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유대인 혐오는
편견이었을까?
현 시대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만행을 보면 혜안이었을지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학대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 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그 당시 수천 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은 현재의 이스라엘을 예견했던 것인가. 여러 작품속에서 묘사한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옮겨적는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 권에는 <작가의 일기>가 실려 있었다.
1877년인가 1878년인가에 쓰인 이 책에서 나는 그가 유대인들에 대해 쓴 글을 발견했다.
제목은 ‘유대인 문제‘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런 제목의 글을 발견하고도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유대인과 유대인 여자와 유대인 아이들과 유대인들의 모든 것을 어디든 한 군데에 모아 쓰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런 예기들을 소설 여기저기에 많이 흩트려 놓았다.
언제나 젠체하지만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는 <악령>의 럄신도 유대인이었으며, 콧대가 높으면서도 겁쟁이인 <죽음의 집의 기록>의 이사이 포미치는 같은 수형자들에게 엄청난 이자를 받고 돈놀이를 하는 뻔뻔스러운 자이다. 또 <죄와벌>에서 소방관으로 나오는 자는 이렇게 묘사된다.
˝영원히 투덜거리는 듯 비판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유대인이라는 종족의 얼굴에는 예외없이 그렇게 언짢은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러시아어 발음은 소설에서 뭔가 특별하고도 섬세한 만족감을 유발시켰다. 또 유대인의 모습은(<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리자 호흘라코바의 이야기에 나오듯) 가련한 어린아이를 못 박아 벽에 매달고는 손가락을 자르면서 아이들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로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자주, 익명의 고리대금업자나 소상인이나 좀스러운 사기꾼들로 묘사되거나 심지어는 제대로 묘사조차 되지 않은 채 그저 유대인이라고만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또 유대인은 가장 저급하고 속물적인 인간성을 지닌 자의 대명사쓰럼 쓰였다. -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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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6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유대인 편견은 뿌리가 깊지요.중세부터 이어진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죄인˝이라는 기독교적 편견이 근대 초기에도 뿌리 깊게 남은데다가 토지 소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상업, 무역, 금융업(고리대금업)에 종사해야 했고 그 결과 유럽대중은 이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돈만 아는 고리대금업자˝로 낙인찍은 것이죠.게다가 19세기 유럽에 근대적 국가관과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19세기 말 프랑스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영토 없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유럽의 바탕위에 19세기 들어 슬라브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러시아 정교와 맞물려 토스토예프스키도 유대인을 혐오한 것이지요.

북프리쿠키 2026-09-08 09:4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반갑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대인 혐오입장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유대인 문학가와 비평가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칭송하는..그 입장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는 대목이 있더라구요.
역사와 종교, 철학 등 다방면에 깊이를 가지면 문학을 풍부하고 재미있게 읽을수 있는 실감을
카스피님의 자세한 설명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지만 러시아 정교에 대해 깊이가 없다보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꽤나 어렵게 느껴진 기억이 있어 이번 기회에 러시아정교에 대해 깊이있게 공부해보려 합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년에 노름에 빠져 속기사인 2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에게 늘상 돈을 뜯어가며 찌질하게 행동하던 모습입니다. 노름꾼의 강박은 정말 무섭습니다. 안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요설체로 자기혐오하던 문장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를 천사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며 용서를 비는 일이 더 자주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옷을 깁다 말고 한숨을 쉬면서 말없이 서랍장으로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돈을 내어주었는데, 이럴 때 그녀가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라도 하면, 그는 그녀에게 마구 화를 내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은 그녀의 돈이며, 그녀 어머니의 돈인 것을 잘 안다. 그녀가 불평하지도 않고 순순히 그에게 돈을 내주는 것은 바로 그 선량함으로 그를 억압하려는 의도다. 등등. 하지만 그는 다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가 그녀의 돈을 훔쳤으며, 그녀가 자신을 혐오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아직 자기를 더 혐오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156쪽

페쟈(도스토예프스키)는 우선 자신의 약혼반지를, 다음으로 그가 결혼식 때 선물한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금귀고리와 브로치를 저당잡혔다.(...)

브로치와 귀고리를 맡기고 빌린 돈을 잃는 그는 다음으로 그녀의 레이스 달린 숄(안나가 가장 아끼며 늘 외출시 하고 다니는 것)을 저당잡히려 했지만, 그런 것은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 162쪽

그들은 집세를 나흘이나 밀렸고, 주인은 그들에게 식사를 한 끼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아침에 하녀 마리에게 끓인 물을 청했지만, 하녀는 이제는 물 끓일 장작도 없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164쪽

안나그리고리예브나의 동의를 얻은 그의 품에는 포장으로 감싼 그녀의 라일락 빛 옷이 안겨 있었다. (...)
안나그리고리예브나의 옷으로 받은 돈은 5탈러였는데, 그는 이 돈을 첫판에 몽땅 베팅해서 잃고 말았다. - 168쪽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정궁˝을 자주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
수정궁은 당시 유럽에서 열렸던 상품 박람회 이름으로 1851년 철과 유리로 만든 런던에 세워진 대형 건축물로 제1회 만국박람회 개최하기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1936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를 문명의 이상이자 상징으로 삼아 자주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죄와벌>에 수정궁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 책에서도 수정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당시 도박에 빠져 돈을 딸때 수정궁으로 가닿는 환상을 묘사합니다. 그리곤 추락하는데 읽어보시면, 지금 주식에 빠져 돈을 잃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흡사한 것 같네요.


