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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우리는 어느 정도 모두 순례를 원한다. 종교가 있든,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든, 인생의 절반을 지나 이젠 뒤를 돌아다 봐야 할 때, 우리가 걷는 길은 순례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겠다. 모든 이들이 다 이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순례를 걷는 자는 어느 정도 삶을 성찰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자이다. 많은 이들은 무조건 걷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박범신 작가의 글은 예전에 은교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소설이 꽤 감각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전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설은 아니다. 내게는 순수소설 (순수소설이 내 맘 속에 있다고 가정하고) 통속소설가로 기억되고 있다. 책을 보니 거의 매년 작품을 써 오셨나 보다. 아무튼 이번이 그 분의 두번째 글이자, 첫번째 산문이다.
순례라는 의미를 사용한 것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글 마지막에 나오는 폐암 관련 글을 보면 이 순례에 본인의 여러 삶의 방편들이 묻어나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는 이렇게 마지막의 순례를 준비할 때가 온다.
글은 쉽게 읽힌다. 어느 부분에서는 번뜩이는 글들이 보이고, 아름다운 부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이하게, 말 그대로 산문으로, 본인의 경험을 담담히 적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삶에 어떤 성찰을 더하기보다는 한 인간이, 소설가이자 인간이며, 삶의 노정의 마무리에 들어간, 한 인간의 삶에 대한 담담한 다큐를 보는 느낌이다.
누가 내 삶에 대해 평을 할까? 내 순례에 대해 누가 평을 할까? 그 평이 올바를 리가 있을까? 우리는 각자 내 삶을 돌아보는 순례를 걷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걷고 있다. 이 순례는 오직 나만의 순례다. 누군가의 평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순례 를 통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며 삶을 잘 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저자의 석양이 내리는 순례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