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의 생명 공부 -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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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게놈과 바이오 혁명의 시대,

생명 과학의 핵심을 꿰뚫는 17가지 질문들!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서

 

금 시대는 인간이 건강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즉 기술이 질병을 통제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세상엔 수만가지 치료법과 신약이 떠도는데 이것은 결국 인간이 생명이라는 신비를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인류의 문제는 무언가를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후대의 세계에 물려주는 것인데 그러나 지금 세대는 그런 물려줌조차 허비라 생각하고, 생명의 영원성을 꿈꾸며 인류 안에서 지금 영원히 살고자 한다. 20112월에 시사 주간지인 타임지에 놀라운 기사 제목이 떴다. "2045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해" 즉 현재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의 한계인 노화와 죽음을 과학 기술로 극복한 죽지 않는 로봇과 인간의 복합 형태인 호모 에볼루티스(Homo Evolutis)라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거라는 예측이다. 정말??

 

정말?? 이러한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생명 과학에 대한 연구나 발전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생명 과학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생명 과학이 아주 빠른 속도로 정보 과학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다양한 인간 지도책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화 되고 있다. 즉 이는 생명체로서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나 단백질 등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 성분 모두에 대한 지도책과 인간의 다양한 암세포 전체에 대한 지도책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2003428일 과학계는 물론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발표가 전 세계에 전해졌지 않은가. 그건 바로 인간게놈지도 완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생명체의 기본 단위이자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구조만 알려져 있을 뿐 실제로 세포 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떠한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또한 한 가닥 실타래 같이 생긴 DNA 위에 쓰여 있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 암호문을 해독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러던 차에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영국의 생거연구소, 그리고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 등 세 곳의 연구팀이 공동으로 주도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 HGP)가 결실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명 너머의 영원성을 꿈꾸는 시대가 되었고, 자신감에 차있다. 이미 2012년에 미국의 라이프 테크놀로지(Life Science Technology) 연구 기관에서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인 DNA룰 매우 빨리 읽어 낼 수 있는 염기 서열 해독기를 출시했다. 작은 복사기 크기의 이 기기를 이용해 인간의 전체 유전 정보 DNA인 유전체 30억 염기쌍의 서열을 단돈 1,000달러로 하루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십 조의 세포 중 단 하나의 세포마다 각각 다르게 발현하는 모든 mRNA의 염기 서열과 발현 정도를 정량적으로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100달러면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 유전 정보와 그 발현 정도를 읽어 내 그 정보에 따라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할 수 있는 개인 맞춤형 의료의 시대를 살고 있고, 더 가속화 중이다. 그러니 병에 걸리더라도 마치 마트에 가서 원하는 품목을 사듯이 내가 필요한 장기나, 질병을 원 시스템으로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꿈이지만, 생명 과학 연구는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사실 '포스트 게놈이니 바이오 혁명'이니 하는 용어는 익숙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쉽게 말하면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 인류가 넘볼 수 없었던 생명이란 존재에게 인간이 과학을 불어 넣어 신의 영역에 이르는 길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즉 인류 문명이 생명의 정보를 읽어 내는 게놈 시대를 넘어 생명체를 편집하고 재창조하는 포스트 게놈 시대로 이미 넘어왔고, 복제를 넘어 맞춤 아기, 장기 이식 등 많은 생명 과학 기술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하고 있는 생명 과학에 대한 시선이다. 즉 이 책은 현대 생물학의 최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명에 대한 근본을 되돌아본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생명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생명체의 교정과 편집에 경계가 있는가? 생명은 어떻게 나와 타자를 정의하는가?” 등등 생명에 대한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윤리적, 철학적 질문까지 17가지의 질문을 통해 생명에 대한 진정한 본질을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 과연 인간이 원하는 죽음을 정복한 생명에 이르게 되면 그것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가? 내 맘대로 맞춤 아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혹시나 모든 제품에는 불량품이 나오듯 그때 문제가 생긴 아이를 물건처럼 여겨 폐기처분처럼 자녀를 생각해 버린다면 그 문제는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윤리적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런식의 사고라면 절대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금지된 과학으로 법률화 하겠지만 시대가 흐른뒤에 안락사처럼 죽음을 개인적 취향이며 권리로 여기듯, 내가 원하는 아이가 만들어지지 않아 나는 버리겠다고 한다면 그 아이를 누가 키울 것이며, 공장처럼 만들어진 아이이기에 누군가 폐기한들 과연 정죄를 할 수 있는가 이다. 이런 문제만 아니라 인간이 지금 생명 과학으로 얻어내는 이득 가운데 많은 단점이나 오점들이 생길 것인데 그런 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해 버린다면 생명이란 존엄성이 과연 인간에게 부여가 될 것인지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듯 마지막 17장 부분에서 "생명 과학은 어떤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질문과 해답이 필요하다. 사실 생명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이용되는 것에 모든 사람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예방과 치료가 꼭 필요한 질병이고 어디부터가 단순히 생명체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강화인지 그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명 과학에 대한 진보나 발전은, 또한 공부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며, 무엇이 생명체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의 질문이다. 병에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하며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면 우리는 더 인간답게 되는가? 인간은 결국 결핍된 불완전한 존재기에 인간이 아닌가? 가슴 아프지만 어떤 형태로든 생래적으로 부가되는 결핍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과정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가이다. 그리고 인간을 생로병사를 갖는 하나의 생물 종으로서 받아들이고 생태계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공유할 수 있음이 인간다움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결론적 희망이 우리를 다시 생명 과학에 대한 시선을 다시금 멈추게 한다.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욕망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제어할 수 없이 움직여 나갈 때 우리 인간이 물어야 되고, 고민해봐야 하는 사회적 논의가 요구가 된다.

