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김호기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실 내 스탕일이 아니다. 나는 수필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성공스토리라든지 휴먼스토리 같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이라면 사죽을 못쓰다시피 하는 내가 유난히 자기개발서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름 대로 삶의 경험이 있고, 나름대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삶의 쓴맛에 대해서도 겪을 만큼 겪은 나로서는 이젠 더 이상 시련과 극복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은 듣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예외없는 삶이 어디에 있으며 우연히 만나지 않는 조우가 어디에 있겠는가. 열심히 노력하며 부단히 애쓰면서 살아가는 삶이지만 삶이란 사실 우연과 우연들이 만들어 내는 장난기 가득한 세상이 아니었던가. 세상과 맞서고자 하는 사람의 애타는 의지와 관련없이 흘러가곤 하는 곳이 인생의 낱장들을 채우곤 하는 것이 삶이다. 우연히 필연이 되고,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삶의 단단한 못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다.
나와 이 책과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산 책도 아니고 우연히 선물로 받았지만 애초에 읽고 싶은 책도 아니라 구석에 모셔두었던 책이다. 우연히 남는 시간에 서제가 넘쳐나는 관계로 보관해야 할 책과, 읽고 정리해야 할 책을 분류하는 구분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선물받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의 두껑을 열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몇 몇 장들을 읽어보고 정리를 해야지... 하고 시작한 책이 나를 이렇게 깊이 빨아들일지는 몰랐다.
인생이란 우연에 의한 만남들이 꾸며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삶으로 밀려가, 그곳에서 미지의 상황과 맞딱뜨리고 아픔과 또 생생한 기쁨과 보람과 또 실의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 삶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음악가 혹은 악기제조가가 쓴 글이라고 밎겨지지 않는 강한 힘을 내뿜으려 나를 사로 잡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책속으로 빠져들어가지 않을수 없었다. 가장 훌륭한 글은 재주를 부리지 않고 담담히 있었던 그대로 적어가는 글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정말 담담하게 재주부리지 않는 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신의 이야기에 흠뻑 젖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류의 책들을 그토록 싫어하던 나까지도 빨아들이는 힘을.
그녀가 겪었던 삶이 가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 책의 형태로 나온 삶은 그녀의 아픔 정도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가혹함을 담은 책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그 아픈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감정을 자극하고 최루샘을 여는 것이 지겨워서 나는 그런 책들을 멀리해왔었다. 그런데 보라. 이 별다른 큰 내용도 없는 담담한 삶의 기록이 우리에게 호소하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사람의 삶이란 비슷한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 삶, 그러나 열심히 살았던 삶, 자신의 그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 글, 담담하게 자신이 걸어온 삶과 자신이 살아갈 삶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들을 담은 글. 바로 그런 글들이 그 쟁쟁한 이야기를 담은 글들보다 더 커다란 힘을 발하며 광채를 빛내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것이 살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담은 글이 좋은 글이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