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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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공감이 구원이 됩니다

어떤 책은 표지와 제목으로 인해 선뜻 마음이 동한다. 이 책은 표지 그림과 제목이 시사하듯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연대에 대한 얘기다.

아픔을 가진 자에게 공감과 위로는 따뜻함을 넘어 구원을 준다. 즉 삶을 견디게하며 용기를 준다. 요즘 또 다시 마음 다친자들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그 중에는 자살 싸이트에서 만난 두 남녀도 있다. 아픔을 가진자들이 자살이라는 연결점으로 서로가 연대되어 죽음이라는 용기를 가졌다.

이렇게 연대함(공감)은 삶의 가장 큰 무서움(죽음)도 이기게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많이 아픈 이유도 서로 연대함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마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이 생각이 난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맺는 두 종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상대방의 존재를 '기능적인 어떤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은 언제든 다른 대상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나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만 유용하다. '나—너'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한 '나'와 역시 대체 불가능한 '너'가 신뢰 속에서 존재하는 관계다.

좀 더 설명하면 '나—너'의 관계는 온 존재를 기울이는 관계이며, '너'를 나의 의도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은 '나—그것'의 관계일 때 가능하다. 즉 '나—너'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며, '나—그것'의 관계는 쓸모의 관계이다. '나—너'의 관계는 상대방을 현존하도록 만들지만, '나—그것'의 관계는 눈앞에 있는데도 상대방을 부재하게 만드는 관계다. 이 관계는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며 이때 '너'라는 의미는 단지 '너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는 식이다. 나에게 무의미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마음의 연대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 책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사건에 대한 실제 얘기는 책의 맨 뒷편에 나온다. 소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밤중 남편이 목에 밧줄이 감긴 모습으로 살해되었다. 그런데 같은 침대 옆자리에 있던 부인은 곤히 자느라 범인을 목격하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깊게 잠드는 편이라서."

이 말에 대해 목격자(루이스 헤일)와 보안관 피터스, 담당 검사, 두 명의 이웃 여인들이 사건 현장에 오게 된다. 누가 보아도 아내가 살인했을 가능성을 두고 추측하지만 여인들은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그 여인이 겪었을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더러워진 수건, 뚜껑이 열린 채 방치된 설탕 통, 낡아 빠진 화덕, 양동이, 특히 정갈하지 못한 한 부분의 퀼트 조각 등은 살해된 자의 아내가 즉 농부의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를 느끼게 해준다. 아래의 글은 사건 현장에 있던 두 여성이 남긴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낀 대목이다.

"검사는 싱크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하지만 깨끗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건이 더럽네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주부는 아니었던가 봐요. 부인들이 봐도 그렇지 않나요?"

헤일 부인이 반발했다. "농장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p55

"헨더슨 검사님. 농부의 아내로 살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지 아시나요? 게다가...

그 집은 쾌적한 환경은 아니잖아요. 이 집." p57

남성이 수건을 보는 관점과 여성이 보는 관점이 보이는가? 여성은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은 사건 중심으로만 살피고 있다. 또 다른 대목으로 가보자. 이번에 낡아 빠진 화덕에 대한 얘기다.

"한 눈에도 여기저기 부식되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화덕을 보았다. 헤일 부인은 해가 몇 번이고 바뀌도록 낡아 빠진 화덕과 씨름해야 하는 삶은 도대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헤일 부인은 떠올렸다. 저 오븐에서 어떻게든 뭐라도 구워보려 애쓰는 미니 포스터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미니 포스트를....." p83

그리고 또 다른 대목은 '퀼트 조각'의 대목으로 가보자.

"바느질이 다른 부분은 정갈한데 여기 이건..... 세상에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한 것 같네요. 여기저기 찔리기도 많이 찔렸나 봐요. 이걸 만들 때 정신을 딴 데 팔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요? 시선이 마주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반짝이며 터져 나왔다. 어떠한 연대감이 둘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 아무리 봐도 한 사람의 실력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였다. 엉망진창진 퀼트 조각을 들고 있으려니, 어쩐지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된 불안감을 진정시켜보려 여기저기 바늘을 찌르던 한 여자의 심정이 퀼트 조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p.89, 93

