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러시안 룰렛. 빙글빙글 돌아가는 룰렛모양의 총알구멍에 한발의 총알을 넣고 자신의 운을 테스트 하는 게임. 영화 '디어헌트'에서 그 충격적인 장면을 처음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의 삶이란 것이 바로 러시안 룰렛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충격적인 깨닳음을 얻게 되었다.

 

이 책에는 러시안 룰렛에 빗대어 '사라예보 룰렛'이라는 신종 단어가 등장한다. 실제로 그 시절 사라예보에서 사용되던 용어인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용어인지는 알수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무척 실감나게 당시 사라예보의 상횡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슴속에 이토록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그 개념은 우리들 삶의 보편성의 한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평생을 살아오던 길을 하나 건너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의 사라예보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면들에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오늘 출근길에 별똥별에 맞아서 죽을 확률은 ? -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가능성에 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진 것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널때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은? - 조금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심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어떨까?

 

내가 60살에 고혈압에 걸려 있을 확률은? 유전자와 자신의 건강관리에 따라 다르지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자들의 1/3. 남자들의 1/2이 60세에 고혈압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고혈압에 늘 신경을 쓰면서 혹시 병원이나 약국에 갈 일이 있으면 수시로 혈압을 재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엄청난 지수하락을 보이는 주식이 더 떨어질 가능성은? 아무도 알수 없다. 어쩌면 50%?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있게 한 방향에 베팅할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과연 어떻게 베팅을 할 수가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위험이 일상이 된 상황을 상정한다. 실제 그런 상황이 있었을것 같다. 당연하던 일상. 무기력하고 지겹고 벗어나고 싶던 일상이 더 이상 그리울수 없는 그런 처참한 위기에 놓인 사람들. 먹고 입는 것은 물론이고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물통을 메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위험을 이용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똑 같은 위험의 한가운데서 다른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사라예보라는 도시를 둘러싸고 포위한 채 아무런 이유없이 단지 갖혀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노리는 저격수들. 언제 어디로 폭탄을 날릴지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쌓인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년이라는 긴 긴 세월을 길 하나 건너는 것, 하룻밤 눈을 감으면서 내일 아침에 과연 살아서 눈을 뜰수 있을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그러나 그것에는 그저 존재하기 위한 맹목적인 의지라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라예보 룰렛이라는 잔혹한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엄과 품위, 인간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지켜가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인간을 어떻게 착취하면서 살아가는지에 관해서...

 

이 책은 그냥 쉽게 읽히는 전쟁소설일수도 있고, 안네의 일기처럼 한 비참한 상황에 대한 기록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실존적 결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다만, 사람들이 가을의 단풍에서 느끼는 느낌이 다 다르듯이, 나는 이 책에서 그런 가슴 아픈 상황에 사람들이 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해서, 그리고 그런 인간성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순간순간 어떻게 결단을 내리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참 좋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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