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거장의 손에서 쓰여진 책은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준다. '자연에 대한 사랑' 이라는 주제의 책을 많이 읽어본 거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책보다 더 멋지게 그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학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문학작품이 아니라, 생물학자의 완숙한 감수성으로 풀어쓴 책이기에 더욱 대단한 책이다. 글은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장식적인 문구하나 없이, 과학적인 지식을 쉽게 풀어서 쓴 이 책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이 책을 읽은 후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갖게 되는 애정 어린 시선을 자각하면서 위대한 한 사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변화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철저한 과학자의 시각으로 쓰여졌다. 감상어린 자연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세밀하게 돌아보는 시선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복잡한 과학용어로 가득한 책도 아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여졌지만,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멋진 풍경들을 가득히 담고 있는 멋진 책이다. 자칫 감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을만한 주제들을 무척 담백하게 쓴 거부감없이 읽을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 타임머신이라는 제목을 가진 챕터는 대단히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생명체의 자연사를 느린 시간으로 재생하는 것 같이 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빠른 속도로 낮과 밤이 교차하면서 시간이 명멸할때 그 생명체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거대한 생명체와 그 주변을 둘러싸는 자연의 교감을 보여주다가, 생명의 세부구성을 형성하는 세포내부의 생화학적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도 한다. 이런 거장의 솜씨를 빌어서 바라보는 자연은 위대한 교향곡의 연주를 듣는 것 같은 감동을 경험하게 해주고, 어지간한 반발감을 가진사람들도 순순히 저자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을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바이로필리아를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마도 윌슨필리아가 되고 말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