이 책은 한 사건에 대한 '공감'에 대한 얘기다. 이 사회는 어떤 사람을 단죄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하나의 대상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게 된다. 한 사람은 우주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첨부되어야 한다. 그래서 범죄자를 대하는 시선도 살인=징역 또는 사형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범죄자를 보게 한다. 물론 여기에도 이런 등식이 적용되어야 하느냐는 난관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저자가 말하듯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나만의 불운이고 비극인 것 같아서, 내가 부족하여 이겨내지 못한 시련인 것 같아서, 그저 감추고만 있는 비밀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꺼내어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알게 된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감내하며 인내하려 애쓰고 있음을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이란 존재를 단지 가정에서 '하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존재에서 한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여성들은 자신의 비극이 개인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 드러나자 같은 비극을 견디며 살아가느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며 권리를 찾았다. 결국,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론화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드러내거 연대화여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다. "어떤 공감은 구원이 된다. 공감은 연대를, 연대는 용기를, 용기는 변화를 불러온다.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 같은 마음으로 견디고 있는 것이다." p.146-147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매몰차며 냉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참되게 생각하며 기쁨도 슬픔도 나누는 사이가 된다면 이 사회는 토마스 모오가 말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물론 토마스 모어가 말한 것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유토피아가 그려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연대하는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꾼다.

그것은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만이 그런 참 연대를 이루는 세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린 연대함을 통해 살아갈 용기와 구원을 얻는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 이 글은 책과 콩나무 카페를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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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반
헨리 반 다이크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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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서 오시고 계십니다.

마중을 나가야겠습니다.

p55 아르타반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그만큼 이 책은 간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깊이가 남다르다.

이미 성서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책의 내용은 그냥 읽혀지지 않고 새삼 깊이있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하겠다. 이 책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함께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책이라고 본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듯 이 책은 지어낸 이야기나 구전이나, 어느 날 펑하고 나타난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 저자에게 선물로 준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허공에서 펑 하고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어느 책에 적혀 있던 것도 아니고 동방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도무지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누군가 제게 선물로 주신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쩐지 저는 제게 이야기를 선물하신 그분을 알 것만 같습니다.

헨리 반 다이크 p.145

이 책은 그냥 줄을 치지 않고 소설처럼 읽으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독자에게 펜을 들게 했고, 줄기차게 줄을 긋게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마음과 뇌리에 새기게 하였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영적 깨달음의 가지들은 독자의 마음에 이미 뿌리내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다시금 되새겨 주고 있다.

이 책은 진리의 본질을 언급한다. 조로아스터교가 본질을 끝없이 추구하는 종교라고 하듯 주인공 아르타반은 조로아스터 사제의 모습으로 나타나 진리라는 본질을 향해 남들과 다르게 추구하며 열정을 내고 있다.(p21)

어느 날 아르타반은 함께하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부른다. 그들을 향해 "여러분은 신을 숭배하고 본질을 갈망하는 그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오셨을 거라면서, 제단의 불꽃을 다시 점화하듯 믿음도 이따금 불을 붙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이 불이 아니라 이 불은 단지 그분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 불은 빛과 진리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임을 말하며 스승과 같은 노학자 아브가르스에게 자신의 말이 맞는지 묻는다. 이에 그 노학자는 심오한 말을 하였다.

"그렇다, 나의 아들아. 깨달음을 쫓는다면 맹목적인 숭배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니라. 형태라는 장막을 걷고 현실이라는 성전에 들어갈 때, 오래된 상징은 새로운 빛과 진리를 드러낼지니라." p.31

그렇다. 진리를 찾는 자는 맹목적인 숭배자가 되어선 아니 되고, 형태라는 장막을 걷어 현실이라는 장막에 들어가야만 진짜 진리를 맛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진짜 메시야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진리의 실체가 눈에 보이는 그런 형태나 기대하던 어떤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배고파하는 자들이다.

"생사가 달린 갈등 앞에서 아르타반의 영혼이 욱신거렸다. 이방인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해서 중대한 사명과 신앙적 보상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지, 죽어 가는 유대인 한 명에게 물 한 컵을 내어 주기 위해서 예언의 별을 놓쳐야만 하는 것인지, 아르타반은 고민 끝에 기도했다." p.75

우리는 신을 향해 예배하면서, 숭앙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또는 성지 순례를 통해 좀 더 구원자와 가까운 은혜를 누리려고 비싼 돈을 들여 이스라엘이나 기타 성지로 떠난다. 그런데 그 성지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구원자를 만나려는 노력이 기도를 많이하여 환상으로 주님을 눈에 보이게 만나는 것인가? 과연 고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며 성가를 부르면서 고귀하게 신을 찬미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종교적 행위로서 최선을 다한 것인가?

