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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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7년 전 세령 마을에서 무시무시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당시 세령 마을의 세령댐 보안팀장으로 막 부임한 최현수였고, 그는 사건 직후 검거돼 사형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그의 아들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살아간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전학을 되풀이해야 했고, 친척들로부터도 버려진 그에게 유일한 의지처가 되는 사람은 승환 뿐이다. 세령 마을에 살던 시절 아버지의 부하 직원이자 자신과 같은 방을 썼던 그가 없었더라면 서원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아버지보다 더 간절히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승환과 서원은 계속해서 세상으로부터 떠밀려 나다가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에 표류하듯 정착한다. 잠깐이지만 평화가 찾아든다.
그러던 어느 날 승환이 사라지고, 서원에게 연이어 충격적인 우편물들이 날아든다. 하나는 승환의 글과 자료들이었다. 대필 작가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승환이 남몰래 그동안 7년 전 그날의 일을 소재로 해서 소설을 썼던 것이다. 곧이어 어렸을 적 아빠가 사주었던 나이키 운동화가 서원에게 배달되었다. 서원은 도망가려 발버둥쳤던 과거가 통째로 눈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또 다시 전보가 그에게 날아든다. 아버지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유일한 자기 편이자 버팀목이던 승환마저 행방불명 상태였다. 서원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소설의 형식으로 된, 7년 전 그날에 대한 승환의 기록을 읽어보는 것...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서원에게 마지막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날의 음모를 계획했던 사람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7년 전의 원한은 사그러지기는커녕 지금껏 서원의 목숨을 시시각각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상(뻘글)
줄거리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애매하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류의 소설이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독후감을 쓰는 입장에서는 여간 곤란한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무슨 <씨네21>의 영화 프리뷰도 아니고 이렇듯 시시하게 줄거리를 요약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지만 지루함이라곤 전혀 없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짤막한 감상으로 '스토리의 흥행적 면모'를 설명하는 데에 충분할 것이다. 스토리를 밝히기 찜찜하니 스토리 자체에 대한 감상도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옳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 책의 독후감을 쓸 것인가? 정유정의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실 스토리도 주제 의식도 아니다. 그녀의 당찬 문장에 있다. 그 당차고 저돌적인 문장들로 그녀는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때로는 황당할 정도로 유치하고 뜬금 없는 문장들을 그녀는 뻔뻔하게도 툭 내던진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버린다. 도망가듯 넘어가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행진하듯 말이다. 쓰기 전에는 수백 번 망설였을지 어쨌을지는 몰라도, 일단 쓰고 나면 그녀는 일백 퍼센트의 확신으로 내 눈 앞에 문장들을 부려 놓는다. 그걸 가지고 내가 무어라 무어라 불평불만할 사이도 주지 않고는 곧바로 다음 문장을, 그 또한 일백 퍼센트의 확신으로 가득찬 몸짓으로, 또 내 앞에 부려 놓는 것이다. 나는 바닥에 길게 늘어뜨려 놓인 낱알들을 하나하나 부리로 콕콕 쪼아가며 주인의 모이 주는 손을 쫓아가듯 그저 부리나케 그녀의 문장을 쫓아갈 도리 뿐이었다. 그녀의 소설의 힘은 바로 이런 문장에 대한 작가의 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뒷면에 소설가 밤범신의 추천평이 눈에 들어왔다. '정유정 작가를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인 아마존이 떠오른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용맹하기로 치자면 굳이 남녀 작가를 가릴 것 없이 최고이니 '한니발의 코끼리 부대'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류의 소설이 또 늘 그렇듯 플롯 상의 치명적인 약점들이 간혹 보였다. 소설을 죽 읽어 나가면서 어느 부분에 이르러 '어라, 이건 좀 이상한데'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면, 그리고 그 '이상한 부분'에 대한 설명 혹은 해명이 부족하거나 없었다면, 그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소설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부분이 분명 있었다. 한 군데만이라도 짚어 넘어가고 싶지만, 스포일은 정말 하기가 싫은 관계로 그냥 넘어가야겠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엄청난 취재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고 이야기 곳곳에 그 역력한 흔적도 많이 보였지만,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대목대목에서 '소설로서의 리얼리티'는 무시한 채 그저 '풍부한 현장 지식'만을 자랑한, 그야말로 겉핥기 식 리얼리티라고 해도 좋을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다.
