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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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창시절 최인호의 책들을 즐겨 읽곤 했었다. 그당시에 내가 주로 읽던 묵직한 책들과는 달리, 최인호의 책들은 그다지 무겁지 않으면서도 젊은이의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드럽게 풀어가는 문장속에 들어있는 아픔의 힘이 젊음이라는 싱그럽고 또 아픈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공명을 일으키며 무거운 시대와 역사에 짖눌리다 휴식을 취하는 학생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한동안 대하역사소설을 쓰는 것으로 문장이 바뀐것 같던 최인호가 수필집을 냈다. 사실 최인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최인호의 역사소설은 그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나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시가은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고, 시대에 따라서 내가 읽고 소화해야 할 책들 또한 넘쳐났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이젠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무렵 우연히 이렇게 다시 최인호를 만나게 된다.

 

인연. 인연을 말하기에 나이란 것이 무엇이 상관있겠는가만, 역시 한 세월을 살아본 사람이 말하는 인연이라는 것이 더욱 질감이 그윽한 법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피천득의 인연도 긴 세월이 지난뒤에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은근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여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최인호 그가 이제 인연을 이야기 할 나이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었다. 학창시절부터 항상 나보다 앞선 나이를 살아가던 그가 아니었던가. 내가 중년이면 그는 나보다 더 앞선 나이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맨 첫 페이지에 인용해서 나오는 죽음을 앞둔 심정을 쓴 시는 자못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뒤의 수필들은 평이한 문장으로 질박하게 쓰여져 있다. 페이지가 쑥쑥 잘 넘어가고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문장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주제가 없어보이는 허허실실의 공백이 주는 여운의 힘은 그리 약하지 않다. 최인호는 이제 글을 그렇게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작가로 발전을 한 것이다. 주제를 내세우지 않으되 은은히 풍겨나는 은근한 아픔의 사연들.

 

그의 인품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그의 소박함도 좋고, 그 소박함 속에서 삶의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못자국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예리함도 좋다. 그렇게 우리는 허위적 허위적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모르는듯,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관찰하면서 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늙어가는 것이다. 늙어가는 얼굴엔 잔주름이 늘어나고 팽팽하던 피부엔 윤기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쇠하여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픔은 더욱 강해져간다.

 

시간의 거대한 힘은 아름답고 싱싱하던 모든 것들을 허물어 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도 어쩔수 없는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삶의 연륜과 그속에서 싹이 트는 세상에 대한 따사로운시선이다.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청춘의 아픔속에서 아무리 찾아 헤메어도 결코 알수 없는 그것. 그 느낌을 최인호는 이 책에서 술술 뽑아내고 있다. 일상의 허술한 이야기인듯이 풀어내는 이야기속에 뼈가 있고 아픔이 있고 소리를 죽여 슬피우는 울음이,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 느끼는 웃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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