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단편 벚나무와 마술피리

나는 가난하고, 무능합니다. 당신 한 사람을, 어떻게도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말로만, 그 말에는 털끝만큼도 거짓이 없습니다만, 오직 말로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 외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함이, 지겨워졌습니다. (...중략)

우린 쓸쓸하고 무력하니까,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적어도 말만이라도 성심껏 보내 드리는 게, 진정 겸손하고 아름다운 삶의 자세다, 라고 나는 이제야 믿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걸 이루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민들레꽃 한 송이 선물이라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미는 것이, 가장 용기 있고 남자다운 태도라고 믿습니다. 난, 이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23쪽


7편째 단편 <여치>
- 최고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이렇게 깊이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인거야? 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점점 더 속물적으로 변하는 제 자신에 대해 가끔 혐오감을 느끼던 요즘, 이 글은 아..원래 난 이런 사람이었는데..하는 자책을 하게 만드는 단편이었습니다.



헤어지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만 했습니다. 제게도 틀린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어요. - 68쪽

당신은 정말로,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당신은 하도 과묵했기에, 저는 아아, 이분은 이것도 저것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뭐든지 죄다 시시하니까 이렇듯 언제나 아무 말 않는거야. 라며 굳게 믿고만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봐요.-78쪽


당신은 예전에 아무것도 몰랐지요? 죄송해요. 저 역시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만 자신의 말만은 갖고 있을 작정인데, 당신은 아예 과묵하거나, 아니면 남이 말한 것만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신기하게 성공하셨습니다. - 79쪽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채로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습니다. 저는 돈이고 뭐고 원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멀고도 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그머니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80쪽

8번째 단편 <도쿄팔경>
- 첫번째 부인 게이샤 베니코, 본명 오야마 하쓰요와의 동거, 결혼, 아내와 다자이와 친한 친구 서양화가와의 불륜, 그리고 동반자살 기도 등이 주를 이루며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도쿄 팔경, 나는 이것을 청춘에 대한 결별 인사로서 아무한테도 알랑거리지 않고 쓰고 싶었다.
저 녀석도 점점 속물이 다 됐군. 이렇듯 무지한 험담이 산들바람과 함께, 소곤소곤 내 귀에 들어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꿋꿋이 대답한다. 난, 처음부터 속물이었지. 넌 모르고 있었나? 그 반대야. 문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 마음 다잡았을 때, 미련한 이들은 도리어 내가 만만하다고 간파했다. 나는 희미하게 웃음 지을 뿐이다. 만년 젊은이는 배우의 세계다. 문학에는 없다. - 89쪽


<우모레기>라는 소설 속 슬픈 문장 하나가 가슴에 떠올랐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걸 꿈꾸고, 추잡한 짓을 하는 것˝ - 92쪽


반드시 부부가 되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나는 형에게 여자를 건데기로 했다. 건네는 교만한 동생보다 떠 맡는 형이 몇 배나 더 괴로웠을 게 틀림없다. 건네기 전날 밤, 나는 처음으로 여자를 안았다. 형은 여자를 데리고, 일단 시골로 돌아갔다. -93쪽


긴자 뒤편의 바에서 일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 사랑받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한 번 있다. 불결한 시기다. 나는 이 여자를 꾀어, 함께 가마쿠라 바다에 들어갔다. 망가졌을 때가 죽을 때라고 생각했다.(...)

H와의 일로 어머니도 형도 숙모도 나한테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는 자각이, 내 투신의 가장 직접적인 한 가지 요인이었다.(...)

