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3
잔다르크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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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이름이 있다. 바로 백년전쟁의 도화선 속에서 멸망 직전의 프랑스를 구원하고, 불꽃 속에서 영원이 되고 성인(Saint)이 된 시골 소녀,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이다. 잔다르크에 대해선 솔직히 많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큰 존재임을 안다. 그래서 한 번쯤 알고 싶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역사책이나 위인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녀가 선택했고, 살아갔던 삶의 한 부분을 가져와 자신의 운명 앞에 어떻게 걸어갔는 지에 대한 삶의 동력을 얻게 해주는 책이다. 즉 육백 년 전 잔다르크의 삶을 통해, 아직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의심을 멈추고 자신의 운명을 시작할 용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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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앞으로 달려갈 용기가 없거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표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자격은 시작하기 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간 사람에게 나중에 붙는 이름이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항상 망설이며 주저 앉기만 하는 자가 있다면 19세의 소녀가 당시 어떤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고 놀랄 준비를 하면 된다.


책을 보기 전에 독자는 그녀가 위대한 인물로 태어나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요즘으로 치면 회사에 서류를 내밀 경력이 매우 미비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왕가의 피도, 귀족의 성도, 기사 가문의 이름도 물려받지 못했고, 군사 훈련을 받는 적도 없고, 글 조차도 읽지 못했다. 그저 프랑스 북동부의 동레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농민의 딸이다. 당시 여성의 지위는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회법과 봉건제도에 기반한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놓여 있었다. 물론 신분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인구가 문맹이었으며, 여성들의 지적 활동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여성은 법적으로 아버지, 남편 등 남성 보호자에게 종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대의 소녀가 세상의 평가와 거절 앞에서 얼마나 당당한지, 보클뢰르로 가서 수비대장을 만나 대뜸 왕세자에게 갈 수 있게 호위병을 내어 달라고 했다. 당연히 거절을 당했다. 아니 조롱 당했다. 거절보다 조롱이 더 견디기 어렵다. 거절은 내 요청에 대한 검토의 결과지만 조롱은 검토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이며, 들을 가치가 없다는 통보이다. 그런데 잔다르크는 거절을 넘은 조롱 앞에 세 번이나 찾아가 승낙을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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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지만 조롱과 거절에 파묻히지 않고 우선 내딛었다. 전에지는 바에 의하면 완고한 수비대장의 판단을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 그건 그녀가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참패를 미리 말했기 때문이다. 청어 전투라고 불리는 그 패전의 소식이 며칠 뒤 실제로 도착했는데, 이것을 통해 수비대장은 그녀를 인정했고, 호위병을 내주어 왕세자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이룬 ‘기적’보다 그 기적 이전의 태도를 보게 된다. 잔다르크는 자격을 갖춘 뒤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움직였기 때문에 자격을 얻은 사람이었다.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거절을 최종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신을 심판할 권리를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 스스로 깃발이 되어 걸어갔다

세상은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람을 나중에 인정할 뿐이다.

우리 또한 잔다르크가 가졌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 너는 아직 더 준비해야 되고, 자격을 더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도,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어도, 내가 망설임 없이 걸어가면 그 길은 나만의 길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물론 준비 없이 무작정 들이대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는 내가 하는 일로서 철저히 실력과 자격증을 따야한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멀었다 생각하며, 자격증을 하나 더 갖추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를 또 다시 준비하게 되면 나에게 오는 그 기회를 영원히 못잡을 수 있다. 하나를 갖추면 갖추지 못한 다른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밀고 가는 용기를 잔다르크에게 배우게 된다.


김연아 선수가 남긴 수많은 명언 중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기자가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 물으니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최근 또 한 자료를 보니 ‘200만 원 자본금’으로 일군 ‘2000억 매출’의 신화의 주인공 파파레서피의 창업자 김한균 대표가 이런 말을 한것을 보았다. "재지 말고 그냥 해야 결국 이긴다" 8평 사무실 한 칸에서 낡은 책상과 노트북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불과 6년 만에 연 매출 2000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생각만 하면

모든 게 두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움직이면

길이 생기고 세상이 달라진다.

생각은 머리에 남고

행동은 인생에 남는다.

그녀는 말 그대로 자격을 갖춘 뒤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였기 때문에 자격을 얻은 사람이었다. 현재 나에게도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곰곰이 생각만하며 무언가를 그려내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잔다르크는 남이 자신에게 내린 판정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고 그 한계선을 기꺼이 짓밟고 넘어섰다. 그렇다. 어떤 결심은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서 완성된다. 마음 속으로 백 번을 다짐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레미의 그 소녀는 왕세자를 만나러 가기 전 과감한 결단을 했다. 여자의 치마를 벗고 남자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잘랐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여자가 한 행동은 지금의 우리가 하는 거와 같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 시대 질서를 건드리는 일이고, 경우에 따라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는 중대한 위반이었다.

