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쓴 책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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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묵직하다. 우선 페이지부터 확인해본다. 600 페이지가 넘는다. 와우.... 요즘 500 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나오지만, 600페이지를 훌쩍 뛰어 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무척 흥미로울것 같은 기대반, 너무 긴 것에 대한 부담감 반...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너무 흥미롭게 전개되는 내용이, 이 책의 부피가 큰 것을 장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 에피소드씩 읽어가면서,,, 아까워서 어쩌나..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끼나와에서 도쿄. 홍콩. 중국내륙. 몽고. 러시아... 이렇게 세계를 한바퀴도는 거대한 무대를 가진 책이다. 그런데 그 다양한 나라들의 수많은 특성이 이 책에서 그대로 잘 살아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일본과 홍콩과 중국과 몽골.... 아시아의 나라들이다. 러시아부터는 유럽권이라고 치니 서양인이 쓴 책이 그런 디테일에 능하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마치 아시아인이 쓴 책보다 더 아시아의 감성을 잘 살리는 것은 놀랍지 않을수 없다. 특히 '성산' 이라는 부분은 그 부분만 따로 뗴어서 책을 내어도 충분할 것 같을 만큼 감동적이고 생생하다.

 

비밀은 저자가 일본에서 오랫동안 거주했고, 일본인을 부인으로 함께 산다는데 있다. 그래서 서양인이지만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사정들을 훤하게 꽤뚫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렇다. 홍콩이야 개방된 도시이고 서양인이 부담을 가지지 않을만한 도시이지만, 중국의 내륙과 광활한 몽골의 사정마저 그렇게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은 보통의 관찰력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런 놀라운 디테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에피소드 한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무척 완성도가 높다. 앞서 말한 성산을 제외하고도 몇몇 챕터들은 독립적으로 출간을 해도 될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노리는 큰 욕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이 서로 다른 무대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묶어 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왜 서로 연결되는지를 모르지만 한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날때가 되면, 아--- 그렇게 해서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구나...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꾸는 젊은이.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떠날 용기를 되찾는 청년. 소위말하는 성공이란 것을 거머쥐었으나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잃는 사람. 아픈 세상에 태어나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다 경험하고 세상을 달관한 듯이 살아가는 할머니, 아직도 욕망에 불타올라 무엇인가를 저질르려고 엄청난 부담을 무릅쓰는 사람...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렇게 서로 다르면서 그리 다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한바퀴 돌고나면 이 책의 마지막은 다시 처음의 에피소드가 벌어지게 되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그때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인가 한폭의 그림같은 것이 그려진다. 아픔과 희망과 절망과 좌절과 일탈이 혼합되어 있는 이 세상의 모습. 작가는 그의 데뷰작인 이 책에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한폭의 그림처럼 담은 대작을 만든 것이다. 정말 대단한 책을 만났다는 느낌이 든다. 독특한 구성과 재미와 삶의 의미를 함께 느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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