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소설속 작품들(상권)




1. 리처드 F. 버턴 <아라비안나이트1-5>

결국, 장정이 아름답고 여러 권으로 되어 있으며 버턴이 영역한 <아라비안나이트> 중에서 한권을 골라 열람실로 간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 상권 78쪽


나는 열람실로 돌아와 <어릿광대 아브 알 핫산의 이야기>를 계속 읽기 시작한다. -상권 81쪽



나는 열람실로 가서 버턴판 <아라비안나이트>를 계속 읽는다. 늘 그렇듯이 일단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다. 버턴판 <아라비안나이트>에는 내가 옛날에 도서관에서 읽은 아동판과 같은 이야기도 들어 있지만, 이야기 자체가 길고 에피소드도 많으며 세부적으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 도저히 같은 이야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외설스럽고 난폭하고 관능적인 이야기, 이해를 초월한 이야기도 잔뜩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마치 마법의 램프에 들어간 거인처럼) 상식의 틀안에 들어앉지 않는 자유로운 생명력이 충만해 있어, 그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역 구내를 돌아다니는 무수한 얼굴없는 사람들보다, 천 년도 전에 쓰인 황당무계한 이야기쪽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무척 이상하게 생각된다.- 상권 113쪽




작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앙투안갈랑의 아라비안나이트(6권)를 읽다가 3권 읽고 그만둔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차라리 성인판(버턴)으로 읽을 걸..하는 아쉬움을 남긴 책이다.




2. 플라톤 <향연>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상권 80쪽



의외로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특히 사랑이나, 영혼불멸에 대한 이야기는 깊이 있고 독자에게 스며들기 좋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3. 프란츠 카프카 <성><심판><변신><유형지에서>


물론 너는 프란츠카프카의 작품을 몇 편 읽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 <성>과 <심판>과 <변신>, 그리고 이상한 처형기계가 나오는 이야기.....˝
˝<유형지에서>˝라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야.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있지만, 카프카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지˝
˝저도 단편중에서는 그 이야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
˝카프카는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복잡한 기계에 관한 것을 순수하게 기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한참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카프카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느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상권 115~116쪽


하루키가 프란츠 카프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 문장들이 참으로 반가웠다.
글이란 건 자신의 경험과 취향을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역시 글은 바로 그 자신이다.





4. 나쓰메소세키 전집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버턴판 <아라비안나이트> 읽기를 계속한다. 나쓰메소세키의 전집읽기를 계속한다.-상권119쪽


역시 소세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하루키라 또 이렇게 소세키를 언급하네. 전집 읽기에 도전하고 있는 현재 이 문장도 눈에 번쩍 띈다.



5. 무라사키시키부 <겐지 이야기>


<겐지 모노가타리>(11세기에 일본 궁중생활을 묘사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역주)에도 생령이 자주 등장합니다만, 그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릅니다.-상권 133쪽


이 책도 소장각이다. 언젠가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6. 한나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는 거기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관한 책을 고른다.(....)
자기는 한 사람의 기술자로서 자기에게 부여된과제에 대해 가장 적합한 해답을 제출했을 뿐이다. 전 세계의 모든 양심적인 관료가 하고 있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한 것뿐이지 않은가? 어째서 자기만 이처럼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상권 255쪽



이 책은 반쯤 읽다가 포기했는데, 읽다 보면 정신은 어느새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
내 생각에는 이 책에 대한 다른 작가의 평설 같은 책을 읽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좋고, 이해도 빠르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고 물으시면 직접 읽어보시면 됩니다.



7. 셰익스피어 <멕베스>

‘몸부림치는 파도도 이 손을 담그면, 빨간색 일색, 녹색의 망망대해도 당장 붉게 물들리라‘, 멕베스의 대사지. 멕베스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의복의 세탁비도 무시할 수 없거든.-상권 282쪽


‘아아. 내 마음속에 전갈이 가득 기어 다니도다!‘ 이것도 역시 멕베스의 대사지-상권 289쪽



민음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비극 전집을 읽었는데,
다른 책에서 인용구가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이런 문장이 있었나. 머쓱하기도..
뭐 희곡이란게 여백이 많아 빨리 읽히지만, 남는 건 없더라는..



8.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아이스킬로스 <비극전집>

에우리피데스나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을 한번 읽어봐. 거기에는 우리 시대가 지닌 본질적인 문제점이 매우 선명하게 그려져 있거든, 코로스와 함께-상권 300쪽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전집은 소장하고 있는데, 불행히도 비극전집은 갖고 있지 않다.
가격이 넘 비싸거든. 중고로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나오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가 대학교에서 수강하는 과목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었지.
그때 ‘데우스엑스마키나‘를 와타나베와 이야기하고 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9. 톨스토이 <안나까레리나>

행복은 한 종류밖에 없지만, 불행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톨스토이가 지적한 대로 말이야.-상권 307쪽


안나까레리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문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 없던 나는 총균쇠에서 가축이 될 수 있는 조건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옹이 이 문장을 비유하며 설명했을 때 비로소 참뜻을 깨달았다.
해변의 카프카 본문에서 책 제목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린 다 알지 않아?
민음사도 좋고 문학동네도 좋다.





