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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평점 :
좋은 책을 만났다. 좋은 책은 많지만, 선택한 책들이 모두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세명이 걸어가면 반드시 한사람의 스승이 있다고, 겸손하게 어떤 책에서라도 배울점을 찾는것이 나의 자세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것과,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런식으로 볼때 정말 잘 쓰여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욕구와 딱 맞아떨어진 책이다.
사실 제목이 좀 의아했다. 철학이 도시를 디자인하다니... 도시의 형태가 그 시대의 철학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건축학자들이 잘 이야기하는 그런 이야기인가? 무의식의 원형의 힘에 대한 책들에 감명을 받았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접근을 했었더랬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수 있었다. 무척 감사한 일이다.
철학은 나의 독서에서 가장 쓰라린 부분이다. 나의 독서의 원동력은 나 나름의 개똥철학이 이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것을 원하기 때문이지만, 정작 철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철학책을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의 철학에 대한 이해는 '철학개론' 수준을 결코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학개론 수준도 넘어서지 못해서 독서의 대상 중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에 과한 것들을 이야기 하는 철학에 대해선 정작 알지 못하고 독서의 변두리만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철학개론이 너무 어렵게(혹은 철학개론을 집필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를 못하고 썻거나) 쓰여졌다는 점이다.
요즘 눈에 띄이는 철학책들을 모으는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예를 들면 'SF영화와 철학' 같은 쉽게 쓴 철학서적들이다. 다행하게도 그런 책들이 꽤 많다. 그래서 내 서가에는 언젠가 읽을려고 준비해둔 그런 책들이 제법된다. 모아 놓고도 읽지 않는 이유는 그런 쉽고 흥미로운 책들에 대해서도 역시 철학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무척 재미잇게 시작한다. 그래서 몇몇 페이지를 읽다가 대충의 내용만 파악하고 덮어버리려 생각을 접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게 된 책이다. 무려 두권짜리. 그러나 두권 합쳐 500페이지 밖에 안됀다. 각권을 250페이지 정도의 얄랑한 부피로 만들어 놓은 점과, 책의 좋은 지질과 풍부한 사진자료등이 책을 읽는 부담감을 줄여준다.
우리가 잘 아는스핑크스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전혀 들어보지 못한 스핑크스에 관한 이야기. 세계지도의 다양성과 세계지도를 보는 방법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 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제일 앞에 나오는 포복절도할만한 '쥐'의 아이큐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 책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재미있다. 그리 어렵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철학개론들보다 훨씬 더 쉽다. 그리고 훨씬 더 철학을 잘 이해하게 해준다.
이 책은 하나의 도시를 대상으로 하나씩의 챕터를 구성한다. 각 챕터마다 도시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와 그 도시의 역사나 그 도시에서 일어났던 우명한 사건, 그 도시에 살았던 철학자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러니 도시를 산책을 하되 도시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중심으로 한 철학의 중요한 맥을 짚어주는 구조를 가진 것이다. 독자에 대한 필자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철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철학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내 마음에 결론처럼 남는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말이다. 맨 앞의 지도를 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나, 쥐의 아이큐에 관한 이야기도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지도의 모양을 보고, 어떤 방식으로 쥐라는 발음의 뜻을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힌트로 띄워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문학책들에서 느끼는 얄팍한? 철학들 말고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슨 철학책에 일말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그 부담감을 떨쳐버릴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새해초. 일이 조금 정리가 되면 이젠 슬슬 그동안 모아놓은 철학책 읽기를 시작하고픈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