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코틀로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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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줄거리)
공산주의 체제로 혁명이 이루어진 소련.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보셰프는 딴생각을 하느라 멍하니 업무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잦다며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내내 의문스러웠다. 해고당한 그는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건설 현장에 발길이 닿고, 거기에서 코틀로반을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건물을 짓기 전의 기초 공사로 지반을 파내 들어간 구덩이를 코틀로반이라 한다. 설계자인 프루솁스키는 공사를 지도 감독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삶의 무의미함에 지쳐 죽음만응 생각하곤 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최고의 계급인 이때, 구덩이를 파는 일꾼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작업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쉬고를 반복할 뿐이다. 치클린은 베테랑 노동자로, 코틀로반 공사를 진두지휘한다.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후대에게 밝은 세상을 넘겨주겠다는 신념 하에 치클린과 일꾼들은 노동에 매진한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코즐로프는 사프로노프와 함께 코틀로반을 떠나 근처의 집단농장사업에 힘을 보태지만,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시신을 수습하러 집단농장에 간 치클린은 부농들을 뗏목에 실어 먼 바다로 추방해서 계급을 해방시키는 등 틈틈이 집단농장사업의 일을 돕는다. 한편 집단농장의 지도자인 열성분자는 당의 노선을 충직하게 따르고자 하루종일 집단농장사업에 매달리지만, 오히려 과도한 사업추진을 아유로 당에서 제명당한다. 치클린과 일행은 코틀로반 현장으로 되돌아와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간다. 그 와중에 어린 소녀 나스탸가 열병으로 죽고, 공산주의의 밝은 미래를 넘겨줄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치클린과 일행은 상심에 젖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 없이 땅을 파내려갈 뿐이다.


뻘글(감상)
공산주의의 허구와 실상을 파헤친 소설이지만, 나는 이 소설이 단지 공산주의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사는 내 눈앞에는 어째서 온몸이 부서져라 삽을 들고 코틀로반을 파는 듯한 환상이 자꾸 펼쳐지는 것일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 주세요, 당신의 노후는 안전하십니까, 당신의 꿈이 바로 미래입니다 등등의 표어로 물든 나는, 정작 나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선 도무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더 풍요로운 후대를 위해,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위해, 혹은 더욱 행복한 나의 미래를 위해 언제까지라도 고통을 견디며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파는 코틀로반 위에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그곳에 입주하는 날이 과연 찾아오기는 할까? 결국 끝없이 구덩이만 파내려가다 죽을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죽어가는 나를 마지막 순간까지 부려먹기 위해 누군가는 '기억하세요,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운운 하는 표어를 내걸 것이다. 견디고 견뎌서 결국 맞는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을 위해서 삶을 견디는 것이라는 말인데, 죽음이란 것은 견디든 견디지 않든 상관없이 찾아오는 법이므로 정말이지 견디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나 견디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어쨌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삶의 의미나 목적 따위를 애초에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시청 광장에 거대하게 펼쳐진 현수막의 문구처럼 그냥저냥 속는 셈치고 산다면 마음은 편할 텐데 말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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