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8년에 씌여진 책입니다. 여기서 2챕터에 걸여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다룹니다.

정부는 범인으로 문세광을 체포해 모든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히고, 그 배후에는 조총련이 있으며 만경봉호에서 지령을 받았다고 문세광이 자백했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그해 대법원에서 사형판결후 3일만에 사형집행을 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하게 됩니다.

의혹을 제기하는 프로그램 2개가 2005년에 방영되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MBC <이제는말할수 있다>

의혹

1. 의혹 불러일으킨 권총 입수 경위
문세광은 저격수로 적합한 사람인가?
2. 문세광은 어떻게 권총을 가지고 행사장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3. 육영수 여사는 누구 총알을 맞고 숨졌나, 경호실장이 가져간 총알의 행방

- 한국일보 2005년 2월 12일자에 실린 한 기사 제목은 ‘육영수 여사, 경호원 총 맞았다‘이다. -178쪽
-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과 소리공학연구팀 배명진 교수는 SBS방송에서 총성 분석을 통해 육 여사를 쏜 총탄은 문세광 총에서 발사된 게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다. -179쪽
-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이건우 전 서울시경 감식계장은 1989년 월간 <다리>를 통해, 저격 사건 수사 과정에서 총탄 등과 관련해 숱한 은폐와 조작이 이뤄졌으며 육 여사는 문세광이 쏜 총탄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 180쪽

4. 신속하게 자백, 신속 수사종결,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사형집행

5.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 문세광의 배후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점.
- MBC방영에서 제일 충격적인 것은 ‘육영수와 문세광‘1부에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는 제목을 딱 달았다는 바로 그점이다. -183쪽

-문세광 수사를 맡았던 중앙정보부 김기춘은 수사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 나중에 박근혜 비서실장으로 기용되었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8.15 저격 사건이 나기 전 박정희 정부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굉장히 몰려 있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김대중 납치 사건이 대단히 잘못된 것인데도 박정희 정부 쪽에서는 반성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고 일본 측, 특히 일본의 언론 보도 같은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건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었는데, 1년 만에 8.15 저격 사건이 나면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눈여겨 본다. -194쪽


박정희 처남인 육인수는 1987년 <신동아>에 이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증언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 각하께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없었더라면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하시면서 굉장히 비통해 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과 8.15저격 사건의 관련성을 박정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다. -196쪽


* 1975년에 시행된 긴급조치 9호

긴급조치 9호의 주요 내용

유신헌법의 개정·폐지를 주장하거나 청원·선동하는 행위 금지

유신헌법을 부정·반대하거나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내용의 방송·신문·출판물 제작·배포 금지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행위 금지

학생들의 집회·시위 및 정치활동 금지

학교의 수업·휴업 등에 대한 통제 강화

긴급조치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수색할 수 있도록 함

위반 행위에 대해 법원의 재판을 거쳐 처벌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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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단편 벚나무와 마술피리

나는 가난하고, 무능합니다. 당신 한 사람을, 어떻게도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말로만, 그 말에는 털끝만큼도 거짓이 없습니다만, 오직 말로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 외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함이, 지겨워졌습니다. (...중략)

우린 쓸쓸하고 무력하니까,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적어도 말만이라도 성심껏 보내 드리는 게, 진정 겸손하고 아름다운 삶의 자세다, 라고 나는 이제야 믿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걸 이루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민들레꽃 한 송이 선물이라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미는 것이, 가장 용기 있고 남자다운 태도라고 믿습니다. 난, 이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23쪽


7편째 단편 <여치>
- 최고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이렇게 깊이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인거야? 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점점 더 속물적으로 변하는 제 자신에 대해 가끔 혐오감을 느끼던 요즘, 이 글은 아..원래 난 이런 사람이었는데..하는 자책을 하게 만드는 단편이었습니다.



헤어지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만 했습니다. 제게도 틀린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어요. - 68쪽

당신은 정말로,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당신은 하도 과묵했기에, 저는 아아, 이분은 이것도 저것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뭐든지 죄다 시시하니까 이렇듯 언제나 아무 말 않는거야. 라며 굳게 믿고만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봐요.-78쪽


당신은 예전에 아무것도 몰랐지요? 죄송해요. 저 역시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만 자신의 말만은 갖고 있을 작정인데, 당신은 아예 과묵하거나, 아니면 남이 말한 것만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신기하게 성공하셨습니다. - 79쪽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채로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습니다. 저는 돈이고 뭐고 원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멀고도 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그머니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80쪽

