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실리콘밸리를 다룬 최초의 역사서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부도시 팔로알토(Palo Alto)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반항적 히피문화가 남아 있는 팔로알토에 첨단 기술과 대규모 자금이 더해져 정신적·물질적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실리콘밸리의 심장부가 됐다니 이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인구는 7만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1인당 소득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카타르·마카오·룩셈부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팔로알토가 사실상 ‘세계의 중심’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팔로알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 말콤 해리스는 신간 ‘팔로알토, 자본주의 그림자’를 통해 겉으론 화려해 보이는 이곳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에 도취되는 경우가 많다. 만리장성의 웅장함을 보며 놀라워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백성들의 피와 땀, 희생, 억압, 착취, 고통이 만리장성을 감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실리콘밸리가 고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도전과 혁신뿐만이 아니라 탐욕과 착취가 더 두텁게 깔렸음을 저자는 적나라하게 서술해 준다. 이곳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땅과 자유를 빼앗긴 인디언의 묘지 위에 구슬프게 지어진 자본주의 허상이 자리잡고 있다.
책에 의하면 동부에 비해 발전이 미미했던 이곳이 어떻게 경제전쟁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는지, 어떻게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고도 재앙적인 21세기로 이끌었는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속하게 발달한 기술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와 자본과 연결되며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는지, 휴렛팩커드(HP), 제너럴 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전 세계를 흔드는 첨단기술기업들이 어떻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례대로 나타났는지, 더 나아가 미국 자본주의의 욕망 뒤에 가려진 소문자들의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렇다. 이곳 팔로알토는 교육률도 높고 실리콘밸리 덕분에 수입도 괜찮은 지역이지만, 반면에 청소년 자살률은 미국 평균보다 높은 지역이다. 자살이 시작된 건 2002년이었다. 그해, 릴런드 스탠퍼드가 팔로알토를 세울 때 기준점이 되었던 칼트레일 선로에 한 신입생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후 자살자는 늘어 났고, 집단자살 자들도 생겨났다. 겉보기엔 완벽하지만 청소년 자살률이 평균보다 3배나 높다고 하니 “팔로알토는 거품”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그냥 들리지 않는다. 한 기자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실리콘밸리가 전처럼 ‘포스트모던 엘도라도(황금도시)’로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p. 6-7
저자는 이 지역의 150년 역사를 고찰하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훤히 드러내 준다. 물질 문명 사회 속에서 가장 추구하는 가치는 단연 화려함과 높은 기술력과 경제 성장으로 인한 혜택이다. 실리콘밸리는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계속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문명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팔로알토 지역의 청소년 자살률을 보면 인간의 존엄성은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즉 기술 혁신으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은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성장 이면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용은 지불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책에선 실리콘밸리 거대 기술 기업들의 혁신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경영 방식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마존의 경우 기술 자동화를 토대로 생산성을 높이고 다른 기업보다 더 높은 임금을 제공했으며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안겨줬다고 또한 평가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는 오너가 투자 수익을 나눠준 결과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이 이룬 추가 생산 수익이 주주에게 분배된 것이다. 작업자의 일상과 근무태도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노동자가 혹사당하고 있으며 아마존 물류창고의 이직률은 150%에 달해 8개월마다 전체 인력을 교체해야만 한다고 비판한다. 즉 물류창고와 배송차량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불쾌한 특징은 방광염이다. 두 종류의 근로자는 업무가 매우 다르지만 둘 다 아마존의 근로자 효율성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빡빡하게 설계되어 있어 직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자주 그만두기 때문에 아마존은 반자동화된 채용 및 해고 시스템을 사용하여 새로운 노동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 p.478-488
실로 팔로알토는 거품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팔로알토에서 철수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닉 에스테스란 자가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 앞에 결론적으로 말했다. "지구가 살려면 자본주의가 죽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유물론적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과연 자본주의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변형되어진 형태로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괴물인가?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에 따른 극단적인 부의 집중과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공정한 부의 재분배, 노동 환경 개선, 환경 보호, 금융 규제, 소비문화 변화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단순히 폐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더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이를 위해 정부, 기업, 개인이 협력하여 새로운 경제 모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끊임없이 말이다!
거대한 자본주의 중심에 서 있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이렇게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를 표한다. 실로 자본주의 역사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할 때 훌륭한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줄 책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