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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책들마다 강한 색깔들과 큼지막한 글씨들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점에도 상업주의의 물결이 뻣치지 않을수 없고, 저마다 입양되기를 원하는 책들은 새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만큼이나 열정적인 눈망울로 서점가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강렬한 열망을 담은 눈망울에서 아름다움을 느낄지 모르지만, 나같이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눈망울에서 부담감을 느낀다.
에드거 소텔이야기라는 지극히 평범한, 전혀 자극적인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은은한 목가적인 풍경이 담겨 있는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표지를 단 책이다. 두권. 한권당 거의 500페이지.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다. 상당한 서사적 구조가 담겨있을만한 책이기도 하다. 차분한 제목과 표지. 그리고 두툼한 두께와 좋은 질감이 읽고 싶은 마음을 당기게 한다.
책을 열자 놀랍게도 첫머리에 우리나라의 이름과 낮익은 우리나라의 도시명칭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에필로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출판사가 우리나라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내놓은 판매전략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와 이 책이 서술하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때 우연히 선택된 미국인의 관점에서 볼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책은 매끄럽지만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범한 이야기들로 연결되는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너무 많은 자극적인 문체에 적응해 있던 독서문법이 이 책에 적응하기까지 한 100page 가량이 걸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이 책이 나를 이끌어가는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여행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흥미위주의 사건들이 거의 없는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0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시종 흥미진지한 내용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단순한 글 재주나 반전을 동원한 흥미위주의 책으로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런 일을 해낸다. 그 비결은 책이 전하는 감동과 무게에 있다. 이 책은 극히 느린 템포로 아주 제한된 등장인물만이 등장한다. 나머지 잠시나타났다 사라지는 소품같은 엑스트라들... 근본적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가족으로 구성하는 몇몇 사람들간에(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할말이 이토록 많고, 사람의 관심을 끝까지 붙잡아 놓는 매력을 가진다는 것은 이 책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말이다. 현대소설에서 보여지는 흥미를 돋구기 위한 매끄러운 문체, 극적인 반전, 이야기가 배배 꼬이는 비밀스러움, 다양한 에피소드들 같은 것을 전혀동원하지 않고도 무척 흥미롭고 무척 재미있다.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끝까지 다 읽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제서야 이 점잖은 책의 표지에 써여있던 평소 눈여겨 보지 않는 그 칭찬의 글들이 다시 생각난다.
"'선택' 과 '운명'에 관한 매혹적인 대서사시."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