8번째 단편 <도쿄팔경>
- 첫번째 부인 게이샤 베니코, 본명 오야마 하쓰요와의 동거, 결혼, 아내와 다자이와 친한 친구 서양화가와의 불륜, 그리고 동반자살 기도 등이 주를 이루며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도쿄 팔경, 나는 이것을 청춘에 대한 결별 인사로서 아무한테도 알랑거리지 않고 쓰고 싶었다.
저 녀석도 점점 속물이 다 됐군. 이렇듯 무지한 험담이 산들바람과 함께, 소곤소곤 내 귀에 들어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꿋꿋이 대답한다. 난, 처음부터 속물이었지. 넌 모르고 있었나? 그 반대야. 문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 마음 다잡았을 때, 미련한 이들은 도리어 내가 만만하다고 간파했다. 나는 희미하게 웃음 지을 뿐이다. 만년 젊은이는 배우의 세계다. 문학에는 없다. - 89쪽


<우모레기>라는 소설 속 슬픈 문장 하나가 가슴에 떠올랐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걸 꿈꾸고, 추잡한 짓을 하는 것˝ - 92쪽


반드시 부부가 되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나는 형에게 여자를 건데기로 했다. 건네는 교만한 동생보다 떠 맡는 형이 몇 배나 더 괴로웠을 게 틀림없다. 건네기 전날 밤, 나는 처음으로 여자를 안았다. 형은 여자를 데리고, 일단 시골로 돌아갔다. -93쪽


긴자 뒤편의 바에서 일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 사랑받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한 번 있다. 불결한 시기다. 나는 이 여자를 꾀어, 함께 가마쿠라 바다에 들어갔다. 망가졌을 때가 죽을 때라고 생각했다.(...)

H와의 일로 어머니도 형도 숙모도 나한테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는 자각이, 내 투신의 가장 직접적인 한 가지 요인이었다.(...)

큰형은 H를 게이샤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 이듬해 2월, 내 곁으로 보내주었다.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형이다. -94쪽


그날 밤 나는 안 좋은 걸 읽었다. 루소의 <참회록>이었다. 루소 역시 아내의 예전 일로 쓰디쓴 경험을 한 대목에 맞닥뜨리자, 참을 수 없어졌다. 나는 H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날 밤, 마침내 털어놓게 했다. 학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모조리 사실이었다. 더욱 심했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끝도 없을 듯한 낌새마저 느껴졌다. 나는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97쪽


유서를 썼다. <추억> 100매다. 지금은 <추억>이 내 처녀작으로 되어 있다. 내 이런 시절부터의 악을, 꾸밈없이 써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물네 살 가을의 일이다. -98쪽


어차피 탄로 날 일이건만 하루라도 잠깐이라도 오래 평화를 지속시키고 싶어서, 또한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게 아무래도 두려워서, 나는 열심히 그때뿐인 거짓말을 한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그러고는 궁지에 몰려, 죽음을 생각한다. 결국은 탄로나서 사람들을 몇 배나 더 심하게 경악시키고 격노하게 할 뿐이건만, 도저히 그 흥을 깨뜨리는 현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잠시만 더, 잠시만 더, 하며 스스로 허위의 지옥을 더해 간다. -103쪽


그 무렵의 문단은 나를 가리켜 ‘재능은 있고 덕이 없다‘라고 평했는데, 나 자신은 ‘덕의 싹은 있어도 재능이 없다‘라고 믿었다. 내겐 소위 문재라는 게 없다. 온몸으로 부딪쳐 가는 수 밖에, 방법을 알지 못했다. 촌뜨기다. - 107쪽


나는 괴로움 속에서도,H가 가여웠다. H는 이미, 죽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도저히 어찌해 볼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나도 죽음을 생각한다. 둘이서 함께 죽자. 하느님도, 용서해 주시리라. 우리는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여행을 떠났다. 미나카미 온천, 그날 밤, 두 사람은 산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H를 죽게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H는 살았다. 나도 멋들어지게 실패했다. 약품을 사용했다. 우리는 마침내 헤어졌다. -110쪽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나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무지하고 교만한 무뢰한, 또는 백치, 또는 저급하고 교활한 호색한, 가짜 천재 사기꾼, 마음껏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돈이 궁해지면 위장 자살극을 벌여 시골의 부모님을 협박한다. 정숙한 아내를 개나 고양이처럼 학대하더니, 급기야 내쫓았다. 그 밖에 온갖 전설이 조소와 혐오, 분노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매장당했고, 폐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111쪽


사람의 전환기를 설명하기란 어쩐지 뭔가 공허하다. 그 설명이 빈틈없이 정확한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어딘가에 거짓의 틈새가 내비치게 마련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면서 행로를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리라. 대체로 사람은 어느 사이엔가, 엉뚱한 들판을 걷고 있다. -112쪽

드디어 <우바스테>라는 작품이 완성되었다. H와 미나카미 온천으로 죽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다. - 113쪽