진짜 넘어서는 사람은 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목적지를 보느라 발밑의 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밟는다. 그게 전부다.

p.52

규칙과 질서, 기준은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규칙 아래에서는 위대한 혁명이나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의 잣대에 맞추느니 차라리 거룩한 이단이 되는게 낫다. 누군가 나를 규제하고 막아도 말이다. 잔다르크는 그런 모습으로 시농 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앞에는 쉽지 않는 테스트가 먼저 기다렸다.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이 모여 그녀를 검증했고, 까다로운 신학적 질문들이 쏟아졌다. 까막눈이었음에도 그걸 감추지 않고 자신이 가진 확신으로 대응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시농 성에서 도착한 잔다르크는 1429년 3월, 마지막 테스트를 마주하게 된다. 왕세자 샤를은 잔다르크를 시험하기 위해 신하들 사이에 옷을 바꿔 입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왕좌에는 다른 신하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잔다르크는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짜 왕을 지나쳐, 군중 속에 숨어 있던 샤를 황태자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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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하느님께서 전하를 랭스에서 왕으로 모시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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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광경에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왕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또한 다른 자료에 보면 잔다르크는 샤를과 독대한 자리에서 오직 샤를 자신과 하느님만이 알고 있던 은밀한 기도 내용을 언급하며 그의 혈통과 왕위 계승권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신실하고 순결한 소녀(La Pucelle)'로 인정받아 마침내 군대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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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을 볼 때 16세의 소녀가 보여준 강단있는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많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인 가운데 그녀라고 두려움과 조소 썩인 얼굴들을 보며 주눅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나아가 자신이 가진 신념과 확신을 말하며 동의를 얻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첫 번째 전투 현장으로 나가 부상을 이겨내면서까지 싸우면서 결국 영국군을 퇴각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잔다라크는 '오를레앙의 처녀(The Maid of Orléans)'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프랑스 전체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부상은 이러했다. 전투 중 화살에 어깨를 맞는 중상을 입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화살을 스스로 뽑아내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해 군대를 독려하면서 사기를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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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가로 막아도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배운다. 다쳤다는 것이, 상처 받았다는 것이, 일이 크게 어긋나서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가로막는 것이 분명 있다. 그게 사람이든 능력에 관한 것이든. 중요한 것은 용맹함도 필요하지만 아직 오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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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가면서 잔다르크라는 한 여성이 싸워간 인생을 배운다. 저자는 잔다르크가 걸어간 삶의 발자취를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져와 일일이 대비하며 우리가 가진 약점을 그녀에게서 배우라고 종용한다. 그런데 조금은 억지스런 대비로 이끄는 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잔다르크는 칼로 세상을 구한 장군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감각을 되돌려 준 사람이다. 세상이 내 목소리를 보며 미쳤다고 부를 때, 내가 그래도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여기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완성된 상태로 움직이겠다고 하며, 마냥 망설이는 자에게 잔다르크는 그저 한 걸음을 내 딛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준다. 잔다르크 역시 첫날에는 아무 자격도 없는 시골 소녀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섰기에 잔다르크기 되었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생각하며, 내가 그 자격에 맞는 사람일까하며 의구심을 가진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의 등을 조용히 밀어내주는 책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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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걸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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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우리 행동의 절반의 주인일뿐,

나머지 절반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은 대충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때론 집요하게, 때론 모든 것을 걸듯 살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것이다. 이 책은 한때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1559년에 금서 목록에 올렸다. 당시 교황청은 "사악한 책(evil book)"이라 부르며 금서로 지정했던 것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바라보는데,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간이란 존재를 철저히 파헤친 실존적 가르침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권력자들에게만 읽혀져야지 일반 시민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 한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밀을 알게되면 그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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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하길 착함의 기준을 버린다. 그 이유는 흔히 말하듯 '착하게 살면 결국 잘되며, 이긴다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좋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이용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배운 대로의 올바른 삶이 현실엔 통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물론 본 책은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건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쪽의 방식까지 볼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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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면 상대방 쪽의 인간은 내 선의를 고려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착하다는 걸 알고 정확히 그 지점을 이용한다. 착한 사람은 거절을 어려워하고 갈등을 피하고, 자기 몫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건 미덕이 아닌 예측 가능한 약점이다. 그래서 착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간교한 자들에게 많이 당하고 짓밟혔다. 독자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내가 생각한대로 대가를 주지 않는다. 철저히 인간은 계산적이며 이기적이다.

착함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착함을 지탱할 것을 갖추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착함은

대게 오래가지 못한다.

p.25

그래서 군주론은 흡사 명분을 제거하고 현실이라는 뼈만 남긴 해부학 책 같은 책이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은 잔혹한 문장이 즐비하다. 군주의 인자함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7장에서 "군주는 사랑을 받지 못할 바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사랑은 상대의 마음에 달려있고 두려움은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p.74)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책에 보면 "군주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그들은 군주의 편이다. 인간은 이익이 되는 일에는 걸신이 들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백성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해 두지 않은 군주는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역이용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악행을 행해야 할 경우에는 한번에 몰아서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때

