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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평점 :
"요즘 사는게 어떠냐?" "뭐 그저 그렇지. 그냥 견딜만 해." " 다행이다. 큰 어려움이 없어서..." 나는 이런 식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큰 일이 생기지 않으면 다행인 세상을 살아가는 것. 혹시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자랑을 하기보다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묻게 해준다.
행복의 조건을 설명하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데이터가 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경우가 많은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을 받고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문득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계기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가보다.
늘 삶이란 것에 대해서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숨가쁜 일상을 소화하다보면 '행복'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한다.(나의 삶의 경향 떄문일까?) 나는 서점을 지나가다가도 행복론, 지혜론... 같은 책들은 씩 웃으면서 진열된 서가를 지나가곤 한다. 내가 충분히 행복하거나, 충분히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바쁜 세상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내 가슴에 그런 책들이 하는 말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약간 특이한 이유는 이 책은 대부분의 그런 책들처럼 철학자나 현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정신과 의사가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쓴 드물게 대규모, 장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전향적(prospective study)를 바탕으로 한 책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전향적 연구가 얼마나 어렵고, 또 전향적 연구의 결과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두말할 필요가 없이 잘 이해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만은 별다른 거부감이 없이 내가 다른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지적인 호기심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독서의 경험은 상당히 경이로웠다.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well aging" 이다. 잘 늙어간다는 것. well being 의 원래적 의미가 그렇듯이 well aging 의 내용도 단순히 건강하게 늙어간다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늙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전인적인 관점에서 (heuristic perspect), 또 존재론적 관점에서 하루 하루를 건강하고 보람되게 시간을 뒤로 흘려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잘 늙는다는 것은 결국 잘 살아가는 것의 결과론 적인 것이고, well being 과 well aging은 서로 다르지 않은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요소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신분, 부모의 성격, 가족내의 상관관계, 체격조건.... 그러나 상당히 적절한 대조군까지 갖춘 이 보기드문 대규모 연구의 결과는 어떤 상황에서건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정신적인 성숙(mature)을 해나가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사회 경제적 성공뿐만 아니라, 그들의 결혼에서의 성공, 노년의 보람, 노년의 활동성과 역동성들 같은 광범위한 요소들이 그들이 운명적으로 대해야 했던 환경에서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크고 광범위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사용한 방어기제에 따라서 평균적인 수명까지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알수가 있다. 이 연구에서 성공적인 노화를 이룩하여 행복한 노년을 누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성장기에 그리 좋지 않은 방어기제를 사용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내면적인 성장은 신체적인 성장이 멈춘후에도 평생에 걸쳐서 일어난다. 즉 우리들에게는 언제라도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앞서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꼭 성취의 양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의 순간을 어떻게 잘 살아가는 것이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 행복은 다름아닌 well being 이다. 샤르트르의 저서 "To Be or To Have(소유냐 존재냐)" 에서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be 를 살아가는 것이 being 이 아닐까 생각한다.
훌륭하고 보기드문 의학적 사회, 심리 과학적 연구결과를 숫자로 범벅이된 과학자들이 언어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풀어놓은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다. 이런 저자야 말로 well being 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역시 이 책이 추천하는 긍정적인 방어기제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많은 지적도전을 받았고 존재론적 성찰의 기회를 얻었다. 이 책 이후의 내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서가에 넘치는 다른 많은 책들 중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보물들 중 하나라는 말은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