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괴한 라디오 ㅣ 존 치버 단편선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장편소설은 장편소설 나름의 맛이 있다. 수필은 수필대로, 시는 시 나름의 맛이 있다. 글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지만,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은 장편소설만한 두께를 가진 단편소설이다. 나는 아직까지 이름을 몰랐지만, 무척 유명한 작가의 단편들이 빼곡한 책. 이 작가는 단편소설이 전공이라고 한다.
내 입맛은 장편소설에 맞추어져 있다. 장편소설은 늘 내가 잘 먹는 짜장면 같은 것이다. 언제 먹어도 기본은 하는것, 그러나 제대로 된 옛날 손짜장을 만나면 옛날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 단편소설은 나에게는 만두같은 것이다. 굳이 긴 면발을 후루룩 입으로 잡아당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한 입에 하나씩 톡톡 넣을 수 있는 고기만두.
만두는 피가 얇은 것이 맛이 있다고 한다. 물론 만두의 속이 좋아야 한다. 유명하다는 상하이의 샤오룽바오는 게살을 넣은 얇은 만두피로 그 유명세를 던지고 있다고 한다. 늘 사무실 골방에 틀어박혀 일하는 틈틈히 책을 읽고 글쓰는 취미밖에 없는 나아게까지 그 이름의 고명함이 전해지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샤오룽바오 같은 단편소설을 만났다. 바로 이 책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그리 남루하지도, 그리 찬란하지도 않다고. 누구나 한번 나고 한번 죽는 참으로 평등한 것이 삶이다. 지금처럼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어 간다면 혹 100년 쯤 뒤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명제만큼은 이 불공평한 세상, 평화로 포장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평등하게 작동하는 정의같다.
물론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있는 공간의 길이는 다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은 삶, 혹은 인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다르다. 누구는 저택의 주인으로, 누구난 저택의 하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담을 수도 있고, 머리 뒤에서 날아올지도 모를 짱돌을 피하기 위해 한평생을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아무렴.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만 살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 운명이라고 불리는 것 중 많은 것들은 자신의 선택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접촉하는 조그마한, 아주 조그마한 영역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 그 영역에 속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간다. 법칙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가 이제껏 살면서 관찰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절친한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고 또 아픔을 주며 살아간다. 희망을 꿈꾸며 일구어 가는 꿈의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하고 만다는 진리가 숨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되면 꽃이피고, 아가씨들의 가슴에는 사랑이 피어난다. 그 부질없는 삶의 대한 끈질긴 애정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화사함이 시들어가는 비루한 삶의 모습.
나는 이 책에서 그런 것들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서 다른 것들을 읽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내가 이 책의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내 삶의 과정에서 이 책과 마주쳤을 뿐인 것을. 언젠가 다른 책들과의 만남의 추억들에 밀려 저 멀리 퇴적층의 아랫쪽으로 가라않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지만, 화려한 그 순간만은 불꽃처럼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다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그 이면을 샅샅이 들여다 볼수 있어서 좋았다. 삶이란... 작가는 자신이 관찰하고 느낀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들여다 놓았고, 나의 입맛에 이 책이 꼭 맞았다. 긴 이야기를 끝까지 후루룩 먹어야 하는 자장면의 맛과는 다르지만, 한입에 쏙 넣고 "아..." 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만두의 맛처럼, 이 책은 아까면서 먹는 사이에 어느듯 목구멍 너무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아마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