언뜻 보기에 마키아벨리는 교활하고 술수가 가득한 악한 인생을 가르치는 거 같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우고 싶은 건 잔인함이 아닌 정확함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무엇에 움직이는지를 보는 법을 아는 것이다. 세상을 저주하는 대신, 세상이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를 왜곡 없이 보는 눈. 그 눈을 얻고 나면 이상하게도 화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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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에서는 로마 건국에 관한 얘기를 전해준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새 도시를 세우려 했고, 로물루스가 그 경계에 성벽의 선을 긋게 되었다. 그런데 동생 레무스는 그 성벽의 높이를 두고 형을 조롱했다. 그 낮은 담이 무슨 도시를 지키겠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물루스는 동생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로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실제 역사인지 전승인지 분분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물루스를 질타하지 않고 오히려 변호하며 이런 말을 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에는 한 사람의 단독 권위가 필요하고, 로물루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비난이 아닌 옹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속살인자임에도 마키아벨리는 그를 비호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정하게 보이는 악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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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인가? 지금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것은 도덕 교과서를 말하는 것이 아닌 한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 가를 말하고 있다. 창건이라는 것은 없던 규칙을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규칙을 만들 때 다들 자기 말을 내세운다. 그러면 그 배는 산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는 자리에서만큼은 결정은 한 사람이 쥐어야 되기에 때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실생활을 보면 그러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닌 산수다. 바꾼다는 것은 지금 이익을 보는 쪽에서 무언가를 덜어낸다는 뜻이며, 덜어낸 쪽은 당연히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미움을 계산에 넣으면서 실행해야 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끌려가며, 리더라면 존재감을 잃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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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은 한 문장을 위해 쓰여졌음을 알게 된다. 그건 「정치가 도덕의 언어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적나랄하게 말해준다. 다만 그 전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권력자들은 그의 책을 금서로 정했다. 틀렸기 때문이 금지한 것이 아니라 맞기 때문에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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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순진함을 벗는 것과 비열해지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배운다. 비열해지는 것은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쪽으로 손을 뻗는 일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은 그렇게 손을 뻗는 사람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진하다는 것은 그저 바보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다. 그건 인간은 대부분 이기적이며 계산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보면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하길 "당신에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쪽의 방식까지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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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진함과 정직함과 선함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세상은 우리를 얕잡아 보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 뭔지를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순진함을 유지하되 지혜롭게 판단하며, 그들에게 이용 당하며 살지 말라는 것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과 비열해지는 것은 다르다. 비열해지는 것은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쪽으로 먼저 손을 뻗는 일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은 그렇게 손을 뻗는 사람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앞의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고, 뒤의 것은 내가 무엇을 아느냐의 문제다. 눈을 뜨는 것과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동작이다. 눈은 항상 떠 있어야 하고, 이빨은 필요할 때만 꺼내면 된다." p.283

그렇다. 무언가 손해를 보고 집에 돌아온 밤에, 내가 착해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대신 어디서 판을 잘못 읽었는지 분명하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밤에 불 끄고 누웠을 때 억울했던 장면이 자꾸 떠오르면 이 책만한 가르침이 없다. 억울함은 감정이지 힘이 아니다. 세상은 나의 억울함을 계산에 넣지 않기에 때론 교묘함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군주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을 저주하며 살기에는 내 인생이 아깝다. 따라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 형태인지를 왜곡 없이 보여주는 이 책으로 달려와서 화를 가라 앉히길 바란다. 생각보다 세상에 대해 알고나면 이상하게 화가 줄어들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배신당하는 일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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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세상을 몰랐고, 사람의 심리를 몰랐다. 그래서 많이 당해보면서 이 책을 보니 마키아벨리가 본 인간의 심성, 군중심리의 본질, 조직의 성격, 리더십, 통치기술 등에 걸쳐 핵심을 꿰뚫는 마키아벨리의 통찰력은 비범하고 명쾌하다. 그러므로 세상을 너무 착한 마음으로 살지말라.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본 책을 꼭 정독하기를 바란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삶의 부분을 가져와 현실성 있게 알려준다. 읽으면서 마음에 해소되는 부분과 눈을 뜨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착한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는 것.

눈을 뜨는 일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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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동의보감 - 몸, 마음, 인생을 다스리는 최고의 건강 고전 ㅣ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김형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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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도 마흔을 지나면서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고, 오십이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이어진 몸의 변화가 오십부터 드러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십에는 내 몸 전체를 봐야 한다.


