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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거짓말을 사랑한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로렌 슬레이터 지음, 이상원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논픽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픽션보다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인 측두엽간질이라는 독특한 분야 때문이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기록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대단한 용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리학자'가 쓴 거짓말의 기전에 관한 책이겠거니 하면서 지식이나 얻어갈려고 읽기 시작했었다. '스키너의 심리분석' 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저자가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책의 중간중간에 뇌과학이나 간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논픽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논픽션이면서도 논픽션을 넘어서는 이유는 저자가 바로 자신의 오랜 삶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과학의 대상은 바로 저자자신의 삶과 삶이 마주친 세상과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인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보는 대상과 내 옆에 않은 대상이 관찰하는 것은 같은 것일까. 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을 보고, 친구는 그 나뭇잎을 휘날리는 바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동일하면서도 동이하지 않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시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꼭 같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본적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내 생각이 나만의 쓸데없는 공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깨우쳐주면서도,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결코 지루한 과학책이 아니다. 논픽션이면서도 실제의 삶에 관한 것이고, 한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상처받고 어떻게 아파하며 삶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단편적인 의학이나 심리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에 관한 진정한 의미의 논픽션인 것이다.
사람은 결국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세포에 영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던지, 단순한 세포들의 활동에 의해서 자아라는 것이 만들여져 있는지는 모른다.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은 그 세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측두엽간질이라는 독특한 신경세포의 병리현상은 바로 인간의 감정과 인식, 창의력, 인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특수한 신경세포의 문제를 가진 병이다.
그런 병을 가진 사람. 그런 신경세포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그 문제를 가진 사람이 받아들이는 방법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왜 측두엽 간질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만드는지, 그리고 왜 그 거짓말이 사실은 거짓말이 아니라 너무나 뼈아픈 진실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논픽션이면서도 문학책보다 향기가 높고,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져 있으면서도 과학적인 인식에 접근하는 쉬운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정말 많은 감사를 보낸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아름답고, 이토록 잘 만들어진 책의 표지가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책이 입소문을 타서 그 가치를 증명하겠지만, 마케팅이 중요한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이토록 귀중한 책이 이렇게 소박한 외모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 이 책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약간의 불만이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