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로운 부의 탄생 - 미래 시장의 재편과 권력의 이동
모하메드 엘-에리언 지음, 손민중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1월
평점 :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이 미증유의 위기. 아직도 진행중이어서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 진행될지, 도대체 얼마나 그 계곡의 깊이가 깊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위기. 흔히들 1929년의 대공황에 비견되는 이 위기에 대해서 이런 저런 책들이 쏫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비관론 일색인 가운데, 일부의 책들은 오히려 각국의 구제정책으로 전세계적 유동성의 증가로 다시 한번 엄청난 자산버블이 생길것이라는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어도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위기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아무도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대공황과 비견하지만 그때와는 많이 다른 사정들이 있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 깊은 상처가 나기 전에 곪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과연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려야 할지를 알수가 없는 이 답답한 상황이 사람들을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만들고, 줄어드는 자산보다 더 줄어들 자신에 대한 예측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돈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돈줄을 죄는 새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같이 "이대로"를 외치는 일부 혜택을 받는 계층마저도 없이 어떤 포지션에 위치한 사람들이든 모두가 불안정에 몸을 떠는 현 상태에서는 어떤 처방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는 말이 정답인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두가 현금을 부여잡고 어둠이 걷힐때까지 장기전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기에 더욱 장기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 상황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깜깜한 어둠을 밝혀줄 지혜를 찾고, 수요에 부응하듯 몇달 사이에 수없이 많은 책들이 저마다의 대답을 않고 세상에 태어나 서점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새로운 부의 탄생' 은 그런 따끈 따끈한 신간들과는 달리 2008년 초까지만의 전개양상을 바탕으로 쓰여진 1년이나 지난 '한물간' 책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새로이 출간되는 책들은 불과 한달전의 통계까지를 책의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답답한 마음에 그런 책들을 몇권 섭렵한 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머리가 명료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은 책의 재목이 그러듯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쪽집게 같은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게 된 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과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하게 다루는 학술서적이면서도 일반인의 이해를 쉽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올바른 촛불의 역활을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솔직히 말합니다. 현 사태의 끝이 어디이며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수가 없다고. 그래서 이 책은 언제 이 상태가 끝이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각자가 저 나름의 처방을 내놓기에 바쁜 오늘날 원론적인 분석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드문 책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의 가치가 소중하게 느겨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위기는 그 자체로 제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과정을 통해서 생겨난 위기이지만, 위기는 여전히 진행중인 것이고, 그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참여자들의 대응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접근하는 방식, 이 책이 위기를 설명하고 위기를 분석하는 방식이 참 이치에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불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때 차근히 어디에서 불이 났는지, 그 불이 어떻게 번져갈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오히려 불을 조기에 진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이 커져가고, 주위로 번져가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잘 파악해야 효율적인 화재진압을 할 수가 있듯이, 이 책은 대책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이 위기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위기이며 이 위기에 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주체들. 주요 금융기관들. 각국의 정부, 국제금융기구, 국부펀드. 자원, 유동성들이 가지고 있는 휘발성과 그 휘발성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용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입니다.
시원하게 답을 알려주는 족집게 도사보다는 우리의 가슴의 답답함을 통쾌하게 하지는 못하는 책이겠지만, 절대 틀릴수 없는 정석을 가르쳐주는 답답한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담임선생님같은 느낌을 주는 책.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확장하고, 서로 엇갈리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주장들 중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한 능력을 키워주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장기전에 될 가능성이 많은 오늘날의 위기에서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