벌써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 섰다. 불혹의 나이인 사십에는 느끼지 못한 것이 오십이 되니까 확연히 다르다. 책에 쓰인 그대로이다. 「젊을 때는 며칠 밤을 설쳐도 다시 일어나고, 과식하고 과로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한다. 조금 비고 조금 막혀도 넉넉한 밑천과 빠른 회복력이 그 틈을 메워 준다. 그런데 오십이 되면 똑같이 일했는데 더 피곤하고, 예전과 같은 양을 먹었는데 속이 불편하다. 잠을 하루 설친 여파가 며칠을 가고, 전에 없던 통증이 생긴다. 마음의 흔들림도 몸에 더 빠르게 나타난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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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3-40대) 오십 넘은 사람들과 육십 넘은 사람들이 약봉지를 선반이나 방바닥에 쌓아두는 모습을 봤을 때는 왜 저렇게 몸을 관리하지 못해서 그럴까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그분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걸어 다니는 것도 괜찮고, 먼 거리를 운전해도 다음 날 조금은 피곤하지만 괜찮았고, 피부는 동안 외모라 항상 매끄러운 피부에 그다지 관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배는 나오지 않았고, 소화 또한 너무 잘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무리하게 몸을 사용해도, 지금의 방식으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큰 오만이었다. 그야말로 오십이란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몸은 무거워졌고, 기운이 쇠하였다. 눈이 흐려졌다. 검버섯이 생겼으며, 얼굴 표면에 뾰루지가 같은 것이 점으로 변하더니 없어지지 않는다. 같은 양의 밥을 먹지 못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어딘가 혹시 하는 마음에 보험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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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십은 달랐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지난 오십년 동안 먹고, 자고, 움직이고, 일하고, 사랑하고, 걱정하고,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몸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동의보감》을 보면 마흔을 지나게 되면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고, 오십이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이어진 몸의 변화가 오십이란 기점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십에는 내 몸 전체를 봐야 한다는 말을 이 책은 분명하게 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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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너무 많이 써 왔는가.

무엇이 부족해졌는가.

어디가 막혀 있는가.

무엇을 이제 놓아야 하는가.

무엇을 다시 채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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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100세 시대인데, 어른들 말따나 요양원에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건 지옥이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면서 정신이 번쩍들고 내 몸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오십을 준비하라고 가르쳐줬다면 내가 미리 준비는 했을까? 사실 이러한 가르침을 받는 교육이 나이 서른이나 마흔에 의무적으로 가르쳐 주는 제도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걸 귀담아 들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몸 상태가 좋지 않는 오십대처럼 되지 않는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보았다. 느헤미야 로저스(Nehemiah Rogers (1593 -May 1660)가 한 말이다. 『청교도 금언집』에 실린 글인데 『아무리 늙은 노인이라도 적어도 일년은 더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통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고 말하지만, 자기 나이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한다』 죽음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부분 자신은 오십의 나이가 되어도 건강한 몸으로 계속 산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종종 걸음을 걷는 사람처럼 안 될거라는 확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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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리를 지나보면, 특히 운동하는 공간에서 60이 넘은 어른들이 제대로 걷지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걷거나, 팔이나 다리가 굳어진 채로 다리를 끌고 걷는 모습을 본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나는 저 사람들 하고는 달라'하고 세뇌를 시키지만 어디 그게 생각대로 되는가? 저 어르신도 저렇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9월 2일자 뉴스를 보니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진행자인 박재홍(50) 아나운서가 뇌경색으로 갑작스레 쓰러져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근황을" 공개했다. 이분의 나이가 오십이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날도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미리 손을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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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 제목이 말해주듯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으로서 오십의 나이의 사람이 꼭 읽어야만 하는 거지만, 내 몸이 경험한바는 최소한 나이 사십에 반드시 읽고 오십과 그 다음 100세를 준비해야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전국민의 필독서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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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이후를 지키는 8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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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則不痛 不通則痛

