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단편소설들이 이렇게 강한 충격을 줄수 있는지 몰랐다. 내가 그동안 단편소설집들을 기피해온 이유가 그 소설들이 가지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이었다. 물론 좋은 작가가 쓴 좋은 단편소설들이 많이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글들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자연히 그런 글들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최소한 250페이지는 넘는 책이라야 읽을만하다는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은 상당히 견고했던 나의 고정과념을 한번에 깨버린 책이다. 책의 첫부분에 나오는 작품부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봐라...' 하는 느낌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단편소설이 이런 힘을 가진 것은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구나.'라는 느낌은 그 다음, 또 그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면서도 변함없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남 레 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 작가는 베트남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하다. 낮선 영어권의 삶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의 작품들은 각 작품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문화적 환경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의 작품들이 짜릿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소재의 특이성 떄문은 아니다. 작품속에 나타는 그의 말대로 좋은 작품은 이미 세상에 넘쳐나는데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각자의 삶속에서 또 삶과 삶이 부딪히며 나타나는 동시대의 새로우 삶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베트남인 작가를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남미의 마약상들이 장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호주의 백인들이지만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에서, 혹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원폭이 떨어지기 직전의 히로시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희망에서 느껴진다.

 

사람들이 잘 눈여겨보지 못하는 예리한 통찰력은 그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환경적 배경을 가진 작가의 몫일 것이다. 남 레는 그런 제 3세계 출신 영어권 작가의 역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매우 능력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마주하고 사고하는 주제의 무게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의 문장은 매우 맛갈난다. 똑똑 끊어지는 짧은 문장들은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때로는 쓸쓸함을, 때로는 고독을, 때로는 삶의 풍경에 대한 덤덤한 스케치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의 문장들은 여러장면들이 예고없이 뒤썩이곤 한다. 시간을 거슬러가기도 하고, 화자가 달라지기도 하고, 사건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작법들 현란한 문체로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류의 작품들과는 다르다. 작가는 시대의 아픔을 평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의 문체는 아픔을 표현하는 것치고는 너무 덤덤하다. 단지 그는 그 모습을 입체적으로 좀 더 자세히 보여줄 뿐이다. 그는 읽는 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 모습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곳에서 보물을 캐어내는 것은 읽는 이들의 몫이다. 열려진 글. 그래서 자기주장이 있으되 드러나 보이지 않는글.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크 공감을 얻을수 있는 글. 그래서 더 큰 여운이 남고, 각각의 단편들이 마치 장편소설을 읽은 것 같은 무게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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