자글자글하게 소설 곳곳에 퍼져 있는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정유정은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임에 분명하다. 우유부단한 나를 단호하게 이끌어나가는 여장부의 귀환을, 언제든지 환영한다(<28>이라는 제목의 신간이 나왔다 한다.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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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코틀로반 - 세계문학전집 03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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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줄거리)
공산주의 체제로 혁명이 이루어진 소련.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보셰프는 딴생각을 하느라 멍하니 업무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잦다며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내내 의문스러웠다. 해고당한 그는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건설 현장에 발길이 닿고, 거기에서 코틀로반을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건물을 짓기 전의 기초 공사로 지반을 파내 들어간 구덩이를 코틀로반이라 한다. 설계자인 프루솁스키는 공사를 지도 감독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삶의 무의미함에 지쳐 죽음만응 생각하곤 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최고의 계급인 이때, 구덩이를 파는 일꾼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작업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쉬고를 반복할 뿐이다. 치클린은 베테랑 노동자로, 코틀로반 공사를 진두지휘한다.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후대에게 밝은 세상을 넘겨주겠다는 신념 하에 치클린과 일꾼들은 노동에 매진한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코즐로프는 사프로노프와 함께 코틀로반을 떠나 근처의 집단농장사업에 힘을 보태지만,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시신을 수습하러 집단농장에 간 치클린은 부농들을 뗏목에 실어 먼 바다로 추방해서 계급을 해방시키는 등 틈틈이 집단농장사업의 일을 돕는다. 한편 집단농장의 지도자인 열성분자는 당의 노선을 충직하게 따르고자 하루종일 집단농장사업에 매달리지만, 오히려 과도한 사업추진을 아유로 당에서 제명당한다. 치클린과 일행은 코틀로반 현장으로 되돌아와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간다. 그 와중에 어린 소녀 나스탸가 열병으로 죽고, 공산주의의 밝은 미래를 넘겨줄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치클린과 일행은 상심에 젖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 없이 땅을 파내려갈 뿐이다.


뻘글(감상)
공산주의의 허구와 실상을 파헤친 소설이지만, 나는 이 소설이 단지 공산주의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사는 내 눈앞에는 어째서 온몸이 부서져라 삽을 들고 코틀로반을 파는 듯한 환상이 자꾸 펼쳐지는 것일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 주세요, 당신의 노후는 안전하십니까, 당신의 꿈이 바로 미래입니다 등등의 표어로 물든 나는, 정작 나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선 도무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더 풍요로운 후대를 위해,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위해, 혹은 더욱 행복한 나의 미래를 위해 언제까지라도 고통을 견디며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파는 코틀로반 위에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그곳에 입주하는 날이 과연 찾아오기는 할까? 결국 끝없이 구덩이만 파내려가다 죽을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죽어가는 나를 마지막 순간까지 부려먹기 위해 누군가는 '기억하세요,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운운 하는 표어를 내걸 것이다. 견디고 견뎌서 결국 맞는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을 위해서 삶을 견디는 것이라는 말인데, 죽음이란 것은 견디든 견디지 않든 상관없이 찾아오는 법이므로 정말이지 견디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나 견디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어쨌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삶의 의미나 목적 따위를 애초에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시청 광장에 거대하게 펼쳐진 현수막의 문구처럼 그냥저냥 속는 셈치고 산다면 마음은 편할 텐데 말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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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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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나는 TV 프로그램 하청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덕션에서 일한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신도시의 아파트에서 산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장님 방으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하 형이었다. 17년 전 대학 시절에 우상처럼 따르던 그 형. 민주투사였던 기하 형은 오랜 수감생활 끝에 정치권 입문 제의를 거절하고는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가 이제는 농촌운동에 투신했다. 17년 전 당시 아내는 44킬로그램의 깡마른 여학생이었고, 기하 형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지금 72킬로그램의 아줌마로 화(化)해 있다. 농촌에 들어간 것을 끝으로 우리 부부는 기하 형의 소식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동안 기하 형과 함께 운동을 했던 동지들은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학원가의 유명강사로 변했고, 우리 부부도 전세방 신세에서 신도시의 아파트 자가 소유 세대로 바뀌었으며, 시대 또한 군부에서 문민으로, 민주로 모습을 달리했다. 변하지 않은 건 기하 형뿐인 듯했다.
