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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다 합쳐서 300페이제 가량, 길고 짧은 것이 있지만 어림으로 한편에 약 100페이지. 그리 긴 분량이 아니다. 난 보통 그렇게 짧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소설속에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떄문이다. 특히 일본소설의 가벼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 짧은 분량에서 가뜩이나 가벼운 일본현대문학이란 장르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다 슈이치라는 그리 만만치 않은 이름이 나를 이 책을 읽도록 당기게 했다. 짧은 분량이 설사 실망을 하더라도 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음직하다. 사실 예상대로 책은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들로 점철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비상한 음모나, 머리를 쓰게하는 추리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젊은이들이 나와 덤덤하게 살아가고 사랑하지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이상한 삶을 살아가고, 그다지 열심히 산다고 볼수도, 그다지 게으르다고 욕을 할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일본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삶의 정서와는 아직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젊은이들의 삶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변해 있는지 모른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적혀 있는 세개의 이야기.
그나마 억눌린 가슴을 않고 살아가는 유부녀가 등장하는 맨 마지막 작품이 나의 가슴에 잘 와닿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보통 서평을 쓰기 전에 옮긴이의 글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작품은 내가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편을 좋아하고, 많은 경우에 옮긴이의 의견이나 해설과 내가 읽고 느낀 내용들이 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난 후에 쓰는 서평은 어떤 식으로든 그 글의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 옮긴이의 글을 읽지 않을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담은 책인지 희미하게 알것도 같고 모를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경우 간략하게 적힌 옮긴이의 글은 이 책을 이해하게 되는데 예외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내가 느낀 그대로의 느낌. 무덤덤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의 삶. 극적이지도 뜨겁지고 차갑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에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되돌아 읽어보면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것은 이 책에 내오는 것과 같은 삶의 모습에 더 유사한 것이 아닐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책속에서 만나는 극적인 긴장과 대단한 사건들의 연속, 엄청난 센세이션... 이런 것들이 실제로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희박한가. 그렇게 보면 이 책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웅변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모습. 절제된 아픔, 과장되지 않은 순간들, 억눌려 있지만 화장으로 꾸미지 않은 괴로움을 잘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