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5개중 2번째
<추억> P.25~72
다자이 오사무의 가족관계
쓰시마겐에몬(夫)-쓰시마다네(母)
사이에 7남4녀중 10번째로 태어남
1. 쓰시마소이치로(남)-요절
2. 쓰시마타마(여)-22세 사망
3. 쓰시마긴사부로(남)-요절
4. 쓰시마토시(여)
5. 쓰시마분지(남)
6. 쓰시마메이지(남)
7. 쓰시마케이지(남) : 27세 사망
8. 쓰시마아이(여)
9. 쓰시마키요(여)
10. 쓰시마슈지(다자이오사무)
11. 쓰시마레이지(남) : 18세 사망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1944년)>를 읽다가
˝나는 중학 시절에는 남의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전혀 없는데, 어찌 된 까닭인지 같은 반 N군 집에는 참으로 뻔질나게 놀러 갔다.˝(...)
<추억>이라는 내 초기 소설에 나오는 ‘친구‘란 대개 이 N군을 가리킨다. - <쓰가루> 52쪽
라는 내용을 보고 다자이의 첫 창작집 15편이 실린 <만년(1936년)> 속 <추억>이라는 소설부터 읽고 다시 쓰가루로 돌아가려고 한다.
◇단편 <추억> 속 밑줄긋기
나는 다케라는 하녀에게 책 읽는 것을 배워 둘이서 여러 책을 함께 읽었다. 다케는 내 교육에 열심이었다. 나는 몸이 허약한 탓에 누워서 많은 책을 읽었다. -27쪽
거짓말은 나도 줄곧 했다 -30쪽
학교에서 쓴 내 작문도 죄다 엉터리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얌전하고 착한 아이로 지어내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언제나 모두에게 갈채를 받는다. 심지어 표절도 했다.(...)
나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공부한 기억이 도통 없다. 나는 학교를 싫어했고, 따라서 교과서 따위를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락 책만 읽었다. 집에서는 내가 책만 읽고 있으면 공부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작문에 진실을 써 넣으면 어김없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 31쪽
아버지는 굉장이 바쁜 사람이라 집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집에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두려웠다.(...)
어머니와도 나는 친해질 수 없었다.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 숙모의 품에서 성장한 나는, 초등학교 2,3학년 때까지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쓸쓸한 추억이 많다. -32~33쪽
가족들은 내 용모가 형제들 가운데 제일 시원찮다, 시원찮다 했고,(...)
내가 형제들과 밥상 앞에 앉아있을때, 할머니와 어머니는 내 얼굴이 못 생긴 것에 대해 진지하게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분했다.-34쪽
나는 초등학교 3,4학년 부렵부터 불면증에 걸려 밤 2시, 3시가 되어서도 잠들지 못한 채, 툭하면 이불 속에서 울었다. -36쪽
그 곳의 교사들은 나를 엄청 괴롭혔다. 나는 입학실 날부터 어떤 체조 교사에게 얻어맞았다. 내가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이 교사는 입학시험 때 내 구두시험 담당자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공부도 제대로 못 했겠구나,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기에, 나도 고개를 푹 떨구어 보인 그 사람이었던 만큼 내 마음은 더욱 상처를 입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교사에게 얻어맞았다. 히죽히죽 웃는다거나 하품을 했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벌을 받았다.(...)
타인으로부터 아무리 사소한 멸시를 받아도 죽을 듯이 괴로웠다.-46쪽
내 얼굴이 검푸른게 예의 안마(자위행위)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던 터라, 나는 사람들이 내 안색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비밀을 지적당한 듯 허둥거렸다. 나는 어떻게든 혈색을 좋게 하고 싶어, 스포츠를 시작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혈색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 왔다. -50쪽
나는 자긍심이 높았기 때문에 내 생각을 상대에게 털어놓는 건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 53쪽
내겐 열 겹 스무겹의 가면이 달라붙어 있어서, 어느 것이 얼마나 슬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 54쪽
미요는 어느 하인에게 딱 한번 더렵혀진 것을 다른 하녀들에게 들켜, 우리 집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남자는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때는 이미 우리집에서 쫓겨난 뒤였다. 그렇긴 해도 청년은 말이 좀 지나쳤다. 미요는 나중에 그만해, 그만해, 하고 속삭였다고, 그 남자의 솜씨 이야기까지 보태어. - 7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