실제적 예수(구원자)는 우리 주변에 있음에도 다른 예수를 찾아서 예배당을 두드리고, 저 멀리 성지로 떠난다. 그러나 그 구원자는 아르타반이 그러하듯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다. 물론 개중에는 특별한 은혜로 구원자 예수를 보고 만난 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도, 성경에도 그 구원자는 영광스런(권력을 얻은, 세상적 업적에 뛰어난 모습) 형태로 존재하거나 메시야처럼 나타나지 않고 우리 가운데 비천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악압받고 고통받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가 찾는 왕은 성에 살지 않거니와 부자와 권력자들 사이에 있지도 않을 것이니라. 어떠한 빛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 이스라엘을 빛나게 할 참된 영광이 무엇이겠느냐. 그 영광이 사람들이 쉬이 바라는 위대한 세상적 업적과 동일했다면 이미 오래전 세상에 왔을 것이니라.(실제로 요셉은 아브라함의 어떤 아들도 다시 뛰어넘지 못할 권세를 이집트의 성에서 누렸음이오, 솔로몬은 역사에 다시 나오지 못할 장엄한 업적을 예루살렘의 사자들 사이에서 왕권을 다지며 세웠음이니라)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전한 새로운 빛이니라. 그 영광스러운 승리는 인내와 고통 속에서만 돋아날 것이요, 그가 새로 세울 나라는 결코 스러지지 않을 사랑으로 세워질 영원의 나라이니라. [...] 언약의 메시아는 그를 애타게 부르짖는 가난한 자들과 비천한 자들과 근심하는 자들과 억압된 자들 가운데 계실지니라." p113-115, 덕망 있는 유대교 율법학자 랍비

주인공 아르타반은 잔뜩 기대를 안고 동방박사처럼 세 가지 보물을 들고 즉 사파이어, 루비, 진주를 가지고 별을 쫓아 예루살렘까지 이르렀다. 그는 잔뜩 기대하며 열정과 갈망을 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러나 아르타반은 거기서 예수를 보지 못했다. 어느 덧 33년이 흐르고 새카맣게 빛나던 머리카락은 눈 덮인 겨울 산처럼 희게 되었고, 불꽃 같은 눈도 이제는 타 버린 재처럼 흐려졌다. 지치고 닳은 상태 속에 그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영혼은 여전히 왕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희망으로 다시 예루살렘을 찾게 된다. 그러나 거리는 유월절 분위기로 어수선하다. 더군다나 거대한 무리의 인파가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 보였고, 하늘에는 우중충한 어둠이 드리웠다. 소동의 원인을 알고 싶어 누군가에게 물었는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자가 골고타라는 곳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는 것이 아닌가? 땅도 진동하며 지진이 일어 났다. 이 가운데 아르타반은 묵직한 기와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그는 그토록 기다리는 구원자를 죽어가는 그 순간에 만나게 된다. 음성으로 만난 것인지 환상으로 만난 것인지는 독자는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그저 저무는 태양의 어스름한 빛 속에서 아주 작고 고요한 소리 같았고,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지는 말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노쇠한 아르타반의 목소리였다. 페르시아 말로 그는 자신에게 말한 분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의 신이시여. 저는 그러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 굶주린 당신께 먹을 음식을 내어드렸습니까. 제가 언제 목마른 당신에게 물을 내어드렸습니까. 집 잃고 헤매는 당신을 품은 적도, 벌거벗은 당신을 입힌 적도, 감옥에서 병든 당신을 돌보아드린 적도 없습니다. 33년 동안, 당신을 찾아 헤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왕으로 섬기기는커녕 당신 앞에 도착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에 저 멀리에서 달콤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들렸지만, 마음에 각인되는 소리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렇게 그의 여정은 끝났다. 창백하던 그의 얼굴에 잔잔한 경이와 기쁨의 빛이 서서히 차오르며 아주 길고 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혜로운 남자는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왕을 만났고, 그가 준비한 보물은 모두 왕께 진상되었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썼는데 그럴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 그 스토리가 이 책의 서평이고, 이 책이 주고자 하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바라던 왕(구원자)을 찾아 우리는 어쩌면 그 왕이 원하는 바와 다른 것을 추구하며 예배하며 추앙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왕은 우리 곁에 도움이 필요로한 곳에 있건만 예루살렘에 있다고 착각하며, 헛된 것에 삶을 허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주인공이 가진 세 가지 보물은 왕께 직접 드린 것은 아니지만 그 왕이 받았다. 그건 바로 눈물과 아픔으로 얼룩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통해서 말이다. 어쩌면 아르타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나사렛 가족의 아이를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별로 상징되는 그 구원자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종교를 초월한, 선한 삶을 향한 개인적 갈망과 그 갈망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마음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오래전부터 발목을 잡아 온 영혼의 갈등을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종려나무 숲에서도, 베들레헴의 초가집에서도, 아르타반의 영혼은 신앙적 기대와 실천적 사랑의 충동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무려 두 번이나, 신을 위해 준비한 보물을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말았다. 만일 이것이 아르타반의 선택을 지켜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라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엄청난 기회인지 마지막 시험인지, 아르타반은 자신으로서 알 수 없겠다고 결론지었다. 즉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런 불가피한 선택이야말로 신이 주신 운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아르타반은 생각했다. 그러자 갈등하던 마음에 한 가지 확신이 차올랐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라의 실천이라는 확신이었다. 사랑이야말고 영혼이 낼 수 있는 유일한 빛이 아니겠는가."

