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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1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두권에 걸친 책을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느림의 발견이라는 제목이 사실 좀 의아했습니다. 밀란 쿤테라의 '느림'을 비롯하여, 느리게 사는 법은 찬양하는 글들을 읽기도 하고, 저 저신이 그런 류의 글들을 몇곳에 기고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느림의 발견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참 난감한 문제였습니다.
슬로푸드라는 것이 유행을 하는 것처럼, 빨리빨리가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히는 빠름의 민족에게 느림이라는 것은 색다른 유행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느림을 주장하는 책들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은 어떻게 그렇게도 빠름의 논리를 쫒아가는지, 느림을 팔아서 이익을 보기 위한 움직임들은 왜 그리도 극성을 떠는지... 그런 것들이 우리사회에 문화현상으로 떠돌던 느림에 대한 저의 인상이었습니다.
한동안 뜸하던 느림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만났을때의 저의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은 주로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이 책과는 사실 별다른 관련이 없는 생각일수도 있고, 어쩌면 오히려 이 책이 빙빙 돌려서 말하고자 했던 진짜 주제일수도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둘째권의 말미에 저자가 직접 자신의 책에 대한 글에서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느낄수도 있었습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애매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어쨋든 이 책은 아름답고 전설적인 이야기를 담은 긴 이야기입니다. 느릿한 속도로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이 시대와 혼란, 세상에 대한 발견, 기계화와 근대화라는 혼란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불완전한 기록에 대한 보충설명이자, 그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내와 의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그 시대의 값싼 유혹에 쉽게 굴복하고만 사람들에 대한 안스러운 비가포 읽혀질수도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의적인 내용을 담은 책일수록 깊이가 깊은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일종의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불굴의 노력에 관한 찬사로 읽혀질수도 있습니다. 또 그 벅찼던 지리적 발견의 시기에 세상을 넓게 돌아다니면서 세상의 많은 모습들과,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부딛히는지를 웅변적으로 설명하는 성장소설로도 읽힐수 있습니다.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유명한 해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전설적인 탐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힐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이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이런식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이 말하는 느림은 빠름에 대한 반발로서의 느림보다는, 느림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에 대한 애착의 표시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빠르게 변혁하는 시대의 삶을 재빠르게 훝어보는 것보다는, 그 빠른 움직임의 중간중간을 슬로우모션처럼 캡쳐를 해서 보는 것. 그래서 우리가 그 시대는 이런것이 있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 시대를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이 책이 느림이라는 제목 뒤에다 발견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저의 감상일 뿐입니다. 여하튼 이 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시대의 변혁의 한가운데서, 한 인간의 존재라는 것을 세밀하게 주목해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가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거대한 전세계적인 경제적 격류의 와중에 휩싸여 살아가지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가 그날 그날을 특별한 날로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얼마되지 않는 시간들을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한번쯤 멈추어서서 이렇게 숨가쁘게 살아가는 삶을 정지된 상태로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매순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거나, 가슴 두근거리면서 느껴보거나, 살곁에 와닿는 감촉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들은 참 좋습니다. 사실 저도 쉽게 읽기고 흥미로운 책이 편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쉬운 문장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을때는 가슴속에 무언가 아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웃는 얼굴에 글썽이는 눈물을 머금고 있는 그런 아픔 같은 것 말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서 있는 위치를 이탈한 것을 깨닿은 아픔과, 그 것을 지금이라도 다시 깨닿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 그런것 말입니다.
여러분. 이 책과 함께 이 해의 마지막 시간들을 느림의 의미와 함께 한번 시간을 나누어 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