 

이 책은 현재 생명 과학 지식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귀한 책이면서 생명 윤리에 대한 질문을 환기해 주는 철학적인 책으로 쓰여졌다. 책의 마지막은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일곱 가지 두려운 죄중 하나인 "인간애가 없는 과학"이 생명 과학에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마친다. 좋은 얘기며, 새겨야 할 글이라 생각하여 독자 또한 적어 본다.

 

노동이 없는 부

양심의 가책이 없는 쾌락

인간애가 없는 과학

성격이 없는 지식

원칙이 없는 정치

도덕성이 없는 상거래

희생이 없는 예배

 

송기원의 생명 공부를 통해 생명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인간다움을 가진 과학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다시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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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근대 국가를 규정할 새로운 군주의 탄생 클래식 아고라 6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종법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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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은 꼭 한 번쯤 정독하며 읽고 싶은 책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깊이 있게 정독하지 못하여 기회가 되면 읽고자 했는데 이번 기회가 그 시기인가 보다. 이미 많이 번역이 되어 나온 책인데 또 다시 이 책은 버젓이 '원본에 가장 충실한 번역본'이라는 소개로 독자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물론 독자는 그 전에 나온 책 보다 더 훌륭한 번역본이라고 믿고 본다. 인생에는 신뢰어린 마음이 무엇보다 귀하다. 번역자에 대한 신뢰는 문장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들어가 번역자의 시선에서 보게 한다.

 

 

서문에서는 저자가 이 책에 대해 번역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고백한다. 마키아벨리가 직접 쓴 군주론은 라틴어로 된 것이며, 이 군주론을 대중들이 많이 읽게 된 계기는 토스카나어(피렌체어)로 쓰인 판본 이후부터였다.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읽히는 군주론은 원서가 아니라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번역자는 라틴어 판본을 참조하면서 토스카나어로 된 군주론을 기저로 번역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능하면 문맥과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한국적인 사고에 더욱 적합할 수 있는 윤문(글을 다듬다) 번역을 진행하였다. 즉 현대적으로 해석 또는 연계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다가오게 하였다. 따라서 출판사 아르테의 새로운 고전 시리즈인 클래식 아고라시리즈로 나온 군주론은 원본에 가장 충실한 번역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군주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통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를 낳은 이 사상은, 종교와 윤리를 중시하던 유럽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당연히 논란이 일어났고 교황청은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가 앞에서는 비난하면서도 뒤로는 몰래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하니 실로 이 비밀스러운 내용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군주론은 단지 잔혹한 통치를 옹호하려고 쓴 책이 아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서로 싸웠고, 강대국의 침략에 번번이 시달렸다. 그러기에 군주론에서는 강력한 군주가 등장해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외세의 지배에서 해방하기를 바라는 마키아벨리의 열망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금기를 깨고 현실정치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정치학의 토대를 다진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당시 유럽의 정세와 사회상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고, 군주(리더)가 갖추어야 할 살아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우리가 얻어야 하는 지혜나 지식은 사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전용 지식으로 날것의 지식이 사실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선 리더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책으로 읽혀졌다. 사실 독자 또한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위치에서 어떤 요긴한 지식을 몰래 배우기 위해서 이 책을 들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번역되어져서 탄로가 다 난 것은 아닌지? 그러나 독자 또한 그렇지만 완독해서 본 사람은 내 주변에서는 드물다. 역자 말대로 번역의 난삽함 때문이다.