그런 기하 형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도와달라고 청했다. 나는 기하 형의 전화를 받은 날 밤에 72킬로그램짜리 아내와 섹스를 나누고, 그 살찐 여자가 짐짓 17년 전의 여학생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기하 형을 도와주러 농촌에 가기로 결심한다. 여름휴가가 며칠 뒤였다. 원래 계획되어 있던 가족 여행은, 아내와 딸이 제주도로 휴가를 떠나는 동생네에 얹혀 가는 것으로, 그리고 나는 기하 형네로 가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나는 구급약에서부터 등산복, 사냥총에 이르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난생 처음 농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기하 형의 공동체에 이르러 기하 형을 만났다. 공동체에는 기하 형 혼자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 점차로 악화되는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다들 떠났다는 것이다.
기하 형은 나를 축사로 데려갔다. 젖소들은 며칠 째 젖을 짜내지 못하고 있었다. 축사 기둥에는 비현실적으로 매끈하게 뚫린 구멍이 있었다. 외계인이 습격한다고, 기하 형이 말했다. 처음엔 개가 죽었고, 우주선이 닿았던 자리의 풀들이 누렇게 말라버렸다. 어제는 축사를 공격해서 이 모양이 되었다. 기하 형은 나에게 취재를 부탁했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은 하지만 취재의 대상 때문에 속으로는 꽤 난감해했다.
하룻밤을 보내고, 하루 낮을 보냈다. 농촌은 뭐랄까,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되었다. 원반이 나타났다. 나는 캠코더를 들고 기하 형과 함께 원반이 나타난 축사로 갔다. 원반의 중심부에서 빛이 일자로 뻗어 내려가 있고, 젖소 한 마리가 그 빛을 타고 원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캠코더에 녹화했지만 화면은 그저 검을 뿐,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원반이 사라지고, 축사로 들어간 우리는 참혹한 광경과 마주했다. 몸통이 팽팽히 부푼 소들이 네 다리를 하늘로 치켜든 채 뒤집혀 죽어 있던 것이었다. 젖소들의 젖통에서 우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한 마리가 뻥 하고 터졌다. 우리는 숙소로 대피했다. 뻥, 뻥뻥 하고 연이어 소 터지는 소리가 산을 넘지 못하고 메아리가 되어서 우리의 귀로 들어왔다.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만 외계인이라는 얘기에 시원찮은 반응만 얻고 말았다. 그 와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텔 노래방에서 딸아이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자랑스레 들려줬는데, 어머나 어머나 하고 열창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흥분한 아내의 호들갑이 기하 형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커서 창피할 지경이었다. 기하 형은 나보고 서울로 돌아가라고, 선물로 자기가 직접 재배한 유기농 쌀을 한 가마니 가져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밤이 늦었으므로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른 새벽, 기하 형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원반들이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괴상한 빛을 내는 7대의 원반들이 무리지어 형의 논으로 갔다. 우리는 원반을 쫓아갔다. 원반들이 논을 빛으로 훑은 자리에는 쌀알은 온데간데없고 쭉정이만 남아 있었다. 나는 분노하며 원반을 향해 총을 겨눴다. 총을 쏘기 직전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살짝 조준을 틀긴 했지만. 원반들은 총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옥수수 밭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옥수수 밭으로 달려갔다. 이번엔 원반들이 춤추듯 옥수수 밭 위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기하 형과 나는 무너지는 옥수숫대에 깔려 넘어지고 말았다. 겨우 무거운 옥수숫대를 헤치고 일어나니 원반들은 사라져 있었다.