통즉불통 불통즉통

통하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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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 담긴 위의 여덟 글자는 허준이 사람의 몸을 바라본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문장이다. 신기하게도 오십이 되면 몸 여기저기에서 전에 없던 신호가 나타난다. 어깨가 굳고 소화가 더뎌지며, 잠을 설치면 며칠이 피곤하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기운이 떨어진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느니 내가 그런 건가 하며 화가났다. 그러나 이것을 이겨내야만 하기에 몸에 좋다는 모든 정보를 이잡듯 찾아 음식은 물론 영양제, 보약 등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안 하던 운동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 전체의 흐름부터 살피라고 한다. 몸은 장기들이 따로 작동하는 부품의 집합이 아니라 장부와 기혈,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즉 오십부터는 어디가 아픈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막혔으며, 어떤 균형이 흐트러졌는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조가 의관들에게 말하길 "병이 난 뒤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몸을 잘 길러 병을 예방하는 양생을 중시하는 길을 마련하라"는 말처럼 이 책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라 미리 내 몸을 관리하는 백서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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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서양 의학과 다르게 병을 고치는 법을 기록한 의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 전체를 읽는 책이다. 즉 병을 보기 전에 사람을 보고, 증상을 보기 전에 몸 전체의 관계와 흐름을 읽도록 한다. 그래서 부족한 것은 제대로 채우고, 막힌 것은 흐르게 하며, 흐트러진 균형을 다시 바로잡으면 몸은 제 질서를 되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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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25년간 1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한 김형찬 한의사가 오늘의 오십에게 《동의보감》이라는 몸의 지도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저자 자신도 오십을 지나며 중년 환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예전 같지 않다”는 몸의 괴로움을 몸으로 실체 체험하였기에 이 책은 절박한 마음의 기록물이라 말라고 싶다. 아직 오십이 되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 책의 호소가 마음에 새겨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이 그걸 겪어 봐야 건강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흔히 듣는 명언이 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인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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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건강할 때는 이 문장의 깊은 의미를 모른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아는 말이라고 하니 인간은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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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뭔가 몸의 기운이 빠지고,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우리의 몸을 명확하게 되짚어주는 《동의보감》과 같은 책 한 권은 서재에 꽂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흔히 알듯 서양학은 우리의 몸 한 부분을 망가지게 하고 치료를 선사한다. 그러나 한의학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양생이 치유의 근본이라고 하면서, 몸 전체의 불균형을 치료하는 치료법이다. 어디가 아픈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막혔으며, 어떤 균형이 흐트러졌는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몸은 장기들이 따로 작동하는 부품의 집합이 아닌 장부와 기혈,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몸이 허하다고 무조건 값비싼 보약과 좋은 음식을 채워 넣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기 전에 왜 비었는지, 제대로 소화하고 순환시킬 힘은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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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은 이처럼 내 몸에 나타난 익숙한 증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54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1부에서는 : 정(精)·기(氣)·신(神)이라는 몸의 근본을 살피면서 오십 이후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살핀다. 2부에서는 오십에는 어디를 살펴야 하는가? : 형(形)·색(色)·태(態)로 드러나는 몸의 징후를 보고 몸 상태를 확인하도록 도와준다. 3부는 오십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허(虛)·체(滯)·란(亂)을 다스리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비어 있다면 제대로 채우고, 막혀 있다면 흐르게 하며, 흐트러졌다면 다시 자신에게 맞는 질서를 잡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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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독자는 두 가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날 부터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됐다. 분명 누군가를 새롭게 사랑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마다 가슴 떨림과 함께 자고 일어나면 식은 땀이 난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여러 번 깨어나 거실로 나간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갱년기인가 싶기도 한데, 문제는 그게 왜 나에게 오는가였다. 약간의 신경질이 났고,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되면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열을 만들어 내는 연료이자 열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정혈(精血)'이 부족해서 생기는 '가짜 열'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많은 영향을 준 금원 사대가 중 한 명인 주단계는 '양상유여 음상부족(陽常有餘 陰常不足)'이라는 한마디를 통해 이미 수백 년 전 현대인의 몸 상태를 정확히 예언했다. 여기서 양(陽)은 활력이 넘친다는 뜻이 아닌 냉각수가 부족해 엔진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상태를 말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마치 금메달을 향해 정혈을 태우며 과속 페달을 밟는 형태다. 그래서 그 자체로 정혈을 말리고 허열을 부추기는 거대한 건조기가 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고 하듯이 현대 사회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다. 젊을 때는 그래도 버티지만, 내리막에 들어서는 오십부터는 약한 고리부터 망가지기 시작하여, 그동안 누족된 정혈의 부채가 본격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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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혈이 뭔가? 정(精)과 혈(血)을 한데 아울러서 일컫는 말로서 옛 의학서에는 정과 혈은 다 음식물에서 생기는데 정혈의 상태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서 몸을 혹사 시킨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커피 한 잔으로 몸을 깨우지만 사실 그건 몸을 더 죽이는 것이다. 《동의보감》 내경편(內景篇)에 "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곡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였다. 다른 책에 보니 동의보감은 정기신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기신혈중에서 실제 우리 몸체를 구성하는 유형의 물질에 해당하는 것을 특히 '정과 혈=합쳐서 정혈'이라고 부르는데 그 정혈을 만드는 원천이 바로 "곡식"인 것이다.

정은 곡식에서 생기고, 정이 부족할 때는 음식으로 보충한다. 하지만 달고 기름진 음식은 정을 만들지 못하고, 오직 담박한 음식만이 정을 보할 수 있다. p.51