 

 

사실 어떤 부분은 어렵게 읽혀진다. 그래서일까? 이 책 말미에는 '해설'을 넣어서 보충 설명을 해주고 있다. 물론 이 부분도 여러 번 읽어야만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군주나 리더의 입장에서 읽으면 무척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고 혜안(慧眼)을 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 분이 말하듯 개인의 입장에서 읽으면 처세술이 되고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큰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그런 능력이 필요할 때만 참고할 내용이 아니라 개인, 가정뿐 아니라 작은 규모의 모임이나 단체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리더들도 얼마든지 인용 가능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많은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군주론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으면 군주가 되라'고 한다. 그것은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론 필요에 따라 선하지 않는 법을 배워 그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 즉 군주는 언제나 선을 행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자기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다섯 가지 성품들인 '신의, 자비심, 인간적임, 정직성, 신앙심'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건한 신앙심이 깊은 군주처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나 이 모든 성품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인간이 가진 상황이란 그러한 성품들을 전적으로 발휘하는 미덕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중한 군주라면 권력 기반을 파괴할 정도의 악덕으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피해야 하며, 정치적으로도 파멸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의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덕을 피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군주의 업무를 지속해야 합니다. 즉 악덕 없이 국가권력 보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악덕으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조차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일견 '비르투'(virtu, 행운, 운명, )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것이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기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 p.122-123]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필요악에 대한 부분을 많이 언급한다. 즉 되도록 올바른 행동과 태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나쁜 행동과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가 보는 관점이다. p.139

 

 

조직의 리더를 해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존재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아 조직이 와해되고, 지도자에 대해 음모를 통해 반감정을 드러나도록 하는 경우를 본다. 그때 리더는 이런 자를 향해 때론 유연한 것처럼 하면서 그런 자를 내쫒아내며, 궁지에 몰리도록 하여 스스로가 자멸하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한니발이 그 하나의 예이다. 한니발에게는 무자비한 잔인함과 지도력이 있었다. 하지만 군주가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거나 대군에게 명령을 내릴때 잔인하다는 평판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군사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무자비하지 않으면 단합하여 행동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니발에 대한 것 중 주목할 만한 일은 그가 여러 나라 출신의 군인들로 구성된 대군을 통솔하면서 멀리 낯선 땅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전황이 유리하든 불리하든 자기들끼리의 불화(분란)나 지도자에 대한 어떤 분란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p.132-133

 

 

이것은 그의 무자비한 잔혹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무자비한 잔혹함은 그의 훌륭한 여러 자질과 함께 한니발을 자신의 군대로부터 항상 존경받는, 대단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 만약 한니발이 이처럼 잔인하지 않았다면 그의 다른 자질은 그를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모자라는 작가들은 그의 이런 성취를 찬양하면서도 그 주된 이유를 비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칭송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필요할 때는 신의를 저버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론 악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맞는 힘에 의한 짐승들의 방법이 유효하다. 따라서 군주는 지극이 인간적이며 법에 의하여 다스려야 하지만 때론 힘에 의지한 짐승의 방법을 가져오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거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배웠고,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이론과 현실이 사실 많이 다르며, 제대로 된 기강이 잡힌 나라가 되고, 외세의 침략에 굳건히 서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악덕이라고 부르는 술수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대놓고 말하면 비정의로 보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후에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 가운데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힘의 논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국민이 우둔함으로 악을 칭송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민중은 때론 군중심리로 우둔함 속에 머문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사악함을 모르고 보여지는 행동과 감추인 악의 포장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은 그를 추종한다. 이때 군주가 취해야 할 행동은 빨리 그 존재를 제거하는 것이다. 방법이 비록 합당하지 못한 방법이라도 정말 비열한 존재를 제거해 나갈 때 국민은 이후 배가 부르고, 나라가 안정되면 오히려 그 군주를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p.140

 

 

그래서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이든지, 지식인의 손에도 들려지지 말아야 할 책이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리더로서 손자병법을 통달했다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정직과 올바름과 온유와 경건심과 인간적인 것이 더 중요한 삶의 길일 것이다. 참고는 하되 상대를 이용하여 내 목적을 이루는 것에는 쓰지 말자!

