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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시인이 혁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인이 혁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코 총독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했던 그 많은 문인들의 이름은 오늘 하나 둘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문인의 반열에 합류하지는 못했으나, 이름난 문인들 못지 않게 유명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체 게바라이다.
우리나라에 그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다. 그의 존재는 그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저 입에서 입으로, 유인물로 전해지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를 정면으로 다룬 단행본 책이 출간된 것이 불과 10년 가량 전이었다. 그는 그 전 수십년 전에 사망했다. 그의 이마의 베레모에 달린 별처럼, 그는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
오늘날 체 게바라의 인가가 꼭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그를 알았고, 그를 더욱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상품처럼 팔려가는 그의 이미지 안타까워한다. 그의 이름이 그를 알만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려지는 것을 아파한다. 상처많은 그의 삶에 또 하나의 상체기를 내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영웅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 그 숱한 어려움을 겪고 그는 한번의 혁명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두번의 혁명을 실패했고, 그가 참여한 마지막 혁명은 결국 그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말았다. 모든 혁명이 성공할수는 없다. 혁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 계속되는 혁명에의 참여는 결국 그가 죽음을 향해 돌진한 것이라고 볼수 밖에 없다.
혁명이라고까지 하긴 뭣하지만 우리들도 민주화 투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투쟁에 앞장선 사람들이 오늘날 비참한 몰골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본다. 민주화 투쟁을 팔고, 민주화 투쟁을 밟고 영리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 투쟁의 의의에서 등을 돌리면서 무슨 명예를 추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만 욕할 수는 없다. 세상의 많은 혁명들이 그런 과정을 밟아 타락해갔기 때문이다.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이룬 것을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카스트로가 최선이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말레콘만 보고 온 단기 여행자들의 시선보다는 카스트로는 훨씬 많은 것을 이루고 훌륭히 지켜온 사람이다. 그를 부축하고 그가 힘들때마다 그를 격려하고, 위기의 시기마다 쿠바인들을 단결시킨 사람이 바로 체 게바라이다. 영원한 혁명정신의 뜨거운 활화산이 그들의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혁명가는 로망이나, 반항심이나, 교조적인 세뇌나, 시대적인 분위기로 인해 탄생하지 않는다. 성장기에서부터 다져진 내면적인 깊은 성찰.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에서 거듭 확인되는 정당성. 생에 대한 열망을 가지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는 지성.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혁명가가 탄생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그가 그 드문 인문주의적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아낀 시들에 관한 책이다. 동시에 그가 그 시들을 자신의 노트에 적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인간 체 게바라가 어떤 심리적 과정을 겪어며 삶을 살아갔는가를 추적하는 수작이다. 스페인권도 아닌 먼 한국에서 연구를 하는 시인이 그런 힘든 과업을 이루어 낸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이 책은 체 게바라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의 깊이를 더하고, 혁명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섣부른 감상에 질책을 가할만한 책이다.
저자인 구광렬님은 얼마전 EBS 세계문화기행의 베네수엘라 편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선듯 찾아가기 힘들어하는 혁명의 도가니 베네수엘라. 그는 세계문화기행의 시리즈로는 드물게도 베네수엘라의 시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현장을 마지막회에 도입했었다. 4회에 걸친 방영내내 보여지는 그의 무뚝뚜하면서도 시인같지 않은 모습. 과묵한 사나이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에스빠뇰의 음성이 무척 인상적이었었다. 간간히 소개되는 그의 시도 깊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이름도 생소한 중남미 시인. 그는 문헌만 파고드는 책벌레 연구자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울줄 알되, 과묵한 얼굴을 가진 진정한 로맨티스트 같았다. 뜻하지 않게 선택한 책이 그분의 것이란 것을 알고 더욱 좋은 느낌을 받을 책이다. 'gracias 구광렬. viva revolution. hasta siempre 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