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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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두 권 대출해 읽었다. 두 권을 하루에 연달아 이어서 1권과 2권의 감상이 비슷하다. 이 책 2권에도 똑같이 리뷰 남길 예정.


책을 읽으며 김정선 작가님께 '아저씨레이디'라는 애칭을 붙여 드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꼭 아저씨라고는 단언할 수 없어서 급한대로 '50대레이디'로 변경했다.


저자가 이사 후 세계 문학 전집 도장깨기를 하신 책이다. 이 기획, 너무 흥미로워서 '젠장, 나도 하고 싶다고-!!'라고 생각했다. 글은 저자의 일상으로 시작하고, 읽은 책 줄거리 요약, 그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끝난다. 간혹 일상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편안하게 읽기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은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어떤 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고전이라 불릴 만한 책들은 사골처럼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점을 다른 사람이 짚어주는데, 나온 지 오래 됐기 때문에 그 양이 풍부하다. 연구자, 서평가, 비평가, 그리고 나 같은 아마추어들.


하지만 이 책을 특히 더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저자가 고전이라고 해서 무지성으로 좋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50대니까 덮어놓고 무작정 좋다고 할 짬은 아니긴 하다. 또 이런 책을 낼 만한 고전문학 독자라면 무작정 좋다고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서평이나 해설이 아니라 사적인 리뷰이기 때문에 불호 의견을 좀 더 서슴없이, 솔직하게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작년 겨울로 돌아간다. (저번에 썼던 이야기 반복이다.)


누군가 헤세의 『데미안』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이 지적하는 점은 여자 캐릭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런 거였는데 나는 백 번 천 번 동의했다. 『데미안』은 남자들의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였다.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이나 싱클레어가 그렇게 앓은 베아트리체가 그나마 좀 등장한 여자 캐릭터다. 베아트리체를 먼저 말해보자면, 이 여자의 육성은 없다. 그냥 싱클레어 앞에 한 번 나타났을 뿐인데 모르는 남자(싱클레어)의 상상 속에서 욕망만 당하다가 결국 다른 모르는 남자(데미안)로 덧씌워지며 끝난다. 에바 부인은... 제정신인가? 아들보다 어린 남자한테 쟁취될 거라고 말하는 아줌마가 세상에 어디 있나. 너무 수동적인 캐릭터였다는 인상이 남았다. 『데미안』 읽은 지 햇수로 사오 년이 넘은 듯하다. 그래서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헤세의 다른 작품도 그렇다. 남자 주인공을 참 많이 쓰고 여자 캐릭터는 주변화된다. 아예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다는데, 나는 헤세를 싫어해서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와 독서 에세이, 서평집만 읽었다. 싫어한 거 치고 많이 읽었지? 좋아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좋아할 수 없었다. 독서 에세이와 서평집에서도 그가 상정한 독자는 남자였다. 여자가 아니다. 가만 보면 헤세는 여자는 자기라는 남자와 동등한 고차원적 사고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누가 지적했던 거다. 앞서 언급한 글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이 지적이 중요한 이유는 여자 캐릭터를 못 다루는 창작자들의 문제는 대략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내가 열내며 주객전도까지 하는 이유다.


이제 진짜 왜 중요한지 말한다. 고전은 어차피 지난 시대의 것이고, 그 시대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위 '빻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없다, 그런 지적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런 주장을 보았다. 이게 말이 됨? 시대상의 한계로 여자들이 결혼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결혼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꽃뱀 같은 여자들만 득실거리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감안할 만한 것이고, 후자는 지금도 대차게 까일 만하다.


물론 이 책을 찾아 읽을 정도면 이렇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나와 취향이 겹치는 독자들에게 희망을 품고 있다.


아래에 인용한 문장들을 보면 저자는 작품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열을 낸 건 나 때문이기도 한데, 좋게 말하면 수용하는 폭이 넓으며 이해심 많은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리뷰, 서평을 읽으며 내가 비판하지 않고 넘어간, 하지만 눈치챘더라면 욕했을 지점들을 알아야 한다.