큰형은 H를 게이샤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 이듬해 2월, 내 곁으로 보내주었다.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형이다. -94쪽


그날 밤 나는 안 좋은 걸 읽었다. 루소의 <참회록>이었다. 루소 역시 아내의 예전 일로 쓰디쓴 경험을 한 대목에 맞닥뜨리자, 참을 수 없어졌다. 나는 H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날 밤, 마침내 털어놓게 했다. 학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모조리 사실이었다. 더욱 심했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끝도 없을 듯한 낌새마저 느껴졌다. 나는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97쪽


유서를 썼다. <추억> 100매다. 지금은 <추억>이 내 처녀작으로 되어 있다. 내 이런 시절부터의 악을, 꾸밈없이 써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물네 살 가을의 일이다. -98쪽


어차피 탄로 날 일이건만 하루라도 잠깐이라도 오래 평화를 지속시키고 싶어서, 또한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게 아무래도 두려워서, 나는 열심히 그때뿐인 거짓말을 한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그러고는 궁지에 몰려, 죽음을 생각한다. 결국은 탄로나서 사람들을 몇 배나 더 심하게 경악시키고 격노하게 할 뿐이건만, 도저히 그 흥을 깨뜨리는 현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잠시만 더, 잠시만 더, 하며 스스로 허위의 지옥을 더해 간다. -103쪽


그 무렵의 문단은 나를 가리켜 ‘재능은 있고 덕이 없다‘라고 평했는데, 나 자신은 ‘덕의 싹은 있어도 재능이 없다‘라고 믿었다. 내겐 소위 문재라는 게 없다. 온몸으로 부딪쳐 가는 수 밖에, 방법을 알지 못했다. 촌뜨기다. - 107쪽


나는 괴로움 속에서도,H가 가여웠다. H는 이미, 죽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도저히 어찌해 볼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나도 죽음을 생각한다. 둘이서 함께 죽자. 하느님도, 용서해 주시리라. 우리는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여행을 떠났다. 미나카미 온천, 그날 밤, 두 사람은 산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H를 죽게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H는 살았다. 나도 멋들어지게 실패했다. 약품을 사용했다. 우리는 마침내 헤어졌다. -110쪽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나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무지하고 교만한 무뢰한, 또는 백치, 또는 저급하고 교활한 호색한, 가짜 천재 사기꾼, 마음껏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돈이 궁해지면 위장 자살극을 벌여 시골의 부모님을 협박한다. 정숙한 아내를 개나 고양이처럼 학대하더니, 급기야 내쫓았다. 그 밖에 온갖 전설이 조소와 혐오, 분노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매장당했고, 폐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111쪽


사람의 전환기를 설명하기란 어쩐지 뭔가 공허하다. 그 설명이 빈틈없이 정확한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어딘가에 거짓의 틈새가 내비치게 마련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면서 행로를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리라. 대체로 사람은 어느 사이엔가, 엉뚱한 들판을 걷고 있다. -112쪽

드디어 <우바스테>라는 작품이 완성되었다. H와 미나카미 온천으로 죽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다. - 113쪽


예술이 되는 것은 도쿄의 풍경이 아니었다. 풍경 속 나였다. 예술이 나를 속였나? 내가 예술을 속였나? 결론. 예술은. 나다.
도쓰카의 장마, 혼고의 해 질 녘, 간다의 제례, 가시와기의 첫눈, 핫초보리의 불꽃놀이, 시바의 보름달, 아마누마의 쓰르라미, 긴자의 번개, 이타바시 뇌병원의 코스모스, 오기쿠보의 아침 안개, 무사시노의 석양, -114쪽

인간 프라이드의 궁극적 입장은, 이런 일 저런 일로 죽을 만큼 괴로워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각이 아니겠는가. - 119쪽

열 한번째 단편 <비용의 아내>

인간의 일생은 지옥이며 촌선척마(寸善尺魔)(세상에는 좋은 일은 적고 나쁜 일은 많다는 뜻.), 이건 참으로 맞는 말이지요. 한 치 행복에는 한 자 마물이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인간 365일, 아무 걱정도 없는 날이 하루, 아니 반나절 있다면, 그건 행복한 인간입니다. -254쪽

열 세번째 단편 <미남자와 담배>

발레리의 말-선을 행할 경우에는, 언제나 사과하면서 해야만 한다. 선만큼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건 없으니까.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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