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을 읽으면서 사실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랜만에 제대로된 한국 드라마를 보며 무척 반가왔고, 그 드라마의 원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무척 반갑게 기다리면서 보는 오랜만의 드라마를 만든 원전을 읽어보는 또 다른 느낌을 간절하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와는 또 다른 묘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 심지어 같은 대사를 다루는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은 강하게 묻어났었다. 드라마와 원전이 얼마나 같을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다를수 있는지. 드라마가 주는 감동과 글로 된 텍스트가 주는 감동은 또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척 큰 만족감을 맛보았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동유럽과 일본 중국 미국 심지어 북한내부를 무대로 펼쳐지는 장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한사람의 운명과 철저하게 엮여져 들어갈수 있는지를 이렇게 잘 설명할 수가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늘 궁금하였던 두 절친한 친구가 서로 적으로 갈라서게 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처럼 잘 이해 할 수 있을까. 민족과 강대국의 힘. 남과 북. 남자와 여자. 사랑과 증오. 흔한 레퍼토리지만 사실 우리들의 삶에 경제라는 것, 하루의 밥벌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것 말고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이 책은 장르소설과 본격문학을 무척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작품으로 매김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끔 한국의 장르문학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 책만큼 완결성을 가진 책을 보진 못했다. 이 책엔 지나친 저질스러움도, 너무 거대한 스케일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서사의 규모가 결코 작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한국와 중국의 전면전을 벌이는 스케일은 크지만 허황한 소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상당히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다. 결코 사실은 아니겠지만, 전혀 이루어질수 없는 것도 아닐수 있는 내용. 딱 아슬아슬하게 읽히는 소설의 틀로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규모를 적절하게 잘 찾아냈다는 느낌이 든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의 중심에는 음모와 민족과 거대한 힘의 격돌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이 책은 드라마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서 무척 다이내믹하게 진행되는 스피디한 진행을 벌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결코 허술히 할수가 없다. 그 한마디의 대사를 놓치면 이 책이 가진 깊이를 놓칠수 있는 책이다. 첩보액션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책이다. 흔하고 흔한 것이 사랑이야기다. 그러나 당신이 겪어본 사랑은 그렇게 흔하고 흔한 것이었는가? 그렇다. 이 책은 그 사랑이야기를 빠르게 전개되는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서 너무 진하지 않게 썩어 넣었다. 거대한 역사의 변동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운명적인 사랑. 그것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애자하게 하는 것들이 있었던가. 닥터 지바고가 그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랬고, 해바라기가 그렇지 않았었던가. 이 책은 저자의 첫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권에 걸친 책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 감히 위에 열거한 내 인생의 영화들의 거대한 감동들과 비교할만하다고 하면 내가 너무 지나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가 방영될 시간을 기다리는 내 심정을 생각하면 결코 그 영화들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으로 난 아직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나머지 내용을, 그리고 미처 드라마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그들의 숨가쁜 삶의 세밀한 부분들을 남김없이 읽을수 있었다. 많은 책들이 훌륭한 출발과는 달리 후반부의 감동이 약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초반에 후반부의 내용이 예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그 밀도와 감동이 더욱 높아지는 퍽 드문 책이었다.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이 그 때문이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나에게 나타날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