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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일기
김소주.김선재.김규원 지음 / 파라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서평은 느낀 그대로 적었습니다.
일기는 자기만의 글이 아니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여 가까이 일기를 써오기도 하지만, 일기는 은밀한 나만의 이야기라 말하지는 않는다.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고 (있다 해도 딸 수 있고), 금고에 있지도 않고(있다해도 금고를 딸 수 있고), 전자문서로 쓴다해도 그 비밀이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고(가족이나 누군가가 암호를 풀 수도 있고)하니, 결국 일기는 다른 사람이 읽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기에는 내 마음 속의 이야기 중, 내 상처 중, 내가 하고 마음 속의 이야기 중 대략 10에서 20퍼 정도만 쓰여지지 않을까 싶다. 정말 누군가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은 글로 종이에 쓰지 않고, 기억으로 마음에 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10~20퍼의 진심이 담기기에, 그 정도로도 그 인물의 상당부분을 알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래서 때로 다른 사람의 일기를 통해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런 가능성은 다른 어떤 문학보다 더 짙다. 그래서 일기를 보면서 더 감동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책은 아내의 일기. 아내가 수십 년 동안 써온 일기의 일부를 발췌해서 아내와 지은이의 삶, 더 넓게는 가족의 삶을 돌아보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내의 일기는 일종의 동기고, 그 동기로 한 가족의 삶을 돌아보면서 써 내려간 가족의 역사, 가족의 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아내 분은 정말 꼼꼼하다. 기록에 진심이고, 그 기록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이미지로 형상화시킬 수 있고, 삶의 망각을 줄이며 추억을 꼼꼼히 기록해 가셨다. 이것만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 발췌된 그 방대한 내용의 글에는 아쉬움이 있다. 일단 기록자가 남편이 주체가 되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오히려 아내의 일기는 서브가 되버린 느낌이고, 아내의 수많은 내용 중 일부분만을 발췌해가면서 쓰다 보니 "얕고 넓은 지식"처럼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지식이 "남들에게 아는 척하기 위한, 얕고 넓은 지식이다." 지은이가 어떤 부분에 중심을 두고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고,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쓰다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아내의 일기 속의 정수를 그냥 지나쳐 버린 느낌이다. 어느 일기에는 어느 정도의 정수는 있다. 나는 제목이 아내의 일기인 만큼 아내의 내면에 좀 더 치중해서 글을 썼기를 바랐고, 지은이는 아내를 넘어 가족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고, 무엇보다 이런 글은 저자의 의도가 중심이 되야 한다. 그러니 거기에 맞춰 읽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우리가 사는 삶은 대동소이하다. 청담동에 사는 사람이나 빈민촌에 사는 사람이나 양과 레벨이 다를 뿐, 정도와 감정, 감동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철학적으로 분명한 한계와 제한이 있어서 그 밖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우리는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집을 못 벗어나는 고양이와 별 다를바 없는 것이다. 동굴을 벗어나려면 동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굴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 자체를 귀찮아 하니까...
대동소이한 삶. 그 삶 속에서 누군가는 작은 보물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그냥 그대로 살아간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그 어떤 보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 때로는 타인의 일기가 된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일기 속에는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자잘하고 분진같은, 반짝이는 금가루가 넘쳐난다. 그 금가루를 발견하느냐는 결국 독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