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영국왕을 모신 사람. 아프리카의 제국에서 온 검은 황제를 모시고, 그 공로로 훈장과 띠를 받은 사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자랑으로 삼고 살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빈한한 시골, 늙으신 외할머니의 고된 노동으로 갸냘픈 몸하나만으로 도시를 찾은 우리의 주인공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야심을 키워간다. 세상을 알고 세상에 지지 않고, 남들처럼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남들처럼 떳떳하게 살아간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을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어린 소년이 알리가 없다. 세상살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가 웨이트 보조로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그의 세상을 구성하는 원천이다. 도시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도시에 다른 아는 사람이 없는 그로서는 자신이 일하고 기거하는 호텔을 중심으로 일들이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다.

 

유난히 빈약한 신체적인 조건을 가진 그는 남들보다 키가 작아보이지 않으려고, 다른 웨이트 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또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자신도 얻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그러한 노력과 시도들이 때로는 우스광스럽고, 때로는 눈물겹게 느껴진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렇게 한 시골소년의 상경기를 구성하면서 경쾌하게 엮어져 간다.

 

그는 성장하면서 이 호텔 저 호텔을 다니면서 점점 세상을 배워가고, 자신이 성장하고 자신의 지위가 조금씩 올라가는 만큼,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이 점점 급이 높아지는 만큼 자신의 목표도 차츰차츰 높아진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큰 목표일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소박한 목표일 수도 있다. 손님중 한명이 그에게 돈의 힘을 보여주고, 그는 그 돈을 가지면 자신도 호텔주인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그러나 세상을 읽을줄 모르는 식견과, 어리석은 순수함과, 약간의 교활함과, 약간의 신분상승을 향한 욕망이 어울려지면서 그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의 사회적 기준과 도덕관념으로 볼때 명백히 배신적인 행위이지만, 그가 그 곳을 향하여 한발한발 다가갈 때에는 그다지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었던 것. 그것이 바로 삶이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골탕 먹이는 방법이 아닐까.

 

그가 아는 세상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전쟁이 끝나고 그가 자리를 잡은 쪽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은 입장이 되었다. 그는 그 비난의 댓가로 마침내 돈을 벌었고, 그가 원하던 다른 호텔 주인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으나 그가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 사회적 인정을 얻지는 못한다. 그에게 남는 것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성공이 가져온 것에 대한 비난과 속죄의 시간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의 아픔을 따스함을 감싼다. 그의 욕심에 대한 추궁을 하지도, 그를 아픔으로 내 몬 거대한 사회적 범죄에 대한 고발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고 성공하려고 노력하지만 탐욕을 부리지는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한 순진한 사람의 삶의 기복을 그리면서 아픔에 대한 성찰과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탐색을 한다.

 

실존적인 아픔과 시대에 대한 고발, 도덕적 책임에 대한 추궁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이 탐구하는 것은 사람의 삶이란 것의 아픔과 그 아픔에서 입은 날카로운 상처를 않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또 그에 대한 대답이다. 너무 아픈 상처를 준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고, 또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한 부질없음과,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던 시절에 대한 열정을 회상하며 끝이나는 이 책의 후반부는 가슴속에 아픔과 따뜻함과 삶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를 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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