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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아이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일까. 아니 현실이라고 불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과 현실이 아니라고 분류되는 가상의 일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계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명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때 그때 구분을 짓는 자리를 조금씩 움직여가는 부조리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경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뿐인 것일까.... 그곳에 경계라는 것이 있노라고...
이 책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쓴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내용중 어디서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중 어디서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책은 실제로 일어난 큰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읽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끊임없이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라는 의문의 함정에 빠져들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저 메마른 다큐멘터리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야기" 이다... 이런 마음으로 읽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이야기들, 세상에서 가장 믿기어려운 이야기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모두 현실과 무척 닮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작법은 바로 그런 논리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어지럽고 사람은 살아간다. 그리고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삶 중 유별나게 특징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가 죽고, 범인이 색출된다. 그러나 범인으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자꾸 바뀌고 결국은 범인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 이것이 팩트이다. 그러나 그 무미건조한 팩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공포, 시기와 질투, 아픔과 방황, 가슴조림과 멍멍한 감정들은 종결되지 않는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지만, 그 삶의 하루하루는 힘든 노력과 투쟁의 결과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미궁에 빠져들었는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이 생겼을 경우에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않은채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연 어떻게 정의로운 심판이 내려질까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읽는것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
이 책은 '잘 읽어야 할' 책이다. 어렵지는 않다. 골치아프지도 않다. 결코 재미없지도 않다. 살인과 협박, 그리고 미스테리...요즘의 장르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그렇게 외양으로 드러나는 내용만을 읽어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 이 책의 겉모습만 읽은 것이 되고 만다. 이 책에서 진정으로 읽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들의 삶이다. 어쩌면 내 얼굴의 모습에 그곳에 비쳐져 있는지도 모를.... 그런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