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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장정일. 숱한 논란을 일으키곤 했던 바로 그 작가가 10년만에 낸 소설이란다. 그가 이번에는 어떤 센세이션을 일으키려고 새로운 책을 냈는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역시 그는 욕심이 많은 작가이다. 그는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내가 아는 한은 아직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정면으로 다루어본 적이 없는 문제를 이 책의 골격으로 삶고 있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과 공존. 화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공존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면서 함께 국가라는 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건전한 국가, 성숙한 국가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와 대등한 능력을 가진 건전한 우파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새로운 관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적 서적이 아니라 문학책이다. 문인이 쓴 책이라서 문학책이 아니라, 책의 골격은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을 쫒아가면서도 그 속에는 문학적 미학이 관통해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으나 조잡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구월의 이틀'이라는 것 역시 그가 이 책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 좌와 우, 건전하고 튼튼한 국가의 조건만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구월의 이틀은 유시화씨의 시의 재목으로 찬란하게 타오르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그러나 단 한번뿐인 짧고 찬란한 시기를 말한다.
삶의 나머지 시간들은 여전히 계속 되겠지만 사람들은 그 불빛같이 빛나게 타오르던 청춘의 눈부신 섬광에서 풍겨지던 황홀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라 아이냐.' '삶이란 재미가 아니다' '사람은 밥값을 해야한다...' 등 온갖 수식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변호를 하면서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영원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다.
남은 삶은 그 황홀한 시절의 기억을 반추하며 쓸쓸히 살아가는 죽정이일 뿐이다. 이 작가는 사람의 삶을 이렇게 모질게 잘라서 단언해 버린다. 역시 세간의 평을 신경쓰지 않는 도발적인 작가가 아니면 감히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