앞서 이 책은 사적이라고 했는데, 저자가 글에 많이 드러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서 처음에는 불호 요소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약 이 년 정도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니 나도 모르게 애착이 생겼다. 잘 지내시길 바란다.


1권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책 본문 같아서. 2권도 귀엽지만, 1권만 못한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오직 샤일록만이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어른이고 나머지는 하나같이 몽상가들이자 철부지들이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을 게 뻔한 재산을 단 한 번의 모험에 몰아넣은 안토니오는 물론 대책없는 백수 바사리오에, 자신의 신랑감을 운에 맡겨서 얻으려는 포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독교도 청년 로렌초와 야반도주하는 샤일록의 딸 제시카 등등.. 이들은 자신들이 불협화음의 원인으로 지목한 샤일록을 제거하고 제대로 된 화음을 이루는 청년들이 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을 희생양으로 본 것일까? 모르겠다.
_베니스의 상인 - P118

결국 섹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인 건 로렌스에게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게다가 그 섹스는 지독히 남성 중심적인 섹스이기도 하다. 코니는 진정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지만 내내 누운 자세를 유지한 채 단 한 번도 섹스를 주도하지 못하니까. 무엇보다 두 사람의 섹스는 페니스가 중심인 섹스여서 아마도 작가는 삽입 섹스가 아닌 섹스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비난했겠다 싶을 정도로 ‘페니스‘에 대한 강조가 차고 넘친다. 앞에 인용한 문장도 코니가 발기한 멜로즈의 페니스를 보면서 내지르는 탄성이다. 여섯 개의 문장 뒤에 발기한 페니스같은 느낌표가 빳빳하게 서 있다.
_채털리 부인의 연인 - P175

‘자유 시민‘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독일에서 교육 받은 코니가 멜로즈와 아이를 낳고 ‘진정한‘ 섹스를 나누며 사는 삶에 만족하도록 강제하는 듯해서 민망하다. 그건 하반신이 마비된 클리퍼드와 정신적인 삶을 함께하며 만족을 찾았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얼마든지 독립할 수 있는 코니라면 왜 굳이 멜로즈에게, 아니 멜로즈의 페니스에 매달려야 한다는 건지. 그것도 아이까지 낳아 키우면서 말이다.
_채털리 부인의 연인 - P176

그러니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통해 두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베로나 시의 안전을 도모했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그 사랑이 호르몬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 게다가 그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었다. 유력한 가문의 유일한 아들과 딸로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누릴 수 없는 행운을 타고난, 이를테면 특별 시민이었다. 철천지원수로만 알았던 상대 가문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단지 호르몬의 장난질만은 아니었다면,
_로미오와 줄리엣 - P179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을 다 하면서 고통을 감수하고 치욕을 떠안으며 두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둘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든 죽음을 택하든 그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리라. 하지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나버림으로써, 그들이 속한 두 가문은 물론 공동체 또한 나이 어린 두 연인의 죽음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이뤘다는 죄책감을 부여받고 말았다. 이거야말로 비극이 아닐까. 그들에게도 공동체에게도.
_로미오와 줄리엣 - P180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지만 이 말은 어쩌면 좌파에겐 우파와 달리 대의라는 거울이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대의 없이 구호와 동원만 난무하는 우파와 달리 좌파에겐 행위 하나 전략 하나를 비쳐볼 대의라는 거울이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거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외려 텅 비어 있어서 우리 자신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 매번 다른 의견과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좌파는 분열 책동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을 분열로 몰아 권력으로 제압하는 순간 망하는 것이리라. 설령 반대를 용인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_카탈로니아 찬가 - P259

서술자의 전략적인 서술도 한몫한다. 당시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풍경이나 인물 묘사는 되도록 자제하고 대화와 상황 설명만을 통해 인물의 대조되는 성격과 역할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독자는 베넷 씨의 집이 어떻게 생겼고 정원은 어떤 모습이며 제인과 엘리자베스, 빙리와 다아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다. 서술자는 각각의 거처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계란형인지 각진 턱을 가졌는지 머리카락과 눈은 어떤 색인지 일절 묘사하지 않는다. 서술자가 유일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묘사하고 설명하는 풍경은 인물들의 내면 풍경일 뿐,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킬 만한 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심지어는 무도회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그 흔한 옷차림 묘사도 자제할 정도다. 『오만과 편견』을 낭만적인 연애소설이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이유랄까.
_오만과 편견 - P275

