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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2 - 금권천하 ㅣ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세상에 관해 사유할 때 잘 놓치는 것이 있다. 혁명과 전쟁같은 거대한 변혁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자금이나 혁명의 자금이 없이 어떻게 부대를 움직이고, 혁명에 필요한 자원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어느날 갑자기 분노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부를 무너뜨리고 역사를 바꿧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전쟁을 뛰어난 기술과 용감한 병사, 훌륭한 지도자가 승리로 이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내가 접했던 대부분의 역사서는 혁명과 전쟁의 승패에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의 다루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정말 그 정도로 돈의 위력이 강한지 나도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돈이란 관점을 가지지 않고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떄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설명대로 역사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돈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하면서 바라보면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의 어디서 어디까지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을 감수한 이의 말대로 이 책은 역사가 아니라 팩션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이제까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역사 이면의 돈의 흐름과 돈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서 무척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도 말하듯이 이 책이 광범위한 역사에 대해서 매우 충분한 고증을 거친 '학문적으로' 뛰어난 책이라고 하긴 힘들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역사에 관해 논하고 있지만, '학계' 에서 말하는 종류의 '논문' 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신선함과, 새로운 역사를 느끼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이 책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평가는 소위 '전문가'들이 하면 될 일이다. 이 책은 관점을 새로이 정리하면서 사람들에게, '세상을 이런방식으로 보는 눈을 가져라' 고 소리 높여 외치는 책이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준비한 책이라고 하지만, 시간에 쫒기면서 쓴 책이 충분한 고증을 거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단점이 이 책의 놀라운 '시각'을 깍아내리진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은 앞으로 나올 이런 종류의 책들의 시발점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소위 17대 금융가문이 얼마나 음모론적으로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지는 확실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금융가문들이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는것을 깨닿게 된다. 사실 그만한 위치와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엄청난 이권이 있을 수 있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를 보면서 표피 아래에 흐르는 큰 흐름을 놓치고 있었던 나에게 역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도록 해주어, 역사란 것이 더욱 흥미진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준 책이다.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책이다. 저자의 서문에 나오듯이 중국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전략적'관점을 정립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란다. 지금 중국에서는 이 책과 이 책의 전작인 '화폐전쟁 1권'이 나란히 베스트 셀러 1.2위를 다투고 있다고 한다. '대국굴기' 가 그렇듯이 뻗어가는 경제적 힘에 자신을 얻은 '대국인'들의 자손심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맞물려, 자신들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고자 하면서 서구인 중심으로 짜여진 기존의 세계질서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는 중국인의 마음에 잘 녹아드는 책인 것 같다. 반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인이 어떤 시각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두가지의 시선을 제기한다. 우선 첫번째는 역사를 실질적으로 움직여 왔던 큰 힘이지만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자본의 엄청난 위력에 대한 깨닳음이다. 둘째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것을 꽤뚫으며 새로운 방식의 경제논리를 모색하는 중국인의 대국다운 세계관을 엿보는 것이다. 패자가 바뀌려면 패권의 논리가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이 말하는 '전략적'이라는 말은 바로 중국인의 시각에서, 오늘날 세상을 주도하는 세계화라는 논리에 대한 반박의 이론일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사관에서 흔히 말하는 하부구조의 변화가 일정한 정도 축적되면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촉발하게 되고 그것이 혁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상부구조를 바꾸게 된다는 이론과 이 책의 내용이 상당부분 배치된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의 중국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말하기에는 어렵고, 어떻게 보면 또 다른 형태의 병렬적 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주의 국가를 주장하는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기본전제와 반대되는 자본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내용의 책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결국 오늘의 중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체제보다 앞선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