또한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대팽고희'라는 글을 남겼다.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와의 모임이다." 즉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산해진미부터 유배지의 거친 음식까지 경험한 노학자가 인생의 끝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은 소박한 밥상과 가족이었다고 하니 건강이란 것이 기본적인 것을 잘해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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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첫 번째 처방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내경편에 나오는 "경옥고(瓊玉膏)"이다. 경옥고는 동의보감에 소개된 무병장수를 위한 한약의 일종으로서 읽기만 해도 힘이 난다. 당장에 한약방으로 달려가고픈 심정이다. 자세한 내용이 책에 나오는데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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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채우고 골수를 보하며, 진기를 고르게 하고 정신을 기른다. 노인을 젊게 하고, 모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모든 병을 낫게 한다. 생명 활동이 충만하고, 장부의 기능이 왕성해진다. 백발이 다시 검 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며 걸음걸이가 달리는 말과 같아진다.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하면 온종일 배고픔과 갈증이 없으니, 그 효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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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론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경옥고는 균형을 잡기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진정한 경옥(瓊玉)은 약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절도 있게 다스려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맑은 진액속에 있다. 결국 평소의 몸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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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작년 부터 눈에 뭔가가 낀 거 같고, 사물이 선명하지 않다. 안경을 쓰지만 선명하게 보던 것이 이제는 눈이 흐리다. 동의보감의 가르침이다.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두 위로 올라가 눈에 모여 그 정기가 눈동자에 드러난다." 즉 눈의 문제는 눈 그 제차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이 안경을 맞추어야 될 것이 아니라 신장을 살펴야 하는 거였다. 책은 눈을 다섯 부위로 나눠 오장과 연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것을 오륜(五輪)이라 부르는데 눈꺼풀은 비장, 눈 안쪽 구석은 심장, 흰자위는 폐, 홍채는 간, 그리고 눈동자와 수정체는 신장에 속한다. 예를 들어 눈꺼풀이 유난히 붓거나 누렇다면 소화 기능의 정체를 살피고, 눈 안쪽 구석의 핏줄이 붉게 충혈돼 있다면 심장의 열이나 스트레스를 확인한다. 흰자위가 탁해졌다면 폐의 기운을 점검하고, 홍채의 광택이 떨어졌다면 간의 해독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눈동자가 흐려지고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신장의 정기가 소모되고 있다는 뜻이다. 눈 영양제를 먹고 있는 상황인데, 그리고 소변을 자주 보는 상황인데 신장에 무언가 큰 보약을 주러 책의 저자를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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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을 보면서 결론을 내리면 지나친 과로, 수면부족, 풀지 못한 스트레스, 운동 제로가 현재의 병을 불러 온 것이다. 몸이 지금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그걸 임시 방편으로 무마를 시키고 영양제로 내 몸을 관리하려고 했으니, 몸은 더 나아지지 않고 계속 하양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간단하게 수십개의 약병과 영양제를 꺼내 털어 먹으며 몸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쁜 에너지로 몸을 관리하지만 결국 그건 한계가 다가온다. 그래서 약왕이라 불리는 '손사막'에 따르면 "생활의 기술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약을 매일 먹어도 장수하기 어렵다"고 하듯이 몸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를 본 책을 통해 새롭게 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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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이란 책은 지금 내게 생명의 끈을 놓아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너무 지쳤고, 에너지를 쏟아냈다. 먹는 문제도 부실했고, 잠도 충분하지 못했다. 책에 나오는 처방전인 「귀비탕」, 「인삼고본환」, 「쌍화탕」, 「음양탕」, 「육미지황원」이란 등의 처방을 보면서 경옥고와 더불어 빨리 약이라도 지어먹어 내 몸의 기력을 회복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인생의 중반기를 준비하도록 하여 건강한 장수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특히 노화와 음식, 불안과 감정, 호흡과 체질, 얼굴과 피부, 움직임과 휴식, 소진과 보약, 비움과 갱년기, 회복까지 다루면서 몸이란 존재를 돌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 병들고 허약해진 내 몸을 어떻게 돌봐야 될지를 이렇게 얘기하듯 들려주니 빨려 들듯이 읽게 되었다. 망가진 내 몸을 보면서 망연해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단비와 같고 기운과 같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제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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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나이라면, 아니 사십의 나이에 들어선 자들도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 이 글은 컬처블룸(유노북스)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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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필사 노트
박경리 지음, 유선경 엮음 / 다산초당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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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히말리야 산맥의 최고봉인 에베레트산처럼 말이다. 도서 가운데도 그러한 최고봉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이 그것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단연 『토지』가 나에게는 에베레트산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토지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가 집필이 되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거대한 세계다. 출간된 책 권수는 20권이다.무려 9680페지이다. 지레 겁먹을 수준이다. 벽돌 책도 이런 벽돌 책이 없다. 그래서 논평이나 칼럼, 서평에서만 접했지 실제 접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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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지 필사 노트』가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탄생하여 우리 앞에 왔다. 이 책은 박경리 전작을 출간하고 있는 다산북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토지문화재단 공식 『토지』 필사 노트다. 토지 작품 가운데 중요한 엑기스만(147개의 글귀)을 기록하여 독자들을 토지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필사가 토지를 읽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엮은이는 유선경 작가이다. 그는 서문에서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도 이와 같은 대하소설은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썼는데 『토지 필사 노트』가 그 거대한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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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토지』의 글귀들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새로운 문장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글귀』라고 엮은이는 말하는데 마치 오컴의 면도날처럼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모순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 연민과 애달픔을 정과 한으로 승화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위로와 지침을 건낸다. 즉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이치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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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필사 노트』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펼쳐 쓰면 된다. 목차를 벗어나 그날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쓰고 곱씹으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토지』가 품은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들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즉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기며, 명징한 상태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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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주제로 엮어졌다.

1장 토지란 무엇인가?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3장 한국인의 한과 정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 심리