옥수숫대들은, 더러는 쓰러져 있기도 하고 더러는 그대로 서 있기도 한 것이, 어떤 기하학적인 규칙에 따라 무늬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외계인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담긴 크롭 서클일 거라고 기하 형에게 짐작을 말해주었다. 차를 타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보니, 과연 옥수수 밭에는 크롭 서클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무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고도 거대하게 그려진 ‘㉿’ 마크였다. 해는 이미 저만큼 높이 솟아오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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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안녕 너구리야> 이후로 두 번째 읽은 박민규의 단편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땐,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으나 작가가 정확히 무얼 말하고자 하는 건지가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고, 온갖 칭송을 받는다는 그의 작품에 뭔가 없을 리가 없을 텐데, 하면서 나는 이 작품을 다시 펴들었다. 그리고 박민규가 대단한 작가이긴 하다는 생각이, 과연, 하고 들었다.
그의 소설에는 다른 작가들과 다른, 이를테면 독특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쉼표를 여기저기에 찍어댐으로써 문장들을 거의 분절하다시피 하는 그의 문체였다. 그 전까지 나는 이것이 - 갑작스러운 문단 바꾸기의 행태와 함께 - ‘장식적 요소’의 하나로 치부하고 말았었는데, 필사를 하면서 보니 그의 쉼표의 의도는 무엇보다도 ‘입말’처럼 문장을 표현하고자 하는 ‘형식적 요소’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글로 읽히게끔 쓴 게 아닌, 말로 들리는 것처럼 이야기를 썼단 것이다. 그의 이런 의도는, 서사와 대화를 행갈이도 하지 않은 채 문장들을 주욱 붙여 쓴 것에서도 충분히 드러났다. 박민규가 문장을 쓸 때, 마치 콘서트장에서 쿵팍쿵쿵팍, 하면서 입으로 자신의 리듬을 소리 내며 드럼을 두들기는 드러머처럼, 자신의 문장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서 자판을 두들기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둘째는 ‘기만적인’ 캐릭터다. 다른 소설들을 읽을 때 으레 그러듯이 이 작품도 ‘나’가 말하는 대로 졸졸 따라가다가는 맥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왜 그런고 했더니,. ‘나’가 자신의 감정을 자꾸만 숨기고 위장하려 들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섹스를 하고 난 뒤 비대한 아내가 소녀처럼 앵앵거리는 모습을 보고 창밖에서 스포츠카가 부앙 지나는 걸 목격한 주인공이, 스포츠카가 지나갔기 때문에 기하 형을 도와주러가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대목이 있었다. 사실은 아내가 지긋지긋하고 팍팍한 도시가 징글징글해서 아내와 딸로부터 좀 떨어져 있고 있다는 속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지나간 게 청소차가 아니라 스포츠카여서 기하 형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는 등의 변명으로 독자를 속이는 것이다. 아무튼 다른 소설들에건 보기가 힘든, 독특한 캐릭터였다. 이상이 무기력한(또는 무력한) 캐릭터로 독창적인 소설들을 여럿 지어낸 적이 있는 만큼 박민규도 아마 이런 캐릭터를 다른 작품들에도 분명히 심어놓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른 소설들을, 그래서 나는 읽고 싶어졌다.
세 번째는 비유의 적절함인데, 이건 그저 독특한 점이라기 보단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처럼’, ‘~같은’ 따위의 비유를, 직업에 맞게, 상황에 맞게, 심리에 맞게 적절히 사용한 데에는 정말 감탄했다. 이를 테면, TV 프로그램 제작회사의 직원답게, 농촌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6시 내 고향>이라고, 운동권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이라고 대답을 내놓는 여직원들이라든지, 외계인을 캠코더로 찍을 때는 빨간 녹화등이 평범한 지구인의 심장처럼 깜박였다든지 하는 표현들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래서 박민규의 황당무계하다시피 한 스토리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읽혀졌다. 박민규를 그냥 읽어서는, 신춘문예 낙선작 정도의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거나 세밀히 읽어야만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박민규가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데뷔했구나, 하고 수긍이 되었다.

그런데 주제에 대해선?
박민규가 황당한 알레고리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니 나도 좀 딴소리를 풀어내야겠다는 필요성을, 나는 이쯤에서 느낀다.
