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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ㅣ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본 적이 있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지는 않지만, 학창시절에 읽은 책이 뒤늦게 드라마로 나온다는 것 때문에 보게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옛날에 읽은 책의 가물가물한 기억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뿐인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 드라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평소 드라마를 보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나에겐 잘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다.
임페리움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가 자꾸 생각이 났다. 출세를 위한 지독한 집념.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동원하는 추악함에 몸을 떨면서도, 그 또한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의 바닥에서 출발해 영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만은 인정해주지 않을수가 없다. 세상의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그런 집요함과 비열함, 그리고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역자는 책의 말미에서 말한다. 인생에 절대적인 가치나 선을 따지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계급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게 느껴진다고... 그 생각을 꼭 따르자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팩션인 이 소설은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선악에 대한 판단과 이제껏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지식만 배제한다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엄청난 드라마를 음미하는 재미를 충분히 즐길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키케로라는 로마의 한 걸출한 인물에 관해 계획된 3부작 시리즈물 중 첫번째 책이라고 한다. 곧 2부가 영어로 출간될 예정인가보다. 벌써부터 그 책의 번역본이 기다려지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몰입하였던 바로 그 흥미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라고. 단 자신이 죽거나 다치지만 않는다면... 도덕적 가치를 배제하고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의 차원에서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 도덕적 가치를 제외할때 말이다.
이 책은 권력을 향해 온몸을 팽팽한 시위에 당겨진 화살처럼 집요하게 달려가는 한 걸출한 인물이 어떻게 밑바닥에서 권력의 정상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을 내딪는가에 관한 내용이 생생하게 잘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오노 나나미라는 한 걸출한 역사소설가에 의해 로마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깊게 번져 있다. 나도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많이 읽었었다. 로마사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꼽으라면 한니발 전쟁과, 시저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시저의 입장에서(역사의 정사는 항상 승리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바라보던 시기를 키케로의 시각을 통해서 바라본다. 로마사의 가장 흥미진지한 부분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로마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된다. 하나의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과 해석. 이 책은 팩션이면서도 상당히 사료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저의 입장에서 바라본 로마는 권력투쟁과 영토확장과 전쟁이라는 코드로 생각되지만, 군인이 아닌 키케로의 입장에서 본 로마는 정치적 음모와 야망의 덩어리이다. 비록 피가 튀가 칼이 부딪히는 장면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한 말을 통한 전쟁은 피를 보는 전쟁보다 더욱 흥미진지하다.
길고 긴 시간의 장벽을 넘어서서 고대로마의 모습을 오늘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면서, 로마라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가장 뜨겁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벌써 그 다음 책이 언제 나올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오랜만에 머리속에 복잡한 잡념들을 확 떨쳐버리고 집중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서 반갑다.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가보다. 경제가 어려운 지금도 이 책에 등장하는 키케로처럼 세상을 살아갈 열정이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