"딸아. 이걸로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하거라. 왕께 드리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온 나의 마지막 보물이란다." p.131-133

"최악의 상황 속에서 최대한 만족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최선의 그림자라도 쫓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삶 아니겠느냐? 게다가, 위대한 무언가를 목격하기 위해서 때로는 홀로 떠나야 하는 법이니라" p. 51

- 이 글은 책과 콩나무 카레를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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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삶은 하나입니다 - 삶을 바꾸는 12가지 기독교 핵심 교리
폴 트립 지음, 윤종석 옮김 / 디모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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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좋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과 성화 부분에 있어 기존의 교리 틀 안에 갇힌 모습이다. 구원론에 대한 재고를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교회(성도)가 성도로서의 진정한 삶을 잃어버릴 것이다. 즉 언어유희적인 모습이 보였다. 제시카윤목사님과 김세윤박사를 토대로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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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비뇨기의 구조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이야기
도마 히로시 감수, 정성진.홍유아 감역,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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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 내 신체중 하나가 이렇게도 중요한 것인줄을 알게 되었다. 『토머스 풀러』가 말했었다. "질병은 느낄 수 있지만 건강은 느낄 수 없는 것"

내가 생각한 것이 명언처럼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러나 질병은 누구에게나 이런 깨달음을 주는 것같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하나이자 리더십 전문가인 『로빈 샤르마』라는 자 또한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위해 시간을 내지 않으면, 병 때문에 시간을 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If you don’t make time for exercise, you’ll probably have to make time for illness.

건강에 대해 자신 있었다. 또한 운동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기에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물론 운동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직업상 앉아서 하는 일이기에 늘 피곤한 모습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언제든지 운동으로 건강함을 돌릴 수 있는 존재라 생각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었다.

건강에 대해서만은 자신감을 갖지 말라는 말이 이래서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요즘은 더욱 느낀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예전보다는 많이 하고, 특히 걷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헬스장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도 먼지 모르겠다. 그리고 건강에 관한 음식은 물론 약해지고 아픈 몸에 대한 다양한 건강식품, 그리고 건강에 관한 독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것으로 보아 신체 나이가 이젠 몸을 돌볼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는 노코멘트다.

이번에 건강 도서로 보게 된 책은 신장과 비뇨기에 관한 책이다. 평소 피곤하면 소변이 자주 마렵고, 어떤 경우엔 소변에 거품이 많이 일어나 혹시 당뇨가 아닌가 생각도 하였다. 심지어 냄새까지 많이 나서 분명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거 같아 화들짝 놀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뇨는 아니었다. 일시적인 피곤함과 스트레스성이 원인이었다. 주변에 당뇨로 인해 발가락이 잘리고, 두 눈이 먼 분을 보았기에 더욱더 예민하다. 신장 투석 또한 마찬가지다. 이건 생각만해도 끔찍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를 위한 건강 정보로 최선의 책이다. 더군다나 앉아 일하는 것이 많아 전립선 부분이 불편하다. 물론 전립선비대증은 아니고, 너무 장기간 앉아 있어서 그런 것이니 약과 함께 운동 처방을 받았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임을 정말 명심하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독자인 나를 위한 책이며, 동의보감에서 말하듯 「아직 생기지 않은 병은 미리 다스린다」는 유비무환과 같은 책이다. 내 몸의 구조와 질환, 이상 증세 등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 이 책은 그런 부분들을 그림과 함께 의학지식을 통해 매우 자세히 설명해 준다.

