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철학자들 - 자연에서 배운 12가지 인생 수업
신동만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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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보면 개미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를 깨쳐라.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이나 감독관이 없어도 여름 동안 양식을 장만하고 추수철에 먹이를 모아들인다. 그런데 너 게으른 자야, 언제까지 잠만 자겠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겠느냐? ...그러면 가난이 부랑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

개미를 통해 인간 삶의 게으름을 책망하고 부지런함을 칭송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내용들로 가득찬 책이다. 저자는 28년 동안 자연 다큐멘터리 PD이자 동물생태학 박사로 살아오며 그동안 뷰파인더로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동식물의 모습을 통해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12가지 인생의 진리를 찾은 기록물이다. 자연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과 동거동락하며, 스승으로서 무수한 세월을 함께해 왔다. 노자(기원전 571년)라는 자는 그 스승(자연)을 통해 진리를 배운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연에서 진리를 배워 가르침을 전해주는데 대가로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을 남기며 물에서 얻은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저자는 KBS에서 자연·환경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늘 자연에서 인생을 배워왔다. 온갖 동·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인생 수업을 저절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 의리와 사랑으로 연결된 짝짓기와 양육, 공생의 관계 등을 통해 저자는 필요한 지혜를 무수히 배우고 캐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저자의 삶에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이 되었고,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생명체들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준비하고 인내하고 적응하는 '철학자'들이다. 예를 들면 수리부엉이는 겨울에 짝짓기를 하기 위해 여름부터 철저하게 ‘준비’한다. 산수국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헛꽃을 피우고 토질에 따라 꽃 색을 바꾸며 사는 곳에 ‘적응’한다. 매미 약충은 수년 동안 땅속에서 있다가 특정 시기를 기다려 세상 밖으로나온다. 즉 장마가 끝날 무렵 ‘기다림’의 긴 시간 끝에 날개를 펴기 위해 며칠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온다. 여기에 관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데 한 달간 이어진 비는 땅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매미 약충이 올라 오기에 제격의 상태가 된다. 이 무렵에 여의도 벚나무 아래를 유심히 들러보면 숭숭 난 구슬만한 구멍을 볼 수 있는데 매미가 세상으로 나온 흔적이다. 만일 장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린 매미 소리를 못 듣고 살뻔 했다. 왜냐하면 장마가 길어지면 매미가 날개를 말리는데 어려움을겪고,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을 뚫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야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리고 쇠제비갈매기는 큰비를 맞으면서도 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끈기’ 있게 부둥켜 앉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내친김에 하나 더 언급하면 언뜻 보기에 괭이갈매기의 집단 번식지는 무질서하고 소란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는 괭이갈매기만의 아름다운 질서가 숨어 있는데, 바다라는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선택하며 산다. 괭이갈매기는 철새다. 그래서 이동하면서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번식지에서 매번 그 많은 갈매기 가운데 새로운 짝이 아닌 그전에 만났던 짝을 소리와 냄새로 기억해 두었다가 짝짓기를 한다. 텃새가 아닌 철새로 번식하면서도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진정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배운다.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그러나 매년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면서도 한번 맺은 짝의 관계를 유지하는 괭이갈매기를 보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된다.(수리부엉이 또한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같이 지내는 조류다. 게다가 수리부엉이는 1년 내내 교미를 한다. p.248-251)


이처럼 야생의 동식물을 때로는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때로는 망원경처럼 멀리 조망하면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이토록 놀라운 인간의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 책은 단연 새로운 시도의 철학책이다. 야생의 세계를 보면서 저자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에게도 의(털) · 식(먹이) · 주(둥지)의 문제는 늘 존재한다.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끼리 다투기도 하고 이웃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사람 역시 다투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배척하고,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유독 인간은 너무 많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저자는 독자에게 질문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식물은 저마다 생존과 공존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구난방처럼 살지 않고 철저히 다음을 준비하며 내일을 맞이한다. 즉 동물은 여름부터 겨울을 준비한다. 또한 겨울에는 봄을 준비하고 봄에는 겨울을 준비한다. 정교한 생체시계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야생에서 도태되고 만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야생의 생명체는 그렇게 한 계절, 두 계절을 앞서서 준비하며 살아가는데 인간 세상에 보면 수리부엉이 보다 못한 매미 보다 못한, 쇠제비갈매기 보다 못한 자가 기생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인 나에게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이끌었고, 그 안에 무수한 삶의 지혜가 숨겨진 것을 깨닫게 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겸허히 엎드리며 배워야 한다. 오만함은 결국 종말을 앞당길 것이다.



 


스승처럼 다가온 자연에서 배운 12가지 인생 수업은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인간의 발전이라는 질주를 막는데 필요한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진정 야생 그 자체가 철학적이며, 철학자들이다. 특히 자연은 서두르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것도 욕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툭하고 정의 내려주는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진리를 내비치는 책이다. 이제 이 책을 손에 들고 자연 앞에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자!!

이 책의 한 문장

수리부엉이는 밤이라는 조건 아래서 소리 없는 사냥을 구현하기 위해 눈, 귀, 깃털 등 모든 신체 구조를 바꾸었다. 이렇게 환경에 적응했기에 밤의 세계에서 제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각자의 생활 조건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적응은 생존의 제일 조건이다.

P. 50_<2장 적응: 처음은 낯설어도 이 또한 익숙해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려면 마음속에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새가 둥지에 다시 돌아오는 건 품어야 하는 알이나 새끼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 철새가 어김없이 매년 한반도로 날아오는 건 후대를 잇는다는 위대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다. 부모 새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잠시 둥지를 비울 때도 다시 둥지로 돌아오는 걸 잊지 않는다. 두꺼운 알껍데기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의 생명은 어미 새의 품에서 온기를 받아야 발달을 이어갈 수 있다. 어린 새끼들도 부모 새가 벌레를 구하러 나가서 금방 돌아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기다린다. 본능적으로 부모 새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매일 이어지는 기다림을 통해 만남과 성장이 이루어진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다루고자 하는 동물을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제작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기다림에는 언젠가 나타나리라는 믿음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기다림에 지치면 만남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몰려올 때가 있다. 이 위기의 순간에 기다림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간절함이다. 간절함이 있어야 포기하고 싶은 온갖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또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강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상대를 눈앞에 데려다 준다. p.86-87 _ <3장 기다림: 서두른다고 꽃이 피지 않는다>

인간만 관계 맺음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생명은 탄생 순간부터 크고 작은 존재와의 관계 속에 있다. 생명체 자체가 다양한 세포들의 연합체로 이루어져 있고 바이러스, 균 등 다양한 미생물과 공생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 생명은 다른 생명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 들어가면 다양한 생명체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나무뿌리는 버섯 균사체에 덮여 있다. 나무는 잎으로 광합성을 해서 만든 탄소를 균사체에 나눠 주고, 균사체는 땅속의 영양물질, 즉 질소, 인, 기타 영양물질 등을 모아 나무에 전달한다. 이외에도 개미와 진딧물, 흰동가리와 말미잘, 벌과 꽃 등 수 많은 종이 서로 협력관계를 맺고 산다. p.189-192_<8장 관계: 생명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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