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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 작가의 본격소설을 오랜만에 읽을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그 이지만, 그 동안의 작품들이 주로 역사소설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젊은 시절의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나로서는 다시 그가 쓴 현대소설에 대해 무척 큰 기대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대인의 삶에서 그가 예리하게 간파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준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글을 처음 접했던 그 까마득한 시절과는 문체가 좀 달라진 것 같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의 삶이 달라지고, 나이가 달라지고, 인생경험이 달라진 것처럼,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의 문체가 달라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낯선것처럼 느껴지는 문체는 이 책의 제목처럼 낮익은 것 같지만, 낯선 도시의 풍경, 잘 아는 것 같지만 약간 다른 세상의 모습,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그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풍부하게 경험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얼마나 아이러니 하면서, 또 동시에 얼마나 생생한 경험인가.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쏫아져 나온다. 현대인의 삶의 풍경과 삶의 내면을 뒤집어 보는 글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래서 삶의 아픔에 대해서, 고독에 대해, 심한 가슴앓이에 대해, 인생의 폭력성에 대해 무수한 글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최인호 작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자신에 대해서 질문한다.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 주인공을 통해 저자는 세상을 한바퀴 새롭게 둘러본다. 모든 것이 친숙하지만, 가만히 보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 않아보인다. 거의 편집증 수준의 강박적인 관찰로 세상을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비슷하면서도 가짜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낯익지만 모르는 타인들로 가득찬 도시의 모습.
저자는 그 모든 낯설음이 결국은 자신의 문제로 귀결됨을 설파한다. 주말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는 방대한 여행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짓 성실, 거짓된 인생, 거짓된 솔직함, 그러한 자기반성을 통해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 시작되고, 가장 정당한 것 같지만 가장 비열한 모습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책이 끝나면서 새롭고 친숙한 그러나 그 전과는 다를수 밖에 없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