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뱀이 잠든 섬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2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어본 책들 중 일본적인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 소설의 붐에 휩쓸려 나도 제법 일본작가들의 책들을 이것저것 읽어보았다.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니, 이 책이 일본문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가를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은 가장 일본적인 것의 원형에 가까운 책으로 느껴지는 책이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을 대상으로 그 섬에서의 몇일 동안에 벌어지는 결코 작지 않은 일들을 세밀하게 다루는 이 책은 제한된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섬이라는 작은 공간을 같이 점유하며 같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기에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아주 뛰어난 책이다.

 

신사. 사당. 신. 혼령. 오봉이라는 이름의 축제. 섬이라는 신비롭고 격리된 공간. 출렁이며 흘러가는 바닷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이기며 장구한 세월을 이기며 살아온 섬. 그리고 그 섬을 기거할 공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섬에 의지하고, 섬에 의미를 부여하고, 섬과 조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파열음.

 

변화할 수 없을만큼 견고해보이던 전통이 내부에서부터의 균열로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이 책이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그들식의 합리성,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지키고자 하는 삶의 질서를 엿볼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혼네와 다테마에. 숨막힐듯한 규율과 지나친듯한 파격.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밖에서 볼때 무서울만한 응집력을 가졌으면서도 안에서 볼때 숱한 파열음을 내는 나라. 좌와 우가 공개적으로 격력하게 부딪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질서가 유지되는 나라. 밖에서 보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읽은 어떤 일본책보다 일본인들의 심성을 잘 드러내 준 책이다.

 

세번인가 여행을 갔었다. 그들이 사는 집들을 사진찍고, 그들이 거니는 거리를 걸어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그들의 옆자리에서 먹었다. 짧은 말이나마 그들과 서툰대화도 나누었지만, 나에게 그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 이상은 접근하기 어려운 미지의 대상이었다. 매번의 여행에서 돌아올때마다 새로이 얻은 이미지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주는 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게 해 준 책이랄까...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떠나서도 이 책은 무척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하나없이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흠잡을데 없이 탄탄하게 쓰여진 이야기는 군더더기를 찾을수 없을 정도다. 우선 책이 재미있다. 책의 처음부터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문체는 낮선 나라의 이야기를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처럼 깊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날때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일 때문에 잠시 책을 손에 놓는 시간을 빼고는 숨쉬는 것을 의식하기도 힘들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어떻게 보면 유치한 귀신이야기.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게 요리해 놓은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미우라 시온이라는 새로이 알게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서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든는 무척 섬세하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무척 따사롭고, 늘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나무그늘에서 눈을 높이들어 수평선 너머 먼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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