 

 

그럼에도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실로 군주론은 인간 본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원전이라고 알려진 이 책은 실제 현실 정치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나 도덕의 세계로부터 독립한 정치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 마키아벨리가 근대정치학의 기초를 정립했다고 말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 거의 모든 피렌체인이 싫어했던 보르자를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숭상하고 찬양했던 동기는 단순하다. 보르자가 모세나, 로물루스 또는 고대에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이거나 특별히 군사적 지략이나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군주로서 필요하고 갖추어야 할 실제적인 덕목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보르자는 위엄이나 술수 또는 비도덕적 행위로 반대 세력과 적을 제압하는 능력과 기술이 뛰어났으며, 그것은 곧 비르투의 덕목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했다. 또한 보르자가 용병이나 외국군에 의지하지 않고 국민군을 조성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근대 시민들의 충성과 민주적 자질을 토대로 근대국가의 주요 기반이었던 국민군 제도를 창출한 보르자에게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신군주의 전형을 마키아벨리는 보았다. 특히 보르자의 아버지는 교황이었기에, 아버지를 충분히 활용해 자신에게 최대하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보르자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결국 자신이 소유한 모든 여건과 재능 및 수단을 적절하게 이용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 마키아벨리는 주목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보르자로부터 비르투를 최대한 적용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포르투나(운명)를 극복한 전형적인 새로운 군주의 모습을 찾아내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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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부자 멘토와 꼬마 제자
조지 S. 클레이슨 지음 / 퍼스트펭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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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을 버는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다. 즉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금전적으로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돈을 벌고, 지키고, 더 많이 쌓는 길'로 안내하는 지침서다. 솔깃하다. 그리고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즉 이 가르침대로 해서 독자 또한 '부'를 얻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은 이런 가르침을 우리는 살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오마하의 신탁'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 중 한 명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의 탁월한 투자 실적과 부의 축적은 그를 금융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었는데 그런데 그의 이런 능력은 어릴 때 부터 시작되었다. 사업과 정치를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어릴때부터 할아버지슈퍼에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많이 사는지 관심있게 보며 물건을 팔고 이윤을 남기기도 하면서 팝콘을 팔기도 하고 여러 일을 하면서 경험하였다. 버핏은 10살 때 주식 시장 투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투자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였다니 실로 될 인물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뜻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당장에 내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 제일 빠르다는 말처럼 나 또한 이 책이 가르친대로 실천하고 싶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 책에 기록된 원칙들은 '중력의 법칙'처럼 보편적인 진리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너무 쉬워서 의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르쳐 준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길이다. 사람들이 '부'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는 것은 욕심과 나태함과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임을 여실히 가르쳐 준다.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며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고전, ‘바빌론 최고의 부자(The richest man in Babylon)’는 기업가이자 문학가, 조지 S. 클레이튼이 실제로 발견된 고대 점토판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책으로, 고대 도시 바빌론을 배경으로 ‘돈을 모으고, 지키고, 불리는 지혜’를 알려주는 보석 같은 우화들을 담고 있다. "

왜 바벨론이냐 할 때 그것은 바빌론이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의 가치를 이해했고, 돈을 벌고 지키는 법을 알았으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지혜로운 원칙을 실천했다. 그러면에서 오늘날의 이스라엘도 연구할 필요가 있고 배울 필요가 있겠다.

1929년은 미국이 대공황을 겪을 때이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 절실했다. 그런데 당시 수백만 가정에 가장 본질적인 경제적 조언과 희망을 전해주는 이 작품은 “절대 변하지 않는 부의 원리를 담아낸 위대한 고전”이란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려 40여 개 나라에서 1000종류가 넘는 판본으로 출간되었고, 수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이 책은 꼭 필독서처럼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읽기가 쉽다. 돈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아지는 청소년들도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 책을 구성했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고대의 바빌론이 어떤 역사를 가진 도시였는지 다루어 주어 책의 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려 주었다. 이어 '돈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사는 삶', '큰 차이를 만드는 습과', '돈을 다루는 법칙', '부자의 그릇과 돈 주머니', '행운의 법칙', '왜 돈보다 지혜가 필요한 것인가?', '돈에 대한 책임감과 빚에 대한 교훈' 등을 차례로 짚어 준다.

바벨론은 척박한 환경이지만 천연자원을 이용해 매혹적인 도시로 변모했고 1,500년간 세계 최대 도시로 번영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인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였다. 제국의 수도일 때는 물론, 수도가 아닐 때에도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도시였고, 로마에 앞선 최초의 국제 도시였다. 이 도시를 지탱한 자원은 모두 인간이 개발한 것으로, 바벨론의 모든 부유함은 사람이 이뤄낸 성과였다. 그들은 똑똑한 금융가이자 상인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화폐와 약속 어음, 재산에 대한 서면 소유권을 최초로 발명해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해나갔다. 그런 나라에 가난한 두 청년이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바빌론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아카드'를 찾아가며 점점 부에 대한 비빌을 배워간다.

우리도 부자들처럼 여유롭게 풍요를 누리고 살 방법이 없는 걸까?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하지만 항상 제자리인 지금의 모습처럼 살기는 싫어!

아카드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요?