‘오만과 편견‘ 모두 개인적인 성벽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닐 터. 사회 제도와 문화, 습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아시는 귀족의 자제로 새로운 환경에서 뒤섞이게 된 시민 계급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미처 교육받지 못했고, 시민 계급의 자제인 엘리자베스 또한 귀족들의 특성을 참아줄 만큼 신분제가 공고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오만과 편견‘은 단지 연애와 결혼을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젊은 남녀들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한정 상속 제도라는 사례가 보여주듯 연애와 결혼에 수반하는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이 곧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시대의 이야기니까. 하긴 그런 시대가 따로 있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한데.
_오만과 편견 - P276

그렇다고 『이성과 감성』이 졸작이라는 건 물론 아니다. 언급한 대로 인물간의 갈등이 그 최대치에 달할 때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여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만큼,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갈등 관계를 무리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 재능을 엉뚱한 데 낭비하지 않고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힘을 보여준 건 『오만과 편견』에 버금가는 미덕이다. 인간 군상의 다양한 성격에 천착한 작가답게 상황 변화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가볍게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일관성을 갖도록 관리한 것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답다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_이성과 감성 - P281

찰스 디킨스와 그의 소설을 즐기는 대중과의 접점은 하층 계급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는 데서가 아니라, 천박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는 데서 말미암지 않았을까. 디킨스는 어린 시절 불운 때문에 잠시 빠져들었던 하층민 생활에서 어렵게 빠져나온 기억이 있고, 당시 대중들 또한 자신은 물론 하층민 사람들도 더 이상 천박해지지 않고 하루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랐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세상이 점점 천박해지는 것에 대해 모멸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거나. 소설 속에서 매그위치가 반복적으로 ‘천하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나, 하층 계급의 이야기를 전하는 디킨스의 문장이 지나치게 고급스럽고 해학적인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에밀 졸라의 직설적인 문장과 비교하면 디킨스의 해학적인 문장은 어색할 정도로 인물들과 괴리되어 있잖은가.
_위대한 유산 - P287

엠마는 외도 때문이 아니라 고리대금업자의 덫에 걸려드는 바람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 부분이 비슷한 시기 결혼한 여성이 외도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을 갖는 유럽의 다른 두 소설, 즉 독일 작가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1895)나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1877)와 구별되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의 문학계에 같은 내용의 소설이 세 편이나 등장했다는 것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엠마와 안나는 자살하고, 에피는 병으로 사망한다. 안나는 외도 끝에 절망한 나머지 기차에 몸을 던지지만, 에피의 경우는 외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몇 년이 지난 뒤 남편이 연애편지를 발견하는 바람에 순전히 명예 때문에 결투를 하고 에피는 딸과 함께 집을 나와 병으로 사망한다. 엠마에게만 빚이 문제가 되었다. 외도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 환경이 엠마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랄까.
_마담 보바리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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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29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복붙 ㅋㅋㅋㅋㅋㅋ 날로먹는 고라니상

책식동물 2023-08-29 22:0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1권 검색하시든 2권 검색하시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보셨으면 해서... 그러나 서재 친구분들에겐 같은 리뷰 도배ww

독서괭 2023-08-30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소개되는 거 듣고 재밌겠다 싶었는데.. 고라니님도 한번 고전깨기 도전해보시죠!
그나저나 고라니님의 진지한 리뷰 낯설지만 좋습니다 ㅋㅋ

책식동물 2023-08-31 20:54   좋아요 0 | URL
네 재밌었어요!!! ㅋㅋㅋ 저도 고전... 좋아하지만 안 읽은 게 너무 많아서 읽을 때마다 이게뭐임?뭔소리임?알못ㅉㅉ 이러고 말 것 같아 우려스럽네요... 읽을 수 있는 텍스트만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진지한 고라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