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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유영미 옮김, 고광윤 감수 / 들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이다. 책을 처음 읽으면서부터 책이 끝날때까지 숨쉴틈 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책은. 바로 이런 책이 우리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해주며 우리가 교양인으로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해준다. 세상에 크고 작은 즐거움들이 있지만, 이렇게 잘 쓰여진 책을 읽는 느낌은 다른 즐거움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지식의 즐거움. 새로운 각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게 될때 느끼는 희열에 가까운 기쁨. 그런 순수한 기쁨은 세속적인 성취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사실 재미있게 쓰여진 책은 많지만 진정한 지식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기회가 이나다. 특히 이런 인문학적 책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말한다. 과학이 주도하며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를 상아탑에 갖힌 인문학자들이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다고 한다. 성급한 인문학자는 길거리로 뛰어나가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학문이 아니라 몸으로, 때로는 선동으로 메우려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실천하는 지성이야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제대로 된 성찰과 숙성이 없이 안타까운 마음만으로 실천을 위하 실천에 나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위기인 것이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만났을까.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한가한 것 같다. 그런 질문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거나,. 그런 질문을 해결하는 것이 과학적 성과나 인문학적 연구의 수준을 높이게 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서두에서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만났을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런 우스광스러운 듯한 시도가 책의 말미에 이르면 굉장히 중요한 귀결을 만들어 ㄴ는 것을 볼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멋진 이유이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만난적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전기작가의 어처구니 없는 시도(만났으면 어떻고, 안만났으면 어떻단 말인가?)는 틀린 것이란다. 그러나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만났다는 것이 결론이다. 예컨데 만났기도 했고, 만나지 않기도 해단다. 시공간을 설명하는 물리학에서의 아인슈타인의 혁명적인 발견인 일반상대성 이론은, 폭팔하듯 새로운 미술사조를 생산하던 당시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큐비즘(입체파)의 혁명적 대두에 비견할만하다.
그러나 물리학과 평면회화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혁명적 시도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러면, 이 두가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놀라운 서고를 낸 독립적인 발견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이루어지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는 것 때문이란다. 당시의 문화가 공유하고 있던 부분을 서로 직접적으로 만난적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고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란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의 만남은 없지만 시대정신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난해한 현대미술과 복잡한 일반상대성이론을 한꺼번에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그리 두텁지 않은 한권의 책에서 이렇게 우아하게 만나서 사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외치는 사람없는 기술. 과학의 맹목적 발전에 대한 우려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결별할 운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들이 두 부분을 연결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