아카드를 찾아 온 그들에게 아카드는 먼저 이런 말을 한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자네들이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다면, 그건 아직까지 부를 쌓는 법칙을 몰랐거나 그 법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의 비밀을 알아 부자가 된 비밀을 제공한다. 먼저 그는 "어떻게 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방법을 안 후에는 반드시 실천하기로 결심을 하였고 그리고 가장 큰 비밀은 부의 멘토인 스승 알가미쉬를 통한 부의 지혜를 듣고 그대로 실천했다."고 말해준다.

원칙: 내가 번 돈의 일부는 반드시 저축한다.

스승이 가르친 부의 비밀은 너무나 뻔하며 흥미를 읽는 '저축'이었다. "부는 마치 나무와 같아서 작은 씨앗에서 자라나는 법이야."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번 돈에서 최소한 10분의 1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것도 그냥 오는 기회가 없으니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스승이 자신에게 물려준 유산은 운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부자되기 위한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음을 두 친구에게 언급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로 권면 했는데 "수년 동안 물고기의 습성을 연구하고 바람의 방향에 맞춰 그물을 던지는 어부에게 그저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기회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절대 오지 않는 오만한 여신과 같아" P. 71

이 말은 평소 듣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에 따라 준비하지 않고 그저 요행을 바라며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 특히 아카드는 의지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낙타나 소가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끈다고 해서 그들의 의지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나? 의지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끝까지 해내겠다는 결의라고 할 수 있어. 나는 스스로 정한 목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성취한다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겠나?" P. 72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아카드가 말하듯 꾸준함과 실천이 있었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감나무에 올라가서 그 감을 따라는 조언처럼 부자들이 행한 행동을 따라해보면 우리 또한 결국에는 부를 얻지는 않을까? 서민 갑부라는 방송에서도 보면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연구와 노력과 꾸준함이 있었다. 그랬더니 결국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그 가게를 찾게 되는 것이다.

부를 얻기 위한 일곱 가지 비결과 황금의 다섯 가지 법칙

아카드는 얇은 지갑을 채울 일곱가지 비결을 말해준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부를 얻게 하는 황금의 다섯 가지 법칙이 기록되어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그 중에 황금의 다섯 가지 법칙을 말해 본다.

1. 황금은 수입의 10분의 1 이상을 꾸준히 저축하는 사람에게 찾아 온다.

2. 황금은 현명한 주인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계속해서 늘어난다.

3. 현명한 사람의 조언에 따라 신중하게 투자한다.

4.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권하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5.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거나 헛된 욕망을 좇지 말라.

지금 대단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사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돈이 따라 오고 결국 돈은 그 자신의 충실한 노예로 일하게 된다고 말해준다. 여기서 돈이 노예가 되어야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즉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축했던 돈을 신중하게 투자하여 그 돈이 돈을 불러 오도록 하라는 거다.

최근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요양원 두 개를 운영하는데 이번에는 딸과 함께 요양원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세탁소를 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 보았더니 오메 돈이 돈을 벌어오고 있었다. 어떤 사업도 6개월 정도가 지날 때 빛이 보이는데 이 스팀 세탁소는 벌써부터 2개월도 안 되어 차량 1대를 더 사서 세탁물을 나르게 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이 있고, 모아둔 돈을 지혜롭게 투자하여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본다. 무엇보다 이분은 신중하며 함부로 투자하지 않고, 헛된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에서 가르쳐주는 다 아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부를 얻기 위한 일곱 가지 비결 가운데 하나를 꼭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나가는 돈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욕구와 필수 비용을 절대 혼동하지 말고 확실한 가치가 있는 곳에 지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버는 한도 내에서 지출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바빌론의 상인 '샤루 나다'가 들려주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통해 돈에 대한 생각과 철학, 일을 대하는 태도가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즉 열심히 일을 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며, 일은 노예나 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돈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가르쳐주는 표본과 같은 책이다. 정말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돈에 밝은’ 현명한 사람이 되도록 길을 안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자들의 성공담을 비교하니 역시나 부자들은 이 비밀을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결국 돈을 얻는 비결은 "돈을 벌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비결과 황금의 다섯 가지 법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머리 속에서만 맴돌게 말고 지금 '금화 다섯냥을 갖고 싶다'고 목표를 정하면서 책에서 가르쳐 준대로 하면 우리 또한 건강한 부를 얻는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느낀 부분은 돈이란 결코 나쁜 것이 아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 같은 자산이며, 돈을 묵혀두지 말고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투자에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워렌버핏이 말했다. 투자에 성공하는 원칙은 첫째 “돈을 잃지 말라”, 둘째 “첫째 원칙을 잃지 말라” 셋째 빚을 지지 말라 즉,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내에서만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빚을 지지 않고 투자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올인 했다가 망한자들을 많이 봤다! ㅠ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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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 - 마음 근육을 키우는 하루 10분 인문 독서! 카페에서 만난
리소정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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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양의 심오한 철학 사상을 이해하기 쉬운 다양한 예화를 통해 풀이하여 보여주는 교양서다.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과 다르게 한국인의 정서에 더 맞는 철학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양 철학은 두뇌로부터 나온 반면에 동양철학은 가슴과 경험으로 부터 나온 책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 비중은 철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일단 손에 든 책은 제목에서부터 부담 없이 집어 들고 읽어도 되는 책이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첫 쳅터를 읽어가자 역시나 술술 읽히는 책이다. 무엇보나 이 책이 좋은 것이 쉽게 읽히면서 내면의 성찰을 줄 뿐 아니라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철학적이라는 것이 꼭 두뇌에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난해할 필요가 없다. 진리는 단순하며 깊다. GE의 전 CEO 잭 웰치가 말하길 “자신 있는 사람만이 심플해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진리는 듣는 즉시 이해되고, 또한 심오해야 한다.