예술이 되는 것은 도쿄의 풍경이 아니었다. 풍경 속 나였다. 예술이 나를 속였나? 내가 예술을 속였나? 결론. 예술은. 나다.
도쓰카의 장마, 혼고의 해 질 녘, 간다의 제례, 가시와기의 첫눈, 핫초보리의 불꽃놀이, 시바의 보름달, 아마누마의 쓰르라미, 긴자의 번개, 이타바시 뇌병원의 코스모스, 오기쿠보의 아침 안개, 무사시노의 석양, -114쪽

인간 프라이드의 궁극적 입장은, 이런 일 저런 일로 죽을 만큼 괴로워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각이 아니겠는가. - 119쪽


열 번째 단편 <옛이야기> 中
- 카치카치산

가로되, 반한 게 잘못이냐?
예로부터 전 세계 문예에서 슬픈 이야기의 주제는, 오직 이와 관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어느 여성에게나 이 무자비한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고, 남성에겐 그 선량한 너구리가 늘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 218쪽

- 혀 잘린 참새

나는 조금이라도 직접 실제로 경험한 게 아니면, 한 줄도 한 글자도 못 쓰는 참으로 공상이 빈약한 작가다. - 221쪽

난, 마음이 여린 사람이야. 당신한테 휩쓸려 덩달아 남들 품평을 하고 싶어져. 난 그게 무서워. 그래서 이젠 누구하고도 말을 말아야지 생각했어. 당신 같은 사람들은 남의 나쁜 점만 눈에 띄어, 자기 자신의 무시무시함을 도통 알아채지 못하니까, 난, 사람이 무서워. - 233쪽


열 한번째 단편 <비용의 아내>

인간의 일생은 지옥이며 촌선척마(寸善尺魔)(세상에는 좋은 일은 적고 나쁜 일은 많다는 뜻.), 이건 참으로 맞는 말이지요. 한 치 행복에는 한 자 마물이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인간 365일, 아무 걱정도 없는 날이 하루, 아니 반나절 있다면, 그건 행복한 인간입니다. -254쪽

열 세번째 단편 <미남자와 담배>

발레리의 말-선을 행할 경우에는, 언제나 사과하면서 해야만 한다. 선만큼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건 없으니까.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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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녕이라 그랬어

순간 ˝나도˝라고 답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정말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 246쪽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코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 249쪽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여겼는데 여전히 잃을 게 남은 삶 속에서, 자꾸자꾸 잃는 과정에서(...) - 251쪽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병실 복도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253쪽

<러브허츠>를 들으며 이 단편을 읽었습니다.


문득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게 중요해졌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진실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이미 말한 거짓을 바로잡는 데 더 마음을 쓰기도 한다. -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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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루기 힘든 김애란 입문이기에.
저에게 김애란 작가 첫 작품입니다.
큰 형수님이 요사이 책 읽는 취미를 가져 김애란 작가책을 사들이는 걸 보고 저도 이참에 덜컥 이 바닥에 발을 딛게 되는 비극을..
여러분들은 김애란 작가의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요?

이 책은 7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1. 홈파티

˝사실 해방 이래 한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금융)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38쪽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 39쪽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때면, 사랑이나 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43쪽


2. 숲 속 작은 집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시간이 거기 그냥 고이도록 놔둔 집주인의 자신감과 여유가 부러웠다. -54쪽

어디 얼마나 머물든 주변을 잘 정돈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자 자부였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독립 후 자취하며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좀더 잘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무언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단 실감이었다. - 57쪽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인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시치미와 드러냄, 감춤과 판별의 눈빛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가끔은 그들이 여행지의 마법을 깨뜨리는 듯해 언짢다가도 또 어느 땐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내 귀에 너무 잘 박히는 한국어가 신기해 고개 돌렸다. - 69쪽

그렇지만 실제로 내게 별 관심없는 이들에게 내 인생을 매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삶의 활력소처럼 가볍게 비난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삶의 권태를 어느 정도 그렇게 견디는 것뿐이라고 여기려 애썼다.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많은 위안이 되니까. 그게 남 뒷얘기 하는 이들 못지 않게 속물적인 태도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78쪽


3. 좋은 이웃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 141쪽


4. 이물감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 176쪽

그러나 보다 인상적인 건 차대표의 안색과 표정이었다.
그건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종 봐온 낯빛이었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랄까.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 음식의 원재료가 품은 바람의 기억, 햇빛의 감도와 함께 대장 속 섬모들이 꿈꾸듯 출렁일 때 그 평화와 소화의 시간이 졸아든 게 바로 ‘내장의 관상‘이었다. - 179쪽


5. 레몬케이크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 214쪽

6. 안녕이라 그랬어
7. 빗방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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