그러니까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서 몇 시간만 가면 완전히 다른 대자연이 펼쳐지듯, 나는 집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목욕탕에 갔다. 옷가지들을 단지 몇 꺼풀 벗겨냈고,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낯선 알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뜨거운 한증막에 들어가 앉았더니, 자연스레 으어, 시원하다, 는 말이 입속에서 소젖 짜듯 뿜어져 나왔다.
뿌연 수증기에 온몸이 잠긴 김에, 그래서 나는 내 마음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내 마음 속에는 참 여러 가지 기억들이 있었다. 이제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그 기억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원반들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더니 내 마음 속을 모두 파괴해버렸다. 어린 시절의 다짐이며 꿈들이 모두 원반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쪼이더니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나는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넋 놓고 원반이 가는 대로 죽어라 뛰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원반들은 내게 크롭 서클을 남기고 떠났다.
크롭 서클에는, 도형도 그림도 무늬도 외계어도 아닌, 한국어가 쓰여 있었다.
‘모래시계 뒤집어라.’
몸이 달궈질 대로 달궈져서 나는 명상에서, 그리고 한증막에서 뛰쳐나왔다. 한증막 안에는 나보다 약간씩, 또는 한참씩이나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마음속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치 외계인의 습격을 굳이 받지 않더라도 어차피 황폐해진 기하 형의 이웃 농가들처럼.
그들의 젖은 머리카락을 헤집어보면 정수리 어딘가에 선명히 찍혀 있는 ㉿ 마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기념품과도 같은 식은땀이 흥건히 배어 있는 등허리를 헹구러 샤워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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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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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한 면의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이르고 600층이 넘는 초고층, 초대형 빌딩 <빈스토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은 소설집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 개를 포함한 경우」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미세권력연구소의 정교수는 건물 내 미세권력 분포도를 알아내기 위해 ‘조그만 정성’의 명목으로 권력자들에게 바쳐지는 값비싼 양주에 전자태그를 부착한다. 약 1년간의 추적 결과 권력관계는 3차원적 지도에 그려지는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그건 영화배우 P가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P는 그냥 인간 영화배우가 아니라 개였던 것이다.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연말까지 권력 지도를 완성해야 했고, 정교수는 작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외부에서 세 명의 박사들을 임시로 고용한다. 세 명은 역시나 개가 권력장(場)에서 상당한 위치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개를 권력장에 포함시켜야 실제의 권력분포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 개가 포함될 경우 - 권력장에서 또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데, 그건 시장과 정교수의 아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정교수의 젊은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고 세 명의 동방박사, 아니 동원 박사들은 권력자의 힘에 이끌려 선물을 사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해보니 정교수가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한 현장을 목격한다. 정교수는 이미 개를 포함시킨 권력장에서 드러나는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확정적인 정교수의 파멸을 귀로 하고 박사들은 빈스토크 국경을 넘어 달아난다.
「자연예찬」은 작가 K의 이야기다. 현실비판으로 유명한 그는 갑작스레 자연을 예찬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출판사 편집직원 D는 K에게 예전의 날카로운 글을 써줄 것을 부탁하지만 K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글을 쓴다면 이 정권에서 ‘먼지’가 탈탈 털려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K는 스페인의 프리힐리니아 지방의 별장과 그곳의 가정부 로봇을 ‘조그만 정성’으로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로봇의 눈을 통해 본 그곳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 로봇을 정비하는 소녀가. K에게는 저소공포증이 있어서 빈스토크를 평생 떠날 수 없었다. 오직 로봇을 통해서만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의 결정체인 소녀를 바라볼 뿐. D는 겨우 K를 설득하고, 마침내 K는 작가로서의 양심을 따라 현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다. 물론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K는 아주 오랜만에 로봇을 작동시켜본다. 로봇의 눈에 비친 것은 중년이 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둘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빈스토크로 이민간 여자와 주변국에 남겨진 옛 애인의 이야기다. 