신장, 요관, 방광, 요도의 구조와 증상, 질환을 그림으로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 같다. 너무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이 책 한 권을 독파한다면 반의사로서 충분한 자격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이 책은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에 대한 학술적 이야기다. 의학적 지식이 많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그림과 함께 설명이 잘되어 있어 신장과 비뇨기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신장은 누구나 알듯이 다행히도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암에 걸려 하나를 제거하거나 누군가에게 하나를 제공해도 하나가 건강하면 제기능을 할 정도로 성능이 좋은 장기이다. 너무 감사한 신의 배려라 생각된다. 신장은 소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정보만 알았지 구체적인 부분은 사실 아프지 않은 장기니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잘 정리된 의학지식을 보니 소변이 그냥 소변이 아니라 신체설계를 신비롭게한 신의 손길이 새샘 놀랍다. 조금 더 정리를 하자면 소변은 우리가 마신 수분을 회수하여 그대로 소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생긴 노폐물이나 필요 없어진 것중 물에 녹는 성분을 소변으로 배출한다.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소변으로 배설하여 체액의 양이나 성분, 수소 이온 농도(pH), 혈압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혈압까지 조절하는 역할까지 한다니 놀랍다. 이처럼 체내의 환경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현상을 「향상성」이라고 한다. 신장은 이렇게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장기였다. 그리고 신장이 하는 일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혈액을 걸러 소변을 만드는 신장에는 항상 많은 양의 혈액이 흐른다. 그런데 신장이 혈액이나 혈압을 감시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적혈구의 양과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정말 이렇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임을 알게 되어 감사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신장에 관한 지식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신장은 체중의 60%를 차지하는 체액을 조절한다. 체엑이란 체내에 있는 물을 말한다. 성인 남성인 경우 체액이 체중의 60%를 차지한다. 어린이 경우는 70~80%를 차지하며, 여성이나 고령자는 체액이 적다. 약 50~55%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왜 이렇게 나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물 섭취가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된다.

체액의 정보도 알면 좋겠다. 체액의 대부분은 물이고, 그 안에 소듐이온(나트륨), 포타슘이론(칼륨), 염화물 이온과 같은 전해질과 단백질, 포도당 등이 녹아 있다고 한다.

신장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 정보도 보자. 신장에서 혈액을 여과하여 소변을 만들기 때문에 신장에는 몸에 흐르는 혈액의 20~25%에 해당하는 1~1.2ℓ(분)의 혈액이 늘 흐른다고 한다. 혈액을 여과하는 기능이기에 정말 다른 장기보다 보호하고 아껴야할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조혈작용을 돕고 비타민 D를 활성화하여 칼슘의 재흡수에 관여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하니 놀랍다 못해 새롭다. 우리 몸의 뼈는 몇 년 사이에 온몸의 뼈가 새로 교체가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도 신장이 작용하여 뼈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신장에 좋은 음식만을 섭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장만 죽 살펴 보았는데 비뇨기에 대한 자료도 보면 놀라운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책은 대학에서 교양필수 과목으로 꼭 넣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어느 장기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책에서는 신장과 비뇨기의 기본과 구조, 역할, 소변 검사로 알 수 있는 것, 이상 증세, 주요 질환 등을 매우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고 또한 요약, 포인트, 세 종류의 주석, 컬러 일러스트까지 따로 정리를 해줌으로 신장과 비뇨기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처하도록 해주고 있다.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었다고 하지만 전문서적처럼 보인다. 그만큼 자세히 다루어주고 있고, 쉽게 이해되도록 노력한 흔적도 많이 보인다.

건강이라는 것은 건강할 때는 모르는데 건강을 잃을 때 건강을 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조스린이란 분이 말하듯 '운동은 하루를 짧게 하지만 인생을 길게 만들어준다.'고 하듯이 운동을 통해 내 몸을 아끼고 인생을 길게 만들어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강에 관한 명언을 나열해 본다.