이와 같이 『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은 이해하기 쉬운 동양철학에 관한 편안한 글들이 나열되어 있어 실제 제목 그대로 시끄러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읽어도 무난하게 읽힌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무난하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 깊은 철학적 얘기들이 이 책을 장식하고 있다.

본 도서는 동양철학을 심도있게 다루고자 '고대', 중세' 그리고 '근세에 이르는 내용을 정리하여 알려준다. 어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유가의 가르침, 평화와 평등을 사랑한 묵가의 이야기, 자연으로 회귀를 주장하는 도가, 중국을 통일한 사상인 법가 등 다양한 동양철학의 고대 사상을 담았다. 또 중세의 철학적 사상으로 옛것을 복원하라는 훈고학, 노장사상과 결합한 불교, 다양한 사상의 집합체인 도교, 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성리학 등 현대적 철학의 기반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근세의 주요 철학인 고증학, 공양학, 철학에 대한 흥미로운 풀이와 설명을 이어가며 책 읽는 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책을 만든 의도답게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듯 부담 없이 읽도록 한 저자의 접근법이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분명 통(通)하리라 생각된다.

첫 번째 1강은 리더의 자질과 바탕이 되는 '효(孝)'와 '윤리' 중심으로 책을 이어간다. P. 9에 나오는 얘기다.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자가 제자인 자하와 더불어 시경의 한 편을 논하던 중에 한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바탕이 있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뜻으로 〈논어〉 ‘팔일’ 편에 나온다. 본래 ‘소(素)’란 바탕을 말하는 것이고, 그 바탕이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순수한 본래이다. 그림은 비단에 그리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그 바탕이 되는 캔버스가 있어야 하고 그 캔버스는 흰색이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그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바탕이 있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것을 비유한 대목이다. 이에 자하는 외형으로서의 예는 그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있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어버이는 모든 생명의 근본이니 몸과 마음을 닦고 바로 세우는 ‘수신’의 첫걸음은 ‘효’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정신적 자질을 결정하는 요체 중의 요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효의 처음과 끝은 무엇인가?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처럼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를 잘 관리하며 지키는 것도 중요한 효임을 말해준다. 나도 부모에게 자식이고, 자식을 둔 입장에서 자식이 아프거나 다치는 것만큼 마음이 아픈 것이 없다.

두번째 2강은 세상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를 다루는데 노력과 발전이라는 두 쳅터로 나눠 글을 이어 간다. 사람에게 있어 노력 없이 되는 것이 없건만 노력을 등외시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태백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이태백은 산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내 공부도 어지간히 되었겠지.” 하며, 원래 술을 좋아하는 태백은 주막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평상에 앉아 술을 한 사발 마시는데 옆에서 어떤 할머니가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상황이 너무 궁금한 이태백은 그 일이 무언가 살펴보는 중에 놀랐다. 할머니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쇠로 만든 절굿공이(도끼라고도 함: 마부위침(磨斧爲針)를 숫돌에 가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절굿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하네.”

“아니 쇠로 만든 절굿공이가 어떻게 바늘이 된단 말입니까?”

“언젠가는 바늘이 될 날이 있겠지.”

이 소리를 들은 이태백은 강하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10년으로는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내려오던 산길을 다시 올라가 마침내 학문을 완성했다고 한다. 〈당서(唐書)〉에 전하는 얘기다.

또 하나의 문장이 마음에 새겨진다. P. 9에 나오는 문장이다.