˝처음 두 번의 베팅에서나 때로는 세 번째 베팅에서까지도 그는 돈을 따곤 했다. 그럴 때면 도박꾼들과 구경꾼들이 이루고 있는 그 회전목마가 소용돌이처럼 그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하고, 그는 다시 수정궁이 있는 저 미답의 정상을 향해 수직으로 곧추선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갔다. 아래쪽에서는 낯익은 얼굴들이 그 애처로운 원무를 추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는 돈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기 방식을 고수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잃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 방식‘ 같은 것은 포기해 버린 후에도 그는 계속 잃고, 결국에는 돈을 가지러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강박 흥분증‘과 비슷한데, 좌절을 하면 할수록 그 시도를 반복하려는 집요한 욕망이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 161쪽

하지만 누군들 편리하게 ‘이론‘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충격들을 일종의 숙명으로 바꾸어 완화시키고, 또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실패와 나약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유형지에서 겪었던 소위 ‘정신적 변화(사회제도의 변혁에서 종교적 구원으로의 관심 이동)‘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병적인 자존심은 그가 그곳에서 겪었던 그런 모욕들과 결코 타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출구는 하나뿐이다. 이 모든 모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말이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나는 십자가를 지고 있으므로 이 모욕은 당연한 것이다˝
-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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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등한시했던..
그래 최애는 도스토예프스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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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밑줄긋기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번


어머니는 신부의 어머니가 되기는 싫어한다. 그냥 딸의 어머니로 남기를 원하고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다. -18쪽



어머니는 안 보이는 곳에서 딸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무엇보다도 한 남자가 에리카를 지금과는 다른 인간으로 변형시킬까봐 노심초사한다. - 20쪽


예술적이고 인간적이며 개인적인 생각으로 에리카는 하나의 공식을 유추해낸다. 즉 그렇게 오랜 세월을 어머니에게 종속되어 살아온 자신이 이후에 결코 한 남자에게 종속될 수는 없다는 그런 공식이다.
어머니는 에리카가 늦게라도 결혼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자기 딸이 도무지 어디에고 종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 21쪽


˝우리끼리만 사는 거야. 에리카야. 우리는 그 누구도 필요 없지 않니?˝ - 22쪽



박사님은 벌써 십 년 전부터 모차르트 <레퀴엠>의 마지막 비밀을 규명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사는 <레퀴엠>이 음악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 32쪽


들꽃 에리카. 그녀 이름은 이 꽃이름에서 딴 것이다. -35쪽



자식은 어머니의 우상이고, 어머니는 자식에게서 그저 약소한 대가를 요구할 뿐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식의 삶 전체인 것이다. -39쪽



눈(雪)이여 내 눈물을 따라가라. 그럼 시냇물이 너를 곧 데리고 갈테니.(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제6곡 ‘홍수‘의 한대목)-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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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마지막날
3일 내내 오전에 아내와 딸과 함께
티클래스에서 평온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시작했습니다.



* 엘프리데 옐리네크(1946~)
옐리네크는 194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빈 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음악사학, 연극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7년 시집을 출판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옐리네크의 작품들은 대체로 오스트리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여성 억압, 권력 남용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녀는 특히 나치 시대의 역사와 오스트리아 사회의 깊숙이 뿌리내린 반유대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 사회 전체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옐리네크의 작품들은 그 솔직하고 과감한 표현 때문에 종종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쫓긴 아이들》: 1965년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가정 내 폭력과 청소년의 범죄 심리를 깊이 파헤친 작품으로, 옐리네크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다.



《피아노 치는 여자》: 옐리네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며 유명해진 작품이다. 가족 내의 폭력과 성적 학대를 다루며,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노라가 남입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브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 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리자의 그림자》

《우리는 미끼새들이다》

《 오 자연이여 그로부터 도피여》

《욕망》

《죽은 자의 아이들》



옐리네크는 20세기 후반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옐리네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핀천도 타지 않은 노벨상을 내가 탔다니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나는 핀천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보다 노벨상을 먼저 탄 것은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노벨문학상을 받아야할 사람은 본인이 아닌 페터 한트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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