6장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한 장면

7장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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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작품 가운데 147편을 가려 뽑아낸 글귀들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1장 토지에 보면 마지막 필사 구절인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라는 글이 나오는데 엮은이는 이 문장이 토지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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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규범과 달리, 만든 것도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 애초부터 있던 원리이다. 그 태생대로 살아갈 때 삶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공식일 수밖에 없다"는 원리와 한계를 인정하면 삶은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이치를 말해도 인간은 결국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결국 이러한 생각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즉 다른 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인간은 남들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관통하는 이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토지는 그러한 깊은 삶의 이치를 체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들려준다. 한 순간에 듣고 마는 휘발성 문장이 아닌 한 생애를 처절하게 살아가면서 부딪힌 문장들이 이 토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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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토지』는 흔히 ‘우리말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부한 어휘와 살아 있는 말맛,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토지』를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문장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낯설은 경상남도 방언은 구수하다못해 매우 인간적인 단어로 들린다. 한 자료를 보니 생전에 작가가 평사리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만석지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넓은 평야가 있으며, 지리산이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뒷받침이 되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쓸 토속적인 언어, 경상도 방언을 쓰고 싶어서 섬진강을 낀 경남의 끝자락, 평사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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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각 주제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부분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몇 문장을 실어보면...(아니 많은 문장을 실어 본다)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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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hapter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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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그러나 비참했던 이력 때문에 버림당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인 줄 믿었던 지난날의 임이네는 아니었다. 남편 없어도 돈 있으면 산다는 배짱이었다. 용이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돈에게만 그는 그 자신의 장래를 걸었다.

이 세상 마지막이 온다 하여도 혼자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 불모의 바위틈을 피 흘려가며 기어오르는 생명에의 의지, 무서운 힘이었다. 그런 뜻에서는 본시부터 임이네는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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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자식도 갖고, 국밥집도 갖고 월선이도 죽어버리고 미운 사람들도 다 죽어버리고 그래주었으면 임이네는 오죽이나 좋았을까. 참으로 욕망 무한, 슬픔 없는 목숨이며 비렁땅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황막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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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 욕망의 완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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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물론 봄의 환히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련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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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chapter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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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도 편허질 않고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참말이제 워째 살아야 할지 모르겄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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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chapter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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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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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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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chapter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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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하고많은 일이 있고 어리석은 놈 등쳐서 깝데기 벳 기묵을 재간도 있는데도 와 하필이 이 짓을 하고 있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석아, 우리같이 설운 놈들이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굽히도 굽히는 것이 아니요 기어도 기는 것이 아니라. 안 그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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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chapter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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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에 가서 나뭇짐을 지더라도 가난하고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이치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 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지금 당장 목전의 원수는 일본이지만, 따라서 너의 형도 목을 쳐야겠지만, 제발 일하라 않겠으니 숨지만 말아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 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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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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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chapter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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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너에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런 나이지만 여자, 술, 담배 하면서 크게 타락한 것같이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리 생각은 하겠으나 실상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물론 너 어머니 성질이 남다른 것을 알긴 알지. 그만큼 너 자신도 성질이 남다른 데가 있는 게야. 순수한 것이 아니면은 다 부숴버리고 싶은, 그래서 너 자신을 짓이기고 있는 게야. 아무튼 지금 내 생각으론 이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은, 잘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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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chapter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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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언행에 중심이 잡혀 있고 심지가 꼿꼿한 윤도집인데 어찌 하여 환이에게만은 매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그러면은 신경이 바늘 끝으로 변하여 상대방을 찌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도집은 환이의 그 살기 어린 야유에 부딪친다. 살기나 야유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는 의식이, 소인배라는 자의식이 그를 부끄럽게 했고 자신에 대한 능멸감 때문에 견딜 수 없게 한 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매번 환이에 대해서만은 늪과도 같은 도전의 유혹에 빠지는 건지 윤도집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증오심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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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chapter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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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만 목에 칼 걸어놓고 사는 건 아니잖소. 산다는 것은 목에다 칼 걸어놓은 거요. 사는 것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성님 말이 맞소. 항상 칼든 놈이 뒤따라오는 것 겉은 생각을 했인께요. 이서방이 허약해져서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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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가 거든다.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뭣이든 거머잡고 싶은 심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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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chapter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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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하겄노, 안 그렇나? 사흘 굶으믄 엔간한 사람이 아니믄 맘 잘 못 묵기 쉽지.(…)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그라믄 부처님 안 되겄나? 사램이란 하루에도 몇 분은 나쁜 마음 묵지. 나쁜 사람도 하루에 한 분쯤은 좋은 마음 묵어보고 지은 죄도 무섭아해보고." 늘 그러던 봉순네였으나 귀녀에게 대해서만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지는 그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

​

"염치는 배부른 사람이 챙기는 거지, 너처럼 그랬다가는 굶어 죽을 기다."

"그거는 그렇지 않다." 호야할매는 끼어들었다.

"아무리 배가 고르고 기찹아도 염치를 채리야만 그기이 사람이제.

있고 없고가 상관없는 기라. 있다고 해서 어디 염치 채리더나?"

​

104. chapter 늙은 탓이 아니야 세월이 달라진 게야

​

김환과 길상이 나간 뒤 이동진은 오열한다.

"이 사람아, 석운(최치수의 호).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 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 한 호박 넝쿨처럼 사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의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 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을 뿐인데 세월이 달라진 게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하기야 살아남으려면 의관이 무슨 소용이겠나. 맨발로 뛰어야 할 때는 맨발로 뛰고,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면 물구나물 서야 하고. 한데 그게 안 되거든."