貞士無心徼福(정사무심요복) : 곧은 선비는 복을 구하는 마음이 없는지라

天卽就無心處牖其衷(천즉취무심처유기충) : 하늘은 곧 마음 없는 곳을 찾아가 복의 문을 열어주고,

憸人著意避禍(섬인저의피화) : 간사한 사람은 재앙을 피하려고 애쓰는지라

天卽就著意中奪其魄(천즉취저의중탈기백) : 하늘은 곧 그 애쓰는 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넋을 빼앗는다.

可見天之機權最神(가견천지기권최신) : 이 하늘의 권능이 얼마나 신묘한가.

人之智巧何益(인지지교하익) : 인간의 잔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말은 하늘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성심을 다하다 보면 저절로 하늘이 도울 거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채근담에서 뽑은 글이다. 흔히 알고 있듯 지성이면 감천이니 진인사대천명하고 경천승복하라는 말이다. 서양만 아니라 동양 또한 하늘을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하늘을 벗삼아 자신을 돌아보았다.

3강은 수련과 성찰을 통한 자기 계발에 관한 쳅터로서 인재와 둔재, 학문과 독서, 성찰에 대해 다룬다. 학문과 독서라는 부분의 첫 장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군자지학 비위통야

君子之學 非爲通也

위궁이불곤 우이의불쇠야

爲窮而不困 憂而意不衰也

지화복종시이심불혹야

知禍福終始而心不惑也

이 뜻은 "군자가 학문을 하는 목적은 영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곤혹스러워하지 않고 우환을 겪으면서도 의지가 꺾이지 않으매 화와 복의 시작과 끝을 알아 마음이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학문과 독서는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경쟁에서 승리하여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앉아 성공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에서 말하기를 "예전의 학자는 자기를 위하여 학문을 하더니 요즘의 학자는 남을 위해서 학문을 하는구나"하며 질책했다.

한 번은 퇴계 이황이 공부에 대하여 논한 글을 보고 무릎을 친 일이 있다. 그 전문을 실어보면...

공부란 그저 천자문을 줄줄 외우고, 적절한 때에 논어, 맹자를 인용해 잘났음을 과시하거나, 과거에 급제해 평생을 고생 없이 사는,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대로 평생을 살아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사실, 그것이 바로 선생이 태극도설을 통해 배순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다. (p. 44~45)

"아침저녁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고, 경전을 제대로 해석해낸다 해서 과연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공부를 하고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 사랑의 마음, 공부한 자의 마음일세. (p.142)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이런 동양인의 철학과 문장을 보면 심오한 삶의 진리를 너무나 명쾌하면서도 쉽게, 진리의 관점에서 말해준다. 어찌 서양에서 활개를 펼쳤던 신(GOD)이 서양 역사에서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나? 동양의 철학자들에게도 신(GOD)은 영감을 주고, 삶의 진수를 맛보게 하였다.

읽기 편하고, 깊이가 있고, 스토리가 재밌고,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는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나 일반인들에게 모두 삶에 대한 통찰과 분별력과 지혜를 주고 있다. 동양 고전에서 뽑아낸 만고불변 선각의 가르침이 이 책 안에 있으니 여름 휴가에 함께 동행 해보면 어떨까? 마음 근육이 벌써 헬창들 못지 않게 든든해 지는 느낌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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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신 - 신이 없다면 우린 행복할까?
앤서니 T. 크론먼 지음, 이재학 옮김 / 돌밭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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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우리에게 내세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모든 가치관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레프 톨스토이는 "태양빛에 네 눈이 먼다 해도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마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네 이성이 혼란을 일으키거나 사라지더라도 그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누군가가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는 신에 의해서 완성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 개인의 신앙적 생각이며 견해다.

 

 

저자의 부모는 신에 대해서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다. 그 부모들은 신은 잘 속는 바보들이나 좋아할 만한 동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종교적 신앙인들을 무지하다고 본다. 즉 마음이 약하고 관용할 줄 모르며, 진실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나 종교를 믿는다고 저자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종교의 위험성을 경고 했을 뿐 아니라 가족이 주고 받는 대화의 주제에서 아예 신을 빼버렸다. 그런데 이들의 부모는 아버지가 유대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면 뭐하는가? 그것은 과거의 사건이며, 그저 출생에 의해 주어진 표면적인 겉옷과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자 아버지는 크리스마스를 즐겼고 트리를 장식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셨다. 물론 크리스마스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할 일은 없었다. 단지 예수는 매우 온화한 사람이며 우연히 주변 상황 때문에 구유에서 탄생했고, 오직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어머니는 종교를 경멸한 정도였다. 저자와 그 문제를 놓고 대결했는데 결국 어머니의 승리였다. 어린 시절에 말이다. 이렇게 그 부모는 저자를 종교에서, 신에서 떼어 놓으려고 애썼다. 그들 또한 어린 시절에 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았기에 그 영향력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선제 공격을 하며 아예 근처도 가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 자식이 내 맘대로 되는가?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하고 싶고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아이들의 본성이다. 그래서 부모가 그렇게 싫어하는 종교를 왜 사람들은 믿고 따르는지 궁금해 하면서 점점 저자는 기존의 종교인의 행태는 아니지만 제 3의 신을 끌여다 놓게 된다. p. 18

