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에도 사람들이 산다. 고급식당과 성형외과만 들어선 상가만 있는 곳이 아니다. 압구정동에도 학교가 있고,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고, 그 학생들이 사는 집이 있다. 한때 오렌지족이라 불리며 경원의 대상이 된 사람들. 그러나 그곳 출신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이 진학했고, 당연히 우리나라의 정계, 관계, 기업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어릴적부터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우리나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오렌지족이란 단어가 나온지 20여년. 그때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마흔줄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 내각에 입문하는 장차관마저 강부자 내각이라 불리듯이, 그들의 부모 선배들이 우리나라의 기성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이다. 이 책은 압구정 키드였던 저자가 자신의 성장기를 배경으로 윤색을 가미하여 실화풍으로 만든 논픽션이다. 저자 자신이 이 책은 압구정이라는 한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집단의 세대사를 묘사했다고 말하듯이 그들에 속하지 못한 나로서는 무척 신선한 책이다. 압구정 소년들이라고 하지만 사실 '말죽거리잔혹사' 의 내용과 그리 다른 것은 없어보인다.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사는 장소와 부유함의 수준은 다르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과 인생의 아픔은 다들 비슷한 것인가보다. 이 책은 강남 출신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창시절과 그 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삶을 예리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한다.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소재와 누구나 겪을것 같은 경험이면서, 누구나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독특한 경험을 잘 엮고 그것에 인생이라는 주제를 엮어서 만들어진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을 절반의 스릴러라고 표현했는데, 스릴러라고 부르긴 뭣하지만, 풋풋한 청춘의 아픔과 중년에 접어드는 사람들의 인생이야기가 맞물리는 것을 범죄의 냄새가 나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장식한 것은 무척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인생이라는 것을 탐구하면서도 지루하지가 않다. 책의 문체도 맛깔나서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책을 내려놓을때까지 강한 집중도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다. 나로서는 뒤늦게 괞찮은 작가를 발견한 즐거움이 따르는 책이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