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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 3권에 걸친 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나는 다시 책의 표지로 돌라가서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그 유명하던 오쿠다 히데오가 쓴 책이 이런 것이었던가. 나는 책 저자의 이름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그 저자의 이름을 알고 기억해두고 싶어하는 때가 있다. 물론 책을 덮은 후에 가슴에 전해오는 감동의 정도에 따라서 하는 행동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요즘 서점가를 덮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현대문학들에 대해서 약간의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의 말처럼 '가볍기 한이 없으면서 귀중한 자원인 펄프만 축내는' 그런 책들이라고까지 혹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의 인기 있는 일본소설, 특히 장르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책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도 많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연유로 그런 책들을 좀 읽게 되었다. 우연히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워낙 유명한 책이 눈에 띄어서 다른 책에 뭍어서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서점들이) 워낙 장르문학에 대해 많은 광고노출을 시키니까 궁금해서 읽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그 멋진 표지에 이끌려서, 때로는 우연히 신청한 서평단에 당첨되는 바람에 읽게 되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몇 장르문학들을 읽으면서 이런 작품들에도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닿게 되었다. 그 시대에 많이 읽히는 책들은 바로 그 시대를 반영하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나 또한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그런 책들에 대해 공감하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솔직히 고전들보다는 지루하지 않아서 좋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에게서 좀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낀것은 그의 두번째 작품이라는 '최악'을 몇달전에 읽고 난 다음이었다. 장르문학같기는 한데 장르문학이라는 틀에 넣기에는 너무 강한 냄새가 나고, 그렇다고 문학이라는 고정된 틀에 담기에는 너무 매끄럽게 흘러가는 스토리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해 굳이 그런 분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작품성과 시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제 3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인 방해자라는 뜻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무척 흥미롭고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권으로 된 이 책의 2권까지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방화와 그것을 둘러싼 사건들의 전개. 평범한 삶과 경찰과 야쿠자의 등장.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얽혀지면서 느껴지는 그리 가볍지 않은 인생의 무게감 같은 것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3번째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은 나의 피부신경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뭔가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었인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3권의 시작에서부터 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속도감 있게 읽던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100페이지 가량은 더 느린 속도로 읽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서로 다른 위치에 선 그들이 내 밷는 삶에 대한 절규에 대해서, 이 힘든 세상에 매달려 삶이라는 것을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슬픈 몸직들에서, 자신이 삶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그 허망함에 대해서,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냐고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책이 적지 않다. 많은 문학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의 삶은 사실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잘된 책들이 말하는 것은 다 인생이란 그렇고 그럴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슬픔에 잠겨서, 때로는 희롱하듯이. 삶은 동일한데 그 삶을 변주하는 기법들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삶을 연주하는 또 다른 문학 카테고리의 대표작 쯤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내가 최근에 읽은 현대 일본문학중에서 가장 재미있으면서 가장 깊은 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