둘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몇 년 뒤 남자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빈스토크 해군에 입대해 4년간 조종사로 복무한다. 그러다 말년에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격추를 당한다. 그러나 빈스토크 정부는 외교적 위험 때문에 그를 모른척한다. 그때 둘의 이별의 원인을 제공한 남자가 나선다. 그는 시민들끼리 자발적으로 우편을 배달해주는 ‘푸른우체통’에서 그만 우편물을 깜박하고 자기가방 속에 넣는 바람에 남자의 화해 편지를 여자에게 전달해주지 못했고, 결국 본의 아니게 이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식을 접한 여자는 타클라마칸의 현재 위성 자신을 구하고, 대발사고를 일으킨 남자는 그걸 웹사이트에 올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락한 남자를 찾는 일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처음에는 얼마 안 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불어나더니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고, 결국 기계의 도움 없이 수작업만으로 광대한 사막의 지도에서 바늘보다 작은 존재인 남자를 발견하는 데에 성공한다.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는 두 가지 사상, 즉 수직주의와 수평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이 그려진다(수직주의는 보수, 수평주의는 진보진영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공무원으로서 비상시/전시에 동원훈련 작전을 담당하는 남자는 자의와 무관하게 수직주의자로 세상에 분류된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반면에 수평주의 이론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둘은 그런 구분에 아랑곳 않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급기야 폭력시위로까지 사태가 번진다. 둘은 서로의 개인적 감정과 관계없이 각 진영의 명령과 압박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광장의 아미타불」은 파산한 외국남자가 빈스토크의 시위진압대로 취직해서 그의 처제와 편지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는 시위진압대에서 새로 들여온 코끼리를 전담한다. 코끼리의 이름은 아미타브였는데, 인도에서 수행승을 따라다니며 단식과 고행을 하던 이력이 있었다. 그가 코끼리를 몰고 나갈 때면 이상하게 시위대와 진압대 모두 조용해졌고, 시위는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된다. 코끼리는 아미타불이란 별명으로 빈스토크에서 유명해진다. 어느 날 처제와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빈스토크를 방문한다. 그날따라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미타브는 혼란의 와중에서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진압대 상관이 휘두른 채찍에 맞아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남자는 아미타브를 위로해주고 원기를 북돋아주려고 물을 주지만, 최루액이 섞인 줄을 몰랐다. 코끼리는 물을 마시고 괴로움에 날뛰다가 빌딩 바깥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마지막 이야기 「샤리아에 부합하는」에서는 빈스토크와 전쟁을 벌이는 코스모마피아가 건물을 파괴하려 시도한다. 코스모마피아의 간첩인 셰흐리반은 지령을 받고 빈스토크가 지어질 당시부터 비밀리에 대형 폭탄이 보관되어 있는 부동산들을 매입한다. 모든 매입과 폭탄 설치가 끝나고 최후의 심판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지 않는다. 몇십 년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폭탄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이 몰래 폭탄에 손을 써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심판의 날은 미뤄지고, 빈스토크는 다시금 바벨탑적인 삶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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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상주하고, 건물인 주제에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는 <빈스토크>는, 비록 특이한 환경과 특이한 삶을 살아갈지언정 대지 위의 평범한 삶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총 7개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사회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결과를 제시한다.
결국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샤리아에 부합하는」이라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제일 처음에 쓴 건 아닐지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을 써나가면서도 빈스토크의 결말을 계속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체로 추악하고 약간은 아름다운 면도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바벨탑의 복사본에 지나지 않은 우리 사회는, 어쨌거나 그래도 파괴하기보다는 껴안고 보듬어가며 살아야 한다. 비록 전과 다름없이 너저분하게 돌아가더라도 말이다. 소설은 참 재미있었다. 정치적 풍자는 별로였고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 나오는 익명 집단의 기적 같은 힘 따위의 이야기는 촌스러운 면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사회적 주제 말고 배명훈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의 축인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깊었다. 불교적이기까지 한 그의 통찰은 SF라는 환상적 - 허구 중의 허구- 인 장르와도 잘 어울려서 때로 가볍고 때로 유치한 이야기 전반에 깊이를 더해주고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물론 재미있다는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전제요소이다.