 

 

이 책은 이런 과정들에 대한 저자가 발견해낸 제 3의 신을 찾아 나서면서 얻게 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에는 스피노자가 발견한 신에 대한 이해와 상이한 점이 있다. 즉 저자는 수 십 년간 지속해온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관과 인생관을 정리했는데 그는 정의 내리기를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출발점에서 제 3의 신을 끌어 온다. 다시 말해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측면에서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지점에서 동물과 달라지는데 그런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곧 신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원성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에도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어정쩡함을 인간의 존재 구속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깊은 절망과 삶의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의미다.

 

 

결국 기존의 신에 대한 생각들을 부정하며 자기 철학화를 이루어 나가는 개인적 신념이 제 3의 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 쪽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상대에 대한 신 관념을 존중하기도 하고, 우습게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면에서 기존 전통이 가진 신 이해 방식에 문제가 있었지만 성경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그 신에 대한 주된 개념을 무너뜨려 가면서 지식 추구의 논리적 신 개념은 많은 문제를 초래하지 않을까?

 

 

신약성경에 보면 바울서신중에서 골로새서 2:8절 성경 구절이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기존의 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잘못 되었다. 그러므로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실수를 한다면 결국 그가 가진 철학적이며,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신 이해 방식은 결코 성경에서 원하는 신 이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물론 저자의 신 이해 방식은 인본주의 적인 모습으로 인간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그런데 인간이 신이 원하는 생각을 버리고 홀로 선악과를 먹고 자아가 도취되듯 내가 기준이 되는 선과 악은 결코 옳은 방향으로 가지를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지나간 역사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다. 물론 저자는 탈종교화되고 무신론화되면서 종교 자체를 거부하는 가운데 몰가치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제 3의 신을 창출해 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영성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기존 종교인들의 입장에선 양파 까먹기 대회를 하는 거와 같다고 말한다. 즉 진리()라는 양파 껍질을 까면서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양파를 끝까지 까보지만 결국 양파 끝에 얻는 것은 양파 껍질 뿐이다. 적어도 사과에는 씨라도 있지만 저자가 추구하는 스피노자식 신 이해는 관념적인 신 이해일 뿐이지 않나 생각된다. 저자는 삶의 경이 앞에 부모가 거부한 신을 끄집에 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가상하나, 주류 종교인 아브라함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신에 대한 이해는 톨스토이가 보았던 신 이해 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종교는 "인격적 신"이라는 믿음에 토대를 두지 않는다. 그는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그 신은 존재하는 세계의 질서 있는 조화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 신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p. 245

 

그러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 그 자체다.

더 정확히는 세계의 무한한 힘과 지성이다.

이 신은 칸트의 신과 달리 인간적 조건의 깊은

절망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준다는

약속을 전혀 하지 않는다. p. 240

 

<3의 신>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신을 기대를 하며 보았다. 왜냐하면 신()을 요청하는 듯한 부제목 때문이었다. "이 없다면 우린 행복할까?"라는 말에 이 저자가 말하듯 그 부모가 간 길을 걸어보니 무언가 허전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일찍이 카뮈와 사르트르에 느꼈던 충성심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특히 인격적 신을 거부하는 이들이 걸어 가는 방식에는 실존주의를 탐색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도달한 저자의 인생관에는 신이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말았다. 물론 보다 평범한 종교인들이 쉽게 인정하거나 수용할 만한 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신을 발견한 것이 아닌 그저 자기가 믿는 바를 우격다짐으로 지식인을 위주로 끄집어 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저자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그것을 억지로 설명하다보니 약간은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다. 진리()에 대한 이해는 지식의 나열이 아닌 지식 너머의 일이다. 즉 신비를 넘은 신비 속에 거하는 그 무엇을 찾아 실제 그 신비를 만든 분과의 만남이다.

 

 

독자는 아인슈타인이 거부한 인격적 신을 받아들이며 산다. 그가 스피노자를 말한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고상하지 않는데 즉 존재하는 세계의 질서 있는 조화가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다. 신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말과 지식으로 신을 찾는 자에게는 모세나 바울이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 신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이 명확히 이해가 될 거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저자가 신을 찾는 길을 나섰다는 것이 이 책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보았다. 무신론자가 되기에는 세상은 경이(驚異) 그 자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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