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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딱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다. 나는 진지한 책을 좋아한다. 가끔 터무니 없는 웃음코드의 책을 일기도 하지만, 그건 진지함에 질려서 쉬고 싶을때 아무 생각없는 휴식용으로 읽기 위한 것일뿐이다. 드라마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있어서는 기발한 발상, 흥미로운 전개, 극악한 잔인함, 장대한 스케일...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바로 진지함이다.
그런 진지함을 좋아하는 나는 또 판타지와 SF를 좋아한다. 진지함과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장르를 진지함과 결부시키는 드물게 뛰어난 수작들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가끔 그런 순간이 생길떄 나는 눈에 불빛을 반짝이며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그런 책들을 읽는다. 오랜만에 다시 한번 그런 책을 만났다. 바로 리미트리스이다.
책의 시작은 어느 책이나 흥미롭게 시작한다. 마치 작가들의 역량이 첫인상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그래서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들중 뒤로 갈수록 진지함이 사라져서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마지 못해 읽게 되는 책들이 많다. 사실 요즘 읽는 대부분의 책들이 그러하다. 뒤로 갈수록 흥미가 줄어들지만, 다른 읽을만한 더 나은 책들이 없어서,,, 읽고, 그중에서 조금 나은 책에는 감격의 서평을 쓰는. 그런 책들이 나의 삶에 그만그만한 희망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적어도 나에게는. 뉴욕. 온갖 장르소설들이 무대로 삼아왔던, 그래서 가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그 도시. 그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특별한 약물을 먹으면서 특별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도시의 밑바닥부근에서 도시의 정상부근까지. 그만그만한 지성에서 최고의 지성에 이르기까지. 빠른 성장만큼 빠르게 전개되는 추락에 이르기까지. 늘 있어오는 그런 내용들을 이 책은 무척 진지하게, 그리고 무척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약간의 스릴러적 요서가 곁든 SF라는 장르에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며 몰입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진지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들이 흑과 백의 색깔의 차차이를 넘어 비밀을 간직한 오래된 전설처럼 반짝이는 빛을 지니게 되는 책. 그런 마법적인 스토리를 가진 책으로 나에게 인식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루 저녁에 책을 다 읽어 버리고 한숨을 쉬며 책의 표지를 다시 바라보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들이 이미 수많은 소설가의 책을 통해 표현되어왔지만, 그 밀도와 스피드 그리고 완성도에 있어서는 아직도 더 영롱한 책이 나올 여지가 남아 있구나... 하는 기대와 희망이 내일도 더 나은 책을 만날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가는 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