그런데 어째서 SF는 불교와 그리 잘 어울리는 걸까? SF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나 물리학자 같은 사람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과연 과학자인지 불교학자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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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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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일)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그 일행은 튀니지에서 거행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에서 난파당한다. 사실 폭풍우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근처의 섬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이 마술과 정령을 이용해 고의로 일으킨 것이었다. 그 노인은 원래 밀라노의 대공이었으나 지위를 동생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푸로스퍼로였다. 푸로스퍼로는 어린 딸과 함께 고향에서 쫓겨나 이 섬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의 딸 미랜더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동생 앤토니오와 알론조 일행을 섬의 한쪽에 상륙하게 하고, 또 알론조의 아들 퍼니넌드는 홀로 다른 쪽에 상륙하도록 술수를 부린다.
한편 푸로스퍼로가 섬에 정착하기 전 그 섬에 살던 마녀의 아들인 캘리밴은 푸로스퍼로가 잘 기르려고 했지만 천성적으로 추악하고 욕망만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인해 푸로스퍼로의 미움을 받는다. 캘리밴은 섬의 또 다른 곳에 상륙한 다른 조난자들을 만나 푸로스퍼로를 죽이고 그의 딸을 가지라고 유혹한다.
즉 한 섬에 세 가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왕의 일행은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고 섬을 탐험하지만 푸로스퍼로의 마술에 걸려 집단으로 정신이 나가버린다. 퍼디넌드는 미랜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 두 가지 상황은 모두 푸로스퍼로가 의도한 일이었다. 그러나 캘리밴 일행이 술에 잔뜩 취해서 그를 해하러 오는 것은 푸로스퍼로로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를 섬기는 정령이 그들의 음모를 발각하여 알려주고, 푸로스퍼로는 집 앞에 값비싼 옷가지들을 널어놓아서 술 취한 이들에게 함정을 판다. 술 취한 무리는 푸로스퍼로 따위는 까맣게 잊고 눈앞의 비싼 옷가지에 한눈이 팔린다. 퍼디넌드는 푸로스퍼로가 내린 시련을 이겨내고 미랜다와 약혼하는 데에 성공한다. 왕의 일행에게는 마법을 풀어주고 난파당한 배를 멀쩡한 상태로 되돌려준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에게 지었던 악행을 말끔히 용서해준다.
화해와 용서로 하나가 된 그들 모두는 이제 순풍을 타고 나폴리를 향해 떠나간다. 푸로스퍼로의 딸과 나폴리의 왕자의 결혼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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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뻘글)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은 대체로 요란하고 허무하다시피 한 소동을 그리곤 하는데, 「템페스트」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못 장중해보이는 제목 때문에 「햄릿」이나 「맥베스」 등의 비극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경쾌하고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는’ 희극이었다.
은퇴를 암시하는 대사의 반복 때문이었을까, 말년에 집필한 작품이라 그런지 푸로스퍼로와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정령과 마법, 환상과 환각, 착각과 오해 따위가 뒤범벅된 스토리야말로 가장 셰익스피어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 즉 인생은 한바탕 꿈 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허무주의적이면서도 달관적인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캘리밴이라는 캐릭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가 보아도 그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만을 한데 뭉뚱그려서 빚어낸 괴물이다. 그전에도 이런 인물이 창조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순수한 악(惡)이라기보단 순수한 욕정이 실체화된 인물이다. 나 같으면 캘리밴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시도했을 텐데, 작가는 작품 본연의 주제인 ‘용서’에 집중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뿐이었다. 용서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면, 그러니까 배를 난파시키고 딸과 왕자를 결혼시키고 하는 등의 일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이 모든 소동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냥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용서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아마 정령 에어리얼의 탄원(?)에 마음을 움직인 푸로스퍼로가 복수에서 용서로 태도를 전환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정황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가 너무 약했다. 내가 보기엔 푸로스퍼로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야 모두를 용서하고 정령을 풀어준 그는, 만약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기라도 했다면 용서 따위는 절대 없었으리라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섬에서 오랜 시간 겪었던 그의 고난은 흘러간 세월만큼의 이자(왕의 사돈이라는)를 붙여서 고스란히 이익으로 되돌아온, 성공적인 투자에 불과한 셈이다.
마지막의 포용적 자세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과거인 동생과 자신의 미래인 딸을 모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욕망의 덩어리인 캘리밴마저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복수의 기회만을 필사적으로 노리던 극의 초반부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깨달음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더라면, 혹은 푸로스퍼로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면을 깊게 파고들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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