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가요를 듣다가 은근히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가요들이 한결같이 사랑타령만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사랑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소재들을 다 제쳐두고 가요의 가사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은근히 성질이 나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절절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가지 유형의 사랑들이 존재한다.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도 있다. 자식을 위해 쏫아붓는 대부분의 부두들의 가슴 아픈 사랑도 존재한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온 노 부부의 사랑같이 않지만, 그 무엇보다 절실한 사랑이라는 형식도 존재한다.
젊은이의 사랑노래라고 하더라도 사실은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하는 사랑도 있고, 해어지는 아픔을 노래하는 사랑도 있고, 오래동안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이에 대한 간절함을 노래하는 사랑노래도 있다. 그리움과 막연함,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아픈 사랑도 있다. 그래서 사랑 노래들은 그렇게 끝이 없이 질긴 생명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시간이 날떄마다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책에 관한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문역사, 자연과학, 문학. 여행에 관한 책등 거의 모든 종류의 책들을 즐겨 읽는 사람이지만 유난히 읽지 않는 책이 있다. 바로 시집이다. 내 서가에 꼽힌 그 많은 책들중 시집은 다 합쳐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끝까지 읽은 것은 얼마 안된다.
내가 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들 중에는 지금도 외우고 있는 것들이 몇몇된다. 그런 시들을 배우는 시간에는 나도 다른 이들 못지 않게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었다. 마찬가지로 시에 대한 강연회에도 몇번인가 참석한 적도 있고, 어줍지 않는 글들을 일기장에 끄적인 덕에 프로포즈를 할때도 제법 그럴듯한 연서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시의 감동이 생각나서 서점에서 시집코너 앞을 배회하고 있으면, 아무리 찾아도 교과서에 나오던 나의 가슴을 감동하게 하던 그런 시들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 중에 억지로 몇권을 사고 집에서 읽다가 말고, 두었다가, 그리곤 결국 버리게 되는 책들이 시집이다. 어지간해서는 일단 산 책을 끝까지 읽고 마는 내가 유독 시집만은 끝까지 읽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데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이 시집인데...
나는 안다. 시가 흥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와 맞는 시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간의 실패경험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를 주춤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 서가에 꼽힌 몇몇 시집에 만족을 하기로 잠정적인 타협을 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표지가 너무 상큼해서 눈에 들어왔는지, 사랑하기에 행복하다는 그 제목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시들로 채워진 책이다. 여러가지 사랑이 나온다. 절절한 사랑, 애타는 사랑, 이별한 사랑, 막연한 그리움.... 그리고 그 각각의 시에 대한 고운 설명들이 옆에 작은 글씨로 겸손하게 숨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책의 외장 만큼이나 책의 각 페이지들이 아름다운 것도 느낀다. 좋다. 이런 책을 기다리며 나는 그동안 시를 멀리해온 것인지 모른다.
조선일보에 한동안 연재되었다는 이 책의 내용은 사실 간간히 나도 보았던 것이다. 신문을 빠르게 읽어넘기는 편인 나의 눈길이 가끔씩 뒷면의 시를 싫은 난을 스쳐가면서 잠시 멈추던 기억들이 난다. 그러면서 '이런 시와 이런 해설들이 실린 글이라면 나도 좋아할텐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나와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는 시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또 있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