​

107. chapter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

"지난날을 생각허믄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 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

좋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고귀하거나 천박하거나, 청렴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생김새만큼이나 마음보들이 각양각색인 600여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도 든다. 결국 여기에 나오는 인물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비추기 때문이다. 안 그런척 하지만 토지의 각 인물은 내 내면을 비춘다. 따라서 『토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말맛이 살아 있는 이 문장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문장들을 일일이 읽어봐야겠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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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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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한 문장에 마음이 뺏겨 손길(서평 신청)이 갔다.

"참아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친 바다 위를 표류하며 전우들을 모두 잃고, 숱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하늘을 향해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묵묵히 다짐한다.

​

"참아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

​

살다보니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엇이 문제였지하는 자책감과 함께, 문제의 늪이 더 크게 짓누른다. 한편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희망도 있지만 어떻게 이 위기를 벋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신을 찾게 된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는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지 않느냐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

참으로 산 넘어 산이다. 큰 산을 넘어 왔기에 이젠 어떤 산도 넉넉히 넘을 수 있고, 나를 괴롭힐 산이 없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큰 산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또 큰 산맥이 나를 가로 막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 앞에 처절히 무력해지는 모습에서, 이젠 어떡하라는 말입니까하며 누군가(신?)에게 하소연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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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은 신들의 폭풍 속에서 노를 젓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을 알게 된다. 삶을 흔드는 무게가 하늘만큼 커보여도 이제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또는 신의 변덕에 분노하거나, 나의 무능을 저주하는 일은 집어 치워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망할 시간에 다음 파도를 넘을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

거대한 운명의 격량 앞에 그가 가진 지혜나 기도조차 무력했다고 한다. 그렇다. 세계는 정의로운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 반드시 부러진다.

​

"왜 나만 이런가, 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양인가, 반대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가는가." 억울함에 매몰되어 과거만 파고드는 따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만 파고들면 손에 쥔 노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법이다.


그렇다. 이 책은 낭만적인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화두를 던진다. 그건 당신의 이타카(Ithaca-오디세우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의 섬 이름, 문학적·상징적으로는 ‘귀향’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용어)는 어디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가하며 내가 가야할 종착지가 어딘지를 묻는다.

​

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괴물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십년 동안 방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타카는 낙원이 아니었다. 작고, 척박하고, 돌 많은 섬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화려한 대안을 제시했다. 칼립소는 불멸을 주겠다고 했고, 키르테는 그를 왕처럼 환대했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들은 그를 붙잡거나 새로운 삶을 권한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갈 배와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향했는데, 여기에 대해 프롤로그를 쓴 편집부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가 거절한 것은 귀환을 대신할 영원한 안락이었고, 그가 받아들인 것은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 타인의 환대였다.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초라해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초라한 이타카를 부끄러워하며 남의 화려한 섬에 눌러앉으려 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삶은 타인의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진 안락한 삶이 아닌 폭풍 속을 걷지만, 되는 일이 없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힌 삶만이 오로지 나의 이타카가 되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가 전쟁터에서의 영웅적 죽음과 명예를 다루었다면, 이 책 『오디세이아』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신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지금의 불확실한 시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천년 전에도 거친 바다를 향해 했고, 지금도 동일하게 인간은 가혹한 폭풍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불명의 생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필멸의 인간으로서 고통과 늙음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돌아간 자리는 그를 더 혹독하게 다루어 그곳이 그의 무덤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돌아간 이타카는 사실 폐허에 가까웠다. 왕궁은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했고, 아내는 지쳐 있었다. 아들은 낯설었고, 자신은 다 늙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타카로 돌아갔다. 이타카가 좋은 곳이라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남의 낙원보다 내 폐허가 낫다.

​

낭만적인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러하다. 화려하게 지어진 타인의 집보다, 허술한 집이지만 가족이 있고, 내 삶의 흔적이 있었던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이다. 한때 미국 이민 갔던 자들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웠을 때 미국 문화의 화려함 속에서 살기보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쓰러져 가는 고향 집, 들 길을 찾아 오듯이 우리는 우리가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책은 다섯 겹의 항해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 째는 고난을 수용하는 법. 두 번째는 유혹을 경계하는 법. 세 번째는 희생을 감수하는 법. 네 번째는 심연을 응시하는 법. 다섯 번째는 이타카를 탈환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각 장마다 주는 깨달음과 삶에 대한 선명함이 주어질 것이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가혹한 운명을 마주해 보자.

​

이 책에는 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의 이름이다. 여기서 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신은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 신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은 이 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이길 수 없는 폭풍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노를 잡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

한 자료를 보았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평생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있는데 그건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이다. 그가 도달한 답은 단순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만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서사적 정체성’이라 불렀는데 결국 오디세우스를 읽은 자는 오디세우스가 살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항해, 즉 나만의 오디세우스를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신들은 각자마다의 가혹한 운명을 만든다.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자세 또한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을 보고 끌려 가지 말고, 내 안에서 요구하는 욕망을 따라 오늘도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실어본다.

"신(神)은 불쌍한 자를 돕지 않는다, 오직 '닮은 자'에게 투자할 뿐이다."

"신들이 인간에게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부여한 것은,

훗날 태어날 이들에게 불릴

노래를 만들기 위함이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中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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