-질병은 천개나 있지만 건강은 하나밖에 없다 「L.뵈른네」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다. 허준, 「동의보감」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모르고 병자만이 건강을 안다 「칼라일」

-고통이나 질병이 심각할수록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나쁜 습관 고치기, 새로운 습관 들이기 같은.. 「피터맥윌리암스」

-단식은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치유수단이다 「파보에어볼라」

-재산을 모으기 위해 건강을 해치지 마라. 건강이 곧 재산이다 「베이컨」

-우리가 늙어서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운동을 그만두기때문에 늙는 것이다 「케너스쿠퍼」

-어리석은 일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익을 얻기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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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 부의 절대 법칙을 탄생시킨 유럽의 결정적 순간 29,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강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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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제와 금융에 관해 그림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하여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그림을 통해 어떻게 경제를 보고 경제를 통해 어떻게 세계를 볼 수 있을지 그 전개 과정이 궁금한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의 문을 열었다. 책의 서문에서 금방 독특한 관점을 보게 되었다. 그건 바로 유럽사를 보게 되면 '수탈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수탈에는 '결핍'이라는 전제 조건이라는 불과분의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중세사의 변곡점이 된 '십자군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가톨릭 세계를 수호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을 파헤치면 교황, 황제, , 귀족, 영주, 기사 등이 저마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도 일명 신항로 개척이라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 다양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는 유럽에서 나지 않는 향신료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지중해에서 나와 대서양으로 진출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군다나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정치, 경제적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참혹한 식민지 시대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아가 아시아까지 진출해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든 뒤 원주민들은 노예로 부렸으며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부와 자본을 축적해 강국으로 발돋음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어렴풋 들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경제사를 명확하게 정리해주니 읽으면서 화가나며, 식민지 국가에 대한 미안함이 앞서게 된다. 결코 그들을 향해 우리가 현재 GDP 순위 10위에 있다고 하며 마치 선진국처럼 그들을 낮게 보는 행동은 절대하지 말아야할 모습이다. 이건 유럽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재화를 얻은 배경이 이렇게 악마와 같은 착취에 의한 것이라면 현재 유럽은 자신들 나라 복지를 위해 애쓰기 보다 식민지로 인해 후진국의 삶을 면치 못한 그들의 복지도 분명 신경을 쓰며 돌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유럽은 결핍을 참지 못하고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 것이다. 결핍을 충족하기 이한 뺏고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제사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부의 중심지는 이동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는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 또한 명암(明暗)이 있다. 결핍을 채우는 과정은 인류를 '자본주의'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욕구가 큰 나머지 크고 작은 전쟁과 함께 인류를 자멸하게 만들 수 있는 제1, 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유럽은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에 많은 것을 빼았겼다. 그리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유럽연합EU'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또다시 결핍을 채우기 위한 연합이다. 문제는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의 행동을 답습하려 하는데 그러나 그때의 상황과는 다른 시대이다. 후발주의자들은 바짝 추격하며 위협을 가한다. 그리하여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규제'라는 틀을 만들어 버린다. 그게 바로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을 하려면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만 경제적 부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친환경 포함)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많이 든다. 역사는 외형만 달라졌을 뿐 패턴은 반복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들을 쫓아가기 위하여 저자는 예술작품을 통해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교묘한 유럽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 주고 있다.

 

 

그렇다. 오늘날의 세계사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백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는 이런 백인들에 의해 움직였던 유럽이 어떻게 부()를 이루어갔는지에 대해 독자들의 눈을 활짝 열어준다. 세상이 움직이는 냉혹한 법칙을 직면하면서 독자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책은 세계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에 대한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서문 안에서만 하더라도 새로운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하물며 그 안의 내용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호기심 가득한 자료를 많이 가져와 눈과 마음을 즐겁게하며 지식을 채워주고 있다.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올리브, , 바다의 축복 소금, 독일 부의 기반 맥주,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대구, 네델란드를 일으켜 세운 청어, 대항해시대의 신호탄이 된 후추, 커피, , 분업화, 페스트, 칼레해전 등등의 얘기를 통해 경제를 보는 눈이 정말 많이 열리게 되었다. 현재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경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페스트가 일어난 시대는 그 시대의 산물로서 노동력의 가치를 올렸다면 현재의 전염병은 오히려 비대면으로 인한 AI의 등장으로 노동자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를 맞이하는 시대로 변모했다. 같은 역사적 경험이 시대를 통해 재해석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 책은 우리가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건 세계를 보는 눈이다. 경제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는 위대한 통찰력을 주고 있다. 책으로 만들기 위해 수고한 저자의 노고가 이 책 말미에 적혀있다. 자신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 전해주었는데 독자 또한 감사로서 이 책을 읽고 다른이에게 추천할 것이다.

 

- 이 글은 컬쳐불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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