 219
본다고 해서 다 그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를, 그 아이의 뒤통수 가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_187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