10. 소포클레스의 비극

˝소포클레스의 <일렉트라> 훌륭한 희곡입니다.
저는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말씀드리자면, 젠더라는 말은 애당초 문법상의 성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저는 신체적인 성차를 가리킬 경우 역시 섹스하고 표현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의 ‘젠더‘는 오용입니다. 언어적으로 세밀한 점을 말씀드린다면 말입니다.‘- 상권 346쪽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각자가 지닌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질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더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뚜렷한 본보기라고 볼 수 있어,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게으름이나 우둔함 때문이 아니라 그 용감성과 정직성 때문에 그의 비극은 초래되었거든, 거기에 불가피하게 아이러니가 생겨나는 거야-상권 385쪽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반대되는 의미로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있다. 소포클레스 전집에 실려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3대 비극전집중에 소장본이 하나도 없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언젠간 내 손에 들어오겠지.
아쉽지만 민음사에서 나온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4편을 읽는 수밖에.



11. 우에다 아키나리 <우게쓰 모노가타리>

예를 들어 <우게쓰 모노가타리>(1776년에 간행된 괴기담집-역주)에는 <국화의 언약>이라는 이야기가 있지.-상권 435쪽





라캉은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달리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공격적인 ‘성적 쾌락의 욕망‘이라고도 하고,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원이 되는 심적 에너지와 모든 본능적 에너지의 본체로서 생명력 또는 성욕으로 풀이되기도 하는 리비도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이드라 불렀고, 이드는 일본어로 우물을 가리키는 이도다.
이드는 연인과 하나되어 정지하고 싶은 에로스적 충동이요, 자신을 파괴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싶은 죽음 충동이다.
무의식은 전쟁, 증오, 분노, 잔인성뿐 아니라,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속성을 지닌 권력이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자주 언급한다.
그 음악이 미완성이기에 위대하듯이 무의식은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끔찍한 매혹이라 한다.




하루키가 이처럼 성, 죽음, 무의식, 메타포 등의 철학적인 재료를 가지고 소설을 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선호한다. 적쟎은 독자들이 야한 장면을 수시로 집어 넣는 것에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은 원래가 뜬금포다.
즉흥적으로 다가온다. 소설속 뜬금포처럼.
우리의 시선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을 때까지 우리의 욕망에서 한 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욕망 앞에서 번번히 좌절하는게 우리 인생의 과정 아니던가. 욕망은 어떤 형태로든 발현한다. 삶을 녹여내는 것이 소설가의 직분이라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큰 덩어리인 성을 어떤 식으로든 그려내야 한다. 물론 독자의 취향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섹스가 타자의 실존을 경험하는 유일한 행위라고 봤을 때 섹스는 욕망의 충족이 아닌 허무 그 자체다.
타자와의 합일을 기대하다가 존재의 개별성을 깨닫게 되는 바로 바타유의 에로티즘 말이다.
아마 하루키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그 덩어리를 자신만의 필법으로 세워 나가는 건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지 않는다>에서 잘 나와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에세이도 깔끔하지만 난 하루키의 소설이 더 매력적이다. 솔티라떼의 맛이 나는 에세이도 그만이지만 소설은 우리 혀가 느끼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맛이 난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어떤 한가지라도 완결짓지 않는다.
인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생의 욕망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죽음을 극단으로 보지 않는다.
생의 출발과 끝은 섹스와 죽음의 형태로 남는다.
그 둘은 삶속에 같이 존재한다.

사실 노트북으로 포스팅하고 싶었는데, 사정상 북플에 쓰다 보니 글 따로, 작품따로가 되어 버렸다.
보기 좋게 순서대로 글과 작품이 하나로 엮이지 못한 점 아쉽다.
한꺼번에 상,하권을 같이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하권은 다음에 기약해야겠다.

책 속의 작품은 역시 그 작가를 알아가는 데 소중하다.
우리 몸의 형태가 내가 어떤 음식을 내 입속에 집어 넣는가 하는 선택의 결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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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5-18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폰으로 작성하셨군요 ㅎㅎㅎㅎ 축하합니다 ^^

북프리쿠키 2019-05-25 11:46   좋아요 1 | URL
ㅎㅎ 노트북이 되는군요. 하권은 <햄릿><물질과기억>밖에 없어 따로 포스팅